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 항상 지금이 제일 힘들다
[나의 모든 순간을 대단한 것으로 채워 놓으려는 자세는 나를 좀먹는다. 조금씩 조금씩 생활에서부터 계획을 내려놓고, 완벽을 내려놓고, 다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즐거움을 찾아간다. 훌륭한 사람이 되어가는 건 아니지만, 덜 아픈 사람이 되어간다.]
- 애쓰다 지친 나를 위해 / 서덕
해병대 캠프
한참 몸도 마음도 열정적이던 사회 초년 시절, 회사의 실적 증진과 조직 단합을 위해 팀 전체가 2박 3일 동안 해병대 캠프에 갔다. 사흘간의 일정이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내게는 별거 아닌 추억으로 남았다.
잠을 안 재우고, 노래를 외우게 하고, 피티 체조를 시키는 훈련도 군대 생활을 5년 전에 끝낸 나에게는 큰 도전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못하겠다며 돌아가겠다는 선배도 있었고, 힘들다며 눈물 흘리는 선배도 있었지만, 군대에서 2년 넘게 단련된 나에게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경험처럼 여겨졌다.
군생활 보다 더 한 사회생활의 무게
혹한기에 물방울을 튀기면 얼음이 되어 살에 꽂힌다는 사람부터, 죽을 고비를 12번도 넘겼다는 사람까지 군대 관련 무용담은 난무한다. 나라고 별수 없겠지만 거두절미하게 군대는 나에게 혹독한 통제와 구속을 가르쳐 준 공간이었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그러하듯 나도 군 입대 전에는 사춘기를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치기 어린 청년이었다. 하고 싶은 것은 하고, 하기 싫은 것은 하지 않는 삶에 익숙했던 내가 군대에 가서야 처음으로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을 체감했다. 매일 반복되는 훈련 속에서 까마득한 제대 날짜를 세던 기억이 생생하다. 하지만 그마저도 지나고 보니 견딜 만한 시간이었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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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를 하고 자유의 몸이 된 것도 잠시. 취업을 하고 독립하며, 스스로 생계를 꾸려 가야 하는 30년의 사회생활이 눈앞에 다가왔다. 군대에서 2년간 고된 시간을 견디며 배운 것들이 나를 강하게 만들었지만, 사회의 무게는 군 생활과는 또 다른 종류의 압박으로 다가왔다.
처치하고 처치할수록 더 센 빌런이 나타나는 만화처럼 힘든 상황을 헤처 나가면 더 힘든 상황이 닥쳐오고 매번 제일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렇게 꾸역꾸역 살아가다 보면 인생의 무게감이 더해지고 내 몸의 저항력이 떨어질 때 빨간불이 깜빡거리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고단한 하루 끝에 지친 나를 마주할 때, "왜 이렇게 힘들기만 할까?" 하고 되묻게 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모든 과정이 우리 삶의 일부라는 사실을 점점 받아들이게 된다.
우리는 우주의 미물일 뿐이다.
현재까지 밝혀진 과학에 따르면, 우주에는 천억 개 이상의 은하가 존재하고, 각각의 은하에는 천억 개 이상의 별이 존재한다고 한다. 이 거대한 숫자 속에서 우리 인류는 태양이라는 별 하나를 중심으로 도는 지구라는 행성에서 살고 있을 뿐이다.
게다가 이 지구는 초당 수십 킬로미터의 속도로 태양 주위를 공전하고, 태양 역시 초당 수백 킬로미터로 우리은하를 중심으로 공전한다. 우리가 가만히 서 있다고 느낄 때조차, 실상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속도로 어딘가를 향해 움직이고 있는 셈이다.
이걸 보면 우리는 그저 우주의 티끌 같은 존재에 불과하다. 더 나아가, 모든 물질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로 볼 때 우리는 의도를 알 수 없는 원자들의 집합체라 할 수 있다
유연하고 태연하게
작은 원자에 의해 조종되는 것일 수도 있고, 우주의 흐름에 맡겨진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모든 결과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태도는 무의미하지 않을까? 내 나쁜 습관도 원자가 그렇게 움직인 것이라 여겨보고, 뜻하지 않은 결과도 우주의 뜻이라 받아들이는 유연함이 필요하다.
이것은 무책임하게 아무렇게나 살라는 말이 아니다. 삶에 의미를 두되, 의도하지 않은 결과에 좌절하지 말자는 것이다. 우리는 결국 알 수 없는 원자들의 집합체이고, 예외 없이 알 수 없는 우주 어딘가로 흘러가는 존재다.
유영하듯 살아가자
고단한 인생 속에서 누구도 힘들지 않은 삶을 살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이 아무리 힘들어도, 지나고 보면 그것마저 추억이 된다. 인생이란, 게임처럼 더 강한 빌런을 만나는 과정이다. 어쩌면 지금이 제일 힘든 순간일지도 모르지만, 그만큼 성장할 기회가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러니 너무 애쓰지 말고, 우주의 흐름에 몸을 맡겨보자. 때로는 유영하듯, 때로는 힘차게 물살을 가르며, 주어진 휴식을 즐기고 인생의 감동을 느껴보자. 지나고 나면 지금 이 순간도 결국 꺼내 볼 수 있는 한 장의 앨범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