brunch

라이킷 11 댓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케빈은마흔여덟 Jan 07. 2025

딴엔 고군분투(10)

기억 - 실수한 기억은 오래 남는다

[그 어떤 것도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는 그게 좋은지 나쁜지 나와 맞는지 아닌지 가야 할 방향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실패하지 않으려고 남들이 하는 이야기 때문에 포기하지 말길. 그 사람과 나는 다른 사람이고 같은 경험을 하더라도 그 일을 통해 느끼고 얻는 건 다를 수 있다. 그러니 무엇이든 직접 부딪쳐보고 느끼길 바란다. 누군가의 말에 흔들리고 사람들을 따라 여기저기 휩쓸리며 계속해서 떠돌아다니지 말길]

- 마음의 자유/ 정윤

실수와 실패의 기억은 왜 오래 남을까?

실패한 기억과 실수는 시간이 지나도 뇌리 깊숙이 박혀 사라지지 않는다. 이상하게도 추억 속에서 선명히 자리 잡고 있는 사건들 중 기쁘고 성공했던 순간보다 실수하거나 실패했던 기억이 더 또렷하다. 특히 잊고 싶은 기억일수록 더 쉽게 떠오른다. 이는 "생각하지 말아야 할 코끼리"처럼 우리의 의식 속에 자리를 잡아 끊임없이 우리를 자극한다.

20년 가까이 지난 나의 결혼식이 그렇다.

그날의 행복한 순간들은 흐릿해졌지만, 실수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나는 노래를 제법 잘 불렀다. 가수가 될 정도는 아니었지만, 친구들과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면 늘 박수를 받곤 했다. 그래서 결혼을 앞두고 와이프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 신랑이 직접 축가를 부르는 깜짝 이벤트를 계획했다. 신랑이 노래를 부르는 이벤트가 지금은 흔한 일이지만 내가 결혼식을 올릴 때까지만 해도 흔하지 않았다. 그런 만큼 성공을 위해 더 철저히 준비했다. 직접 CD로 반주를 준비하고 비밀리에 연습까지 했다.

하지만 막상 결혼식 날, 정신없는 진행 속에서 준비했던 모든 것이 뒤엉켰다. 플래너의 지시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다 보니, 정작 무대에 섰을 때 외웠던 노래 가사가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더듬더듬 가사를 짜내며 노래를 불렀지만, 고음에서 삑사리가 나고 축가는 엉망진창이 되었다. 당시 하객들이나 와이프는 어떤 느낌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내 기억 속 결혼식은 '축가 실패'로만 남아 있다.

왜 실패의 기억은 이렇게 오래 남는 걸까?

부정적인 경험은 강렬한 감정적 반응을 일으켜 뇌에 깊이 각인된다고 한다. 진화 심리학에서는 이를 생존을 위한 학습 과정으로 본다. 우리의 선조들은 위험한 상황에서 실수를 통해 생존 방법을 배웠다. 독이 든 음식을 먹고 목숨을 잃는 이들은 후손을 남기지 못했지만, 이를 기억하고 피했던 자들이 살아남아 후손을 남긴 것이다. 이처럼 실수와 실패의 기억은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경고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는 이러한 기억이 꼭 생존과 연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실패의 기억에 매몰되거나 반복적으로 되새기면서 자신을 비판하는 경향이 생기기도 한다. 이는 자기 발전을 위한 시도에서 비롯되지만, 지나치면 오히려 발목을 잡아 도전을 포기하게 만든다.

나 역시 그러한 경험을 했다. 코로나 팬데믹 당시 내가 관리하던 지점이 폐점했다. 지점장으로서 운영상의 미숙함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팬데믹이라는 외부 환경의 영향도 컸다. 그럼에도 당시에는 모든 책임이 내게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 결과,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자기비판과 우울감에 빠져 있었다.

만약 그때 실패에 대해 더 유연한 태도를 가졌더라면, 다른 도전이나 업무를 이어갔을 것이다.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며, 지나친 자책보다는 이를 성장의 기회로 삼는 태도가 필요하다.

기억을 아름답게 만드는 힘, 유연함

실수와 실패는 우리 삶에서 피할 수 없는 일부다. 중요한 것은 이를 어떻게 대하느냐에 있다. 과거의 실패에 얽매이기보다는, 이를 하나의 경험으로 받아들이고 잊을 것은 잊어야 한다. 결국, 노화가 찾아오면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모두 흐릿해질 테니, 지금은 기억의 앨범에 아름다운 추억으로 저장하자는 태도면 좋겠다.

결혼식 날 삑사리가 났던 그 기억도 이제는 웃으며 추억할 수 있다. 그 실수 덕분에 더 특별했던 결혼식으로 기억되기도 한다. 지금은 와이프와 20년 가까이 함께하며 그날의 기억을 추억으로 삼아 또 다른 도전을 계획하고 있다. 실수한 축가를 어떻게든 만회할 기회를 만들어 봐야겠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실수와 실패가 우리의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요소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