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톨레도에서의 기억
오로지 일몰만을 목표로 다다랐던 곳이었다. 해가 지는 풍경의 아름다움으로 유명한 도시답게, 그 도시의 한인 여행객들은 일몰 시간이 언제인지, 가장 일몰을 잘 볼 수 있는 장소는 어디인지를 공유하곤 했다. 산 중턱에 위치한 호텔의 라운지 카페는 겨울의 중반이라는 시기 때문인지 사람이 거의 없었다. 꽤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니 도시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는 테라스에도 고요함이 맴돌았다. 따뜻한 차를 한 잔 시켜 앉아 있다가, 테라스로 나가 난간에 매달리듯 도시를 들여다보기를 꽤 오래 반복했다. 내 삶에서 가장 긴 시간을 들여 노을을 기다린 날이었다.
오후 다섯 시가 넘어가자 온화해진 햇살들이 도시 곳곳에 내려앉아 벽돌로 이루어진 도시를 붉은색으로 천천히 물들여갔다. 제자리에 있는 것 같던 해는 조금씩 서쪽으로 떨어져 가고, 그 속도에 발맞추어 도시는 점점 더 느슨해져 갔다. 어느 순간엔가 드문드문 거리의 가로등 같은 불빛들이 햇살을 대신하며 도시에 자리 잡았다. 어두워진 도시는 낮의 팽팽한 긴장감을 풀곤, '나에게 이런 면이 있는 줄 몰랐지'라며 짓궂게 웃음을 보이는 것 같았다. 나는 여전히 테라스에서 그 모든 변화들을 지켜보았다. 밤이 해를 삼키고, 한 시간이 지나서야 해의 잔해들이 모두 사라졌다. 이제 밤의 시간이었다.
기차를 타러 돌아가는 길에 언젠가 내 삶에 잊을 수 없는 풍경을 꼽으라 한다면 이 도시에서 해가 저무는 광경을 지켜본 일이겠지,라고 생각했다. 단지 내가 마주한 그 아름다움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일몰을 보겠다는 마음으로 이 도시를 찾아온 것, 오랜 시간을 들여 낮이 밤으로 변하는 시시각각을 눈에 담고 음미한 일, 그리고 그것을 삶의 추억으로 간직하겠다고 마음먹은 일을 말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 보통의 날, 보통의 일몰을 특별하고 잊을 수 없는 일로 만들었다. 내가 여전히 찰나의 일몰을 위해 많은 시간을 들이는 것은 오직 이 이유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