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은 왜 점점 더 힘들어질까
[나의 모든 순간을 대단한 것으로 채워 놓으려는 자세는 나를 좀먹는다. 조금씩 조금씩 생활에서부터 계획을 내려놓고, 완벽을 내려놓고, 다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즐거움을 찾아간다. 훌륭한 사람이 되어가는 건 아니지만, 덜 아픈 사람이 되어간다.]
- 애쓰다 지친 나를 위해 / 서덕
아직은 버틸 수 있다. 사력을 다하고 있지만 만만치 않다. 그런데 버티는 것도 점점 버거워진다.
아이의 수학 문제를 풀어주며, 정답지를 볼까 말까 고민하는 순간이 생겼다. 미적분까지 무난히 풀던 내가, 이제 갓 중학교에 들어간 아이의 수학 문제를 붙잡고 한참을 고민하다니. 자존심이 상한다. 스스로 위안 삼듯 말해본다. “내가 배웠을 때보다 수준이 높아진 게 확실해.” 오늘도 온 힘을 다해 보지만, 조만간 답지를 펼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점점 더 어려워지겠지?
어릴 적, 나의 친구들 사이에서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 던 만화책이 있었다. 바로 드래곤볼. 주인공 손오공은 죽을 고비를 넘길 때마다 강해졌고, 그렇게 강해질수록 더 강한 적이 등장했다. 세상은 어찌나 넓은지, 최강의 적을 물리쳤다고 안심할 틈도 없이 더 무서운 빌런이 나타났다. 나중에는 신도 어찌하지 못하는 적까지 나왔으니,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한 거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왜 그들은 손오공이 강해질 때까지 숨어 있다가 나오는 걸까?
공부만큼 쉬운 게 없다는 지금과 달리, 그 시절 나는 공부가 세상에서 제일 어려웠다. 인생의 쓴맛은 모른 채, 그저 눈앞의 시험이 전부였으니까.
그러다 처음으로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을 경험한 건 군대였다. 학창 시절엔 공부만 잘하면 인정받았고, 대학은 그저 자유로움의 성지였다. 하지만 군대에선 먹고 자는 것마저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화장실조차 허락을 받아야 했다.
제대 후 사회로 나왔을 때, 더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취업을 하고, 독립을 하고, 앞으로 30년 이상 스스로 먹고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무겁게 다가왔다. 군대에서 버텼던 경험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지만, 사회의 무게는 또 다른 종류의 고단 함이었다.
일에 익숙해지면 더 높은 목표가 주어졌고, 힘든 과정을 버티면 더 버거운 과제가 쌓였다. 몸도 마음도 점점 저항력이 떨어졌다. 어느 순간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세상은 단순하지 않고, 언제나 더 힘든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왜 이렇게 힘들기만 할까?” 자꾸 되묻다 보니 결국 이런 깨달음에 도달한다. 항상 지금이 제일 힘들다. 생각해 보면 손오공도 늘 그랬다. 한 고비 넘기면, 더 센 놈이 나왔다.
우리는 과거보다 훨씬 많은 것을 배운다. 예전엔 천재 음악가만이 연주하던 곡을 초등학생 콩쿠르에서도 들을 수 있고, 중고생들이 대학 수준의 수학 문제를 푼다. 기술의 발전은 더 많은 지식을 더 빠르게 전달하고, 인간의 평균 지능도 올라갔다. 건강과 수명도 길어졌지만, 그만큼 경쟁은 더 치열해졌다. 모두가 강해졌기에, 모두가 힘들다. 손오공이 강해질수록 적도 강해지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런 힘든 현실을 어떤 태도로 대해야 할까?
물론 손오공처럼 죽을 각오로 버티며 싸우는 것도 한 방법이다. 하지만 현실은 드래곤볼과는 다르다. 경쟁에서 졌다고 해서 죽는 것도 아니고, 패배가 곧 끝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누군가가 올라가면 누군가는 내려오는 법. 노력한 만큼 성장했다면, 결과에 지나치게 자책할 필요는 없다.
지금 나에게 무겁게 느껴지는 일이 10년 후에도 같은 무게일까? 어쩌면 그땐 또 다른 고민을 안고 오늘을 떠올리며 말할지 모른다. “그땐 그게 그렇게 힘들었지.” 그렇다면 굳이 지금의 무게에 짓눌릴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
사회 초년생 시절, 영업부서에서 실적이 부진하다는 이유로 부서 전체가 해병대 캠프를 다녀온 적이 있다. 체험치 고는 고된 훈련이었지만 난 생각보다 별로 힘들지 않았다. 무엇보다 ‘3일이면 끝난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끝이 보이는 고생은 견딜 만하다.
많은 사람들이 무한한 시간을 사는 것처럼 느끼지만, 결국 인생에도 끝은 있다. 학생 때보다, 군대보다, 사회보다 인생이 더 고된 이유는 어쩌면 이 여정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기 때문일지 모른다. 하지만 몸을 움직이고 하루를 살아내다 보면, 언젠가는 끝은 보게 된다.
세상은 진보하고, 모두가 노력하고 살기에 우리가 대면하는 현실은 항상 지금이 제일 힘들다. 하지만 지나고 보면 언젠가 끝이 난다. 그리고 난 더 성장해 있을 것이다. 이길 수 없을 것 같던 그 빌런은 더 이상 손오공의 상대가 안 되는 것처럼 지난 일이 되어 있을 것이다.
힘든 일에 너무 주눅 들 필요 없다.
지면 또 어떤가, 그 또한 지나갈 것을
#고군분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