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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등속운동과 가속

- 브레이크와 엑셀 사이

by 케빈은마흔여덟

[내 삶의 추억이라고 되새김질할 만한 기억들은 크고 작은 사건 사고가 벌어지고, 그로 인해 생겼던 무수히 많은 상처들이 모인 집합체가 아닐까. 패기와 열정은 잦아들고 조심스러움과 두려움이 커져 버린 나이지만, 그렇다고 상처받을 일을 미리 두려워한다면 내 인생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겠지. 그 인생은 행복할까?]

- 나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한설희


우리는 가만히 있는 것 같지만, 사실 등속운동 중이다.


태양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주의 어딘가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 지구는 그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면서 동시에 자전도 한다. 여기에 태양계가 속한 우리은하의 이동까지 감안하면, 현재의 과학 기술로 관측 가능한 속도만 해도 초당 수백 킬로미터에 이른다. 하지만 우리는 이 어마어마한 움직임을 체감하지 못한다. 그만큼 안정적인 등속운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기관에서 대출 심사를 할 때도 이 ‘안정성’이 중요하게 평가된다. 미래에 꾸준히 상환할 수 있을지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아이러니하게도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보다 상환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더 높은 점수가 부여된다. 재산, 직장, 나이, 신용 등 여러 항목을 평가하는데, 내가 다루었던 금융상품에는 흥미로운 통계가 있었다.


상업용 자동차와 건설 중장비를 취급하는 고객층을 분석해 보면, 신체 건강한 20대보다 중년의 가장이 더 높은 신용 평가를 받았다. 패기와 열정으로 도전하는 젊음보다는, 가족을 책임지는 가장의 안정성이 더 큰 신뢰를 얻은 것이다. 실제 고객 사례를 떠올려봐도 이 통계는 맞아떨어졌다. 아마 다른 상품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이 통계를 마냥 긍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안정적’이라는 평가 뒤에는, 중년 가장이 도전하기 어려운 현실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는 늙어가고, 아이는 커가며, 사회적 입지는 점점 좁아진다. 조금만 발을 헛디뎌도 절벽 끝으로 떨어질 수 있는 상황 속에서,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최선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안정적’인 것이다.


중년에 접어들며 가장 먼저 체감한 신체 변화는 노안이었다. 어느 날부터 녹색 소주병에 적힌 깨알 같은 글씨가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머리를 흔들어도, 눈을 가늘게 떠봐도 소용없었다. 처음엔 술기운 탓이라 넘겼고, 나쁜 성분을 숨기려는 주류 회사의 음모라는 농담도 했다. 하지만 안경점에서 들은 한마디가 현실을 인정하게 만들었다.

“지금보다 도수를 높이면 먼 곳은 잘 보이겠지만, 가까운 건 더 안 보일 수도 있어요.”


노안만이 아니다. 예전엔 많이 먹으면 소화되거나 배출됐는데, 이제는 복부에 저장된다. 기억력도 예전 같지 않아, 영화 제목이 떠오르지 않으면 “그거 있잖아… 저기 뭐더라…” 하며 머뭇거리는 일이 잦아졌다.


하지만 이런 신체적 변화보다 더 불편한 건 따로 있었다. 경험이 쌓이며 판단력이 좋아질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 그 경험이 고정관념으로 굳어 있었다. 예전의 실패가 도전을 망설이게 만들고, 익숙한 것만 선택하게 했다. 새로운 가능성은 보지 않게 되었고, 스스로 삶의 반경을 좁혀가고 있었다.


예전에 기타를 배운 적이 있다. 악기 하나쯤 다룰 줄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시작했지만, 손이 작아 코드를 잡는 것이 쉽지 않았다. 매번 소리는 안 나고 손가락만 아파 흥미가 떨어졌다. 연습은 점점 뜸해졌고, 결국 기타는 창고에 처박혀 먼지만 쌓여 갔다.


나는 정말 안정적인 걸까, 아니면 위축된 걸까?


노화를 받아들이는 법은 단순한 신체 변화의 수용을 넘어야 한다. 눈이 침침하면 돋보기를 쓰고, 체력이 떨어지면 운동을 하면 된다. 젊음을 되찾으려는 욕망 덕분에 과학과 의학은 신체적 한계를 늦추는 방법을 계속 찾아내고 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따로 있다. 위축된 삶의 태도는 내가 바꾸지 않으면 달라지지 않는다.


무조건 불편을 감수하는 것이 성숙한 태도는 아니다.

최근 본가에서 조카가 쓰던 우쿨렐레를 얻어왔다. 아이를 위해 가져온 척했지만, 사실은 기타보다 작은 악기라 내가 배우고 싶었다. 마침 아이도 더는 쓰지 않아 자연스럽게 내 차지가 되었다. 예상대로 우쿨렐레는 내 손에 잘 맞았고, 연주하는 재미도 있었다. 기타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음악적 흥미가 다시 살아났다.


중요한 건 무작정 버티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되 한계를 인정하고 유연하게 대처하는 태도다.

나이가 들수록 경험이 쌓이지만, 그 경험이 굳어지면 새로운 가능성을 보지 못하게 된다. 노화가 삶의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면, 우리가 내려놓아야 할 것은 조급함이지 열정이 아니다.


중년의 노화가 불편하다면, 그에 맞는 해결책을 찾으면 된다. 눈이 침침하면 돋보기를 쓰고, 체력이 달리면 페이스를 조절하면 된다. 무작정 버티기보다 내 몸과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이 더 현명하다.


등속운동은 안정적이다.

평탄한 도로에서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인생을 살다 보면 오르막도, 내리막도 만나게 된다. 속도를 유지하려면 때로는 가속도, 감속도 필요하다. 성장이 필요한 순간엔 엑셀을, 신중해야 할 때는 브레이크를 밟아야 한다.


신체의 노화는 피할 수 없지만, 삶을 대하는 태도는 바꿀 수 있다. 당연하게 여겼던 일상에 의문을 품고, 새로운 취미를 탐구하며, 먹지 않던 음식을 먹어보는 것처럼. 작은 변화도 삶의 가속 페달이 될 수 있다. 등속운동이란 결국, 가속과 감속의 균형이니까.


#딴엔고군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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