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만한 당신 Jun 16. 2020

지금이 아니면 언제?

언젠가는 작가가 될 거라던 믿음

어렸을 때부터 막연히 꿈꾸던 이상적인 모습이 있었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 데, 그게 심리학이 되었으니 전공과 관련한 논문이나 칼럼 같은 전문적인 글을 쓰고 강의를 하는 것이 하나였고, 다른 하나는 알랭 드 보통의 비유처럼 '일상의 철학자'가 되어 일상의 면면에서 삶의 정수 같은 것을 포착하여 글로 담아내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학술적 글쓰기이던, 문학적 글쓰기이던 어쨌든 내가 가진 것들을 '글'이라는 매체로 표현하고 싶다는 오랜 바람을 가져온 셈이다.



그렇다면, 내가 실제로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뭔가를 했느냐. 그렇지 않았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글 쓰는 능력이나 기회가 '자연스럽게' 생기고 나타날 것으로 굳게, 진심으로 믿어왔다. 글을 쓰게 되는 일이 생기겠지, 여건이 되면 잘 쓰는 사람이 되겠지 같은 순진한 믿음 말이다. 아직 그런 능력이 생기지 않았고, 기회가 오지 않았으므로 지금은 때가 아니고, 글을 쓰지 않아도 괜찮다며 스스로에게 쉽게 면죄부를 주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 순진하고 굳건한 믿음대로 전문적인 칼럼이든 일상의 에세이든 좋은 글을 쓰는 능력을 자연스럽게 얻었느냐 하면, 당연히 아니다. 그런 바람을 품은 지 1년, 3년, 5년을 지나 10년이 지나고서도 나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너무나 간단명료하다. 내가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함께 학위과정을 밟고 있는, '어쩜 저렇게 일을 잘하지'하는 감탄을 자아내는 동기가 있다. 교수님이 주는 일을 체계화시키고, 분배하고, 보고서로 작성하는 일련의 일들을 다양한 프로그램이나 툴을 사용해서 정말 깔끔하게 해내고, PPT 제작 실력은 보는 사람마다 감탄할 정도였다. 그 동기를 옆에서 몇 개월 지켜보면서 '일머리가 타고났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친해지고 나서 들어보니, 대학원에 오기 전에 3-4년 동안 비영리단체에서 일하면서 밥 먹듯이 밤을 새우며 일을 배웠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 어떻게 그렇게 했을까' 싶을 정도라며 웃었다. 그런가 하면, 미국에서 대학을 나온 한 선생님에게는 '영어를 잘해서 좋겠다, 부럽다.'라고 가볍게 말했는데, 그 선생님은 영어를 잘하기 위해 보냈던 그 시간이 지옥 같았다고, 떠올리기가 싫을 정도라고 답해주었다.


그제야, 주변의 사람들이 지금 '잘하고 있는 것'들이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라, 잘하기 위한 시간과 노력을 들인 결과라는 사실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그냥 잘하는 사람은 없다. 막연히 그럴 것 같은 사람도 들여다보면 꼭 그만큼의 시간과 노력을 들였으리라.


그래서, 일종의 절박함으로 글을 쓴다.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되는 것은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종류의 일이 아니다. 어색하고 하잘것없어 보여도,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하는 종류의 일이다. 비루한 문장을 쓰는 시간을 쌓아가고, 더듬거리면서도 더 나은 문장을 쓰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조금이나마 나아지는 일이다. 아주 느린 깨달음이지만, 내가 원하는 모습과 능력을 갖추기 위해 '지금' 행동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잘하게 되는 날은 결코 오지 않을 것임을 이제는 안다. 앎을 실천으로 옮기기 위해 스스로에게 던져야 하는 말은 이것이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매거진의 이전글 일몰을 기다리는 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