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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만한 당신 Jun 11. 2020

하나의 아름다움이 가고 나면

봄도, 청춘의 시절도 끝난 것 같았을 때

세차게 내리던 비가 구름을 걷어가고, 말간 하늘이 눈에 들어온다. 비 온 뒤의 공기를 맡고 싶어 집을 나섰다. 나온 김에 가끔 가던 비건 카페를 오랜만에 가보기로 한다. 동네의 천을 따라 20분 정도 걷는 길인데, 한 달만에 풍경이 바뀌어있음을 느낀다.


지난달 초, 길을 따라 도열한 나무들이 벚꽃을 흐드러지게 드리우고 있었다. 봄의 절정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바람이 불면 연해진 벚꽃 잎들이 바람결을 따라 춤을 추듯 떨어지고, 따뜻해진 햇살이 가지 사이로 스며들어 반짝거렸다. 한참이나 벚꽃 한가운데 있다, 아쉬운 마음으로 발을 옮겼다. 그리고, 이제 성북천의 아름다움은 아마도 벚꽃이 지면 사라지겠구나 라는 쓸쓸한 생각을 했다.


이제 나무들은 벚꽃 대신 초록색 잎을 피워냈다. 그새 무성해진 잎은 5월의 해를 가리며 그늘을 만들어 줄 정도가 됐다. 여름이 오려나, 온통 녹음이네, 벚꽃 참 예뻤는데, 아쉬워하다가 길을 따라 피어있는 장미를 만났다. 드문드문하게 자리 잡았음에도 선명한 붉은색이 시선을 앗아간다. 푸르름 속에 흔들리는 장미는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에 걸맞은 모습이었다.



최근 들어 내가 가장 아름다웠던 시기가 지났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흔히 말하는 20대의 청춘의 시기 말이다. 생기 도는 외양이나 해맑았던 마음이 온전하게 지켜졌던 시절은 가고, 지쳐 보이고 울적해 보이는 일이 잦아지고 사람의 의도나 행동을 의심하게 되는 일도 생기면서 스스로 아름다운 사람과는 멀어졌다고 느끼게 되었다. 벚꽃이 질 것을 슬퍼하는 마음도 그런 마음이었다. 절정의 아름다움이 사그라들면 남은 것은 흔하고 특별하지 않은 잎사귀들 뿐일 것이라고. 그런데, 다 사라졌을 것이라 예상했던 곳에 다른 아름다움이 있었다. 자신의 자리에서 피어난 장미일 뿐인데, 묘한 위로를 받았다.


하나의 아름다움이 가버렸다고 해서 영영 아름답지 않아 지는 것은 아니구나.

한참 장미를 바라보다 삶 또한 꼭 그러하길 바라게 됐다. 유일하다고 믿었던 아름다움이 사그라들고 때로 사라지더라도, 또 다른 아름다움이 틔워 나고 있고 어쩌면 이미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렇다면 나는 어딘가에 반드시 존재하고 있을 내 삶의 아름다움을 찾아다니기만 하면 된다. 마음이 다치고 상할 일들을 겪다 보니, 다른 사람이 겪었을 혹은 겪고 있을 훨씬 많은 아픔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래서 더 깊이 공감하게 되고, 조금은 더 다정한 사람이 되었다. 예전이었으면 포기했을 법한 일도 스스로를 다독이고 다른 대처방법을 써보면서 어떻게든 해내가는, 꽤나 맷집 좋은 사람이 되었다. 이해가 되지 않던 사람들의 행동의 이유를 알게 되고 나의 어리숙함도 수용해가면서 사람의 마음을 더 헤아릴 줄 아는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아름다움이 반드시 하나의 모습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면, 다른 아름다움을 늘 발견할 수 있다면, 어쩌면 아름다움은 영영 지속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항상 절정의 아름다움을 지속되기를 바라는 대신, 나와 내 삶과 그리고 세상에 존재하는 갖은 아름다움을 기꺼이 찾아내고 발견할 줄 아는 넉넉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게 됐다. 곧 6월이 오면, 장미의 아름다움은 사라지겠지만 초여름의 풍경이 펼쳐질 것이다. 기꺼이 감탄하고 감사하며 또 다른 아름다움을 향유하는 시절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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