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수와 실패는 때때로 좋은 발견이 되기도 한다
[그 어떤 것도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는 그게 좋은지 나쁜지 나와 맞는지 아닌지 가야 할 방향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실패하지 않으려고 남들이 하는 이야기 때문에 포기하지 말길. 그 사람과 나는 다른 사람이고 같은 경험을 하더라도 그 일을 통해 느끼고 얻는 건 다를 수 있다. 그러니 무엇이든 직접 부딪쳐보고 느끼길 바란다. 누군가의 말에 흔들리고 사람들을 따라 여기저기 휩쓸리며 계속해서 떠돌아다니지 말길]
- 마음의 자유/ 정윤
주제를 정해놓고 글을 쓰다 보면, 어느 순간 전혀 다른 이야기로 흘러가기도 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런 글이 오히려 더 마음에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원래 쓰려던 글은 잠시 미뤄두고, 새롭게 떠오른 흐름을 따라간다. 어찌 보면 실수지만, 운이 좋으면 뜻밖의 발견이 되기도 한다.
실수와 실패의 기억은 오래 남는다. 특히 큰 실수일수록 머릿속 깊이 박혀 시간이 지나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돌아보면, 내 기억에 선명하게 자리 잡은 순간들은 성공이나 기쁨보다는 실수나 실패의 경험이 많다. 잊고 싶은 기억일수록 ‘생각하지 말아야 할 코끼리’처럼, 애써 밀어낼수록 더 강하게 떠오른다.
결혼식을 올린 지도 어느덧 20년 가까이 지났다. 그날의 행복한 순간들은 희미해졌지만, 이상하게도 실수했던 장면은 아직도 또렷하다.
나는 프로는 아니지만, 노래방에서 친구들 박수를 받을 정도로 노래를 즐겼다. 그래서 결혼을 앞두고 아내를 위한 깜짝 이벤트를 준비했다. 직접 축가를 부르는 것이었다. 요즘이야 흔한 일이지만, 당시에는 신랑이 축가를 부르는 게 꽤 드문 일이었다. 반주 CD도 따로 만들고, 틈틈이 비밀리에 연습했다.
그런데 결혼식 당일, 정신없이 행사가 진행되면서 모든 계획이 틀어졌다. 플래너의 지시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다 보니, 막상 무대에 올랐을 때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수없이 반복했던 가사가 전부 사라졌다. 하객들의 시선이 갑자기 버겁게 느껴졌다. 간신히 가사를 짜내며 노래를 이어갔지만, 고음에서 결국 삑사리가 났고, 하객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망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서둘러 노래를 마쳤다.
아내에게 그날이 어떤 기억으로 남았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내 기억 속 결혼식은 '축가 실패'로 남아 있다.
실패한 경험은 강한 감정 반응을 일으키며 뇌에 깊이 각인된다. 진화심리학에서는 이를 생존을 위한 학습 과정으로 본다. 인류는 실수를 기억하고 반복을 피하면서 생존해 왔다. 현대사회에서는 맹수나 독사보다 '밥줄'이 생존을 위협한다. 그래서 실패는 여전히 본능적인 두려움의 대상이다. 오래 기억에 남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우리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애쓴다. 하지만 때로는 실패를 곱씹으며 스스로를 비난하기도 한다. 반성은 발전의 밑거름이 되지만, 도를 넘으면 도전을 주저하게 만든다.
나의 사회생활은 비교적 순탄했다. 안정적인 이직과 승진을 거듭하며, 또래보다 빠르게 성장했다. 크고 작은 실적 부진은 있었지만 ‘실패’라 부를 만한 일은 드물었다. 그런데 첫 실패는 너무 강렬했다.
코로나 팬데믹 당시, 내가 운영하던 지점이 폐점됐다. 운영상의 미숙함도 있었지만, 외부 환경의 영향이 훨씬 컸다. 그럼에도 나는 모든 책임을 나에게 돌렸다. ‘조금만 더 잘했더라면’, ‘내가 부족했던 걸까’ 같은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자기비판과 우울감 속에서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실패하지 않는 법만 배웠다. 덕분에 안 넘어졌을지 모르지만, 넘어져본 기억이 없으니 넘어진 후에 어떻게 일어나는지 몰랐다. 나 때의 교육은 온통 성공을 위한 것이었고 실패하지 않는 법만 강조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단 한 번의 실수로 모든 걸 잃을까 두려워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실패를 바라보는 관점을 바꿀 필요가 있다. 구글은 실패한 프로젝트를 기록해 두는 ‘구글 공동묘지’를 운영하고, 어떤 나라에서는 ‘실패 박물관’을 만들어 실패 사례를 전시한다. 실패는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더 나은 시도를 위한 과정이라는 메시지다.
알쓸신잡에 출연한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는 “실수는 숨기지 말고, 제대로 저질러야 좋은 실수가 된다”라고 말했다. 자신까지 속이지 않고 밀어붙인 실수라면, 단순한 실패가 아니라 배움의 기회가 된다는 뜻이다. 운이 좋으면 그것은 실패가 아닐 수도 있다.
돌이켜보면, 나는 첫 실패의 충격을 감당할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 실패에 대한 내성이 부족했던 것이다. 만약 그때 좀 더 유연하게 받아들였다면, 더 빠르게 다음 도전으로 나아갔을지도 모른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는 사실, 중요한 건 실수 이후의 태도라는 사실. 지나친 자책보다는 그것을 성장의 자산으로 삼았어야 했다.
성공만 하며 살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인생이 그럴 리는 없다. 실수와 실패는 삶의 일부다. 고된 실패 후에도 여전히 살아 있다면, 최소한 하나의 추억은 남긴 셈이다. 실패한 결혼식이 아닌, 선명하게 기억되는 추억으로 남아 오래 간직할 수 있게 된 것처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실패는 없다. 운이 좋으면 김상욱 교수의 말처럼 성공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과거에 얽매이기보다, 그것을 삶의 경험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그래야 도전할 수 있고, 그 도전이 성공의 가능성을 확장시켜 준다.
미완성 원고를 다시 펼쳐본다. 서툴고 어설픈 문장들, 손발이 오그라드는 표현들이 눈에 띄지만, 그 안에는 분명 나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날의 이야기와 감정은 흐릿한 기억을 다시 불러온다. 실패의 경험이 우리를 성장시키듯, 글도 그렇게 완성되어 간다.
#고군분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