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마음은 위로가 되니까
혼자 성북천을 걸었다. 겨울밤 공기와 드문드문하게 천을 거니는 사람들 사이로 호젓한 물의 흐름을 들여다보고, 흘러가듯 머물고 있는 청둥오리 한 쌍과 물가의 수풀 사이를 폴짝거리고 있는 길고양이를 한참 응시하기도 하며, 느긋하고 개운한 마음으로 걸었다. 혼자여도 충만하다.
이 길을 혼자 걷는 게 괴로웠던 수많은 날들이 있었다. 살고 싶지 않았고 끝이 보이지 않았고 어디로도 물러설 곳도 돌아갈 곳도 없이 느껴져서 마냥 서성이며 어찌할 바 모르며 버텼던 수많은 날들. 그러나 그 날들 속에서 나를 붙잡아주었던 건, 함께 걸어주었던 사람들이었다.
누군가가 밉고 억울해서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새벽이 깊어가도록 뒤척이던 나의 한숨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어 내 손을 잡고 집을 나서 적막이 내려앉은 도로를 한참 걸어주었던 사람. 내뱉는 숨마다 하얗게 흔적을 남기는 차가운 새벽이었다. 그 사람과 나는 마냥 걸었다. 머릿속을 떠다니던 혼란한 생각과 감정을 입 밖으로 간간히 내뱉을 때, 그 사람은 가만히 들어주었다. 내내 손을 잡으며 전해준 온기가, 여전히 남아있다.
삶은 왜 이리도 자잘한 불행들과 자꾸만 슬퍼지는 일 투성이냐며, 며칠 내내 방에만 머물렀던 나를 데리고 해변을 따라 난 정돈된 길을 함께 걸어준 사람도 있었다. 겨울이었다. 패딩을 목 끝까지 잠그고 각자의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발걸음을 맞춰 걸었다. 산책길이 끝나는 지점과 맞닿은 바다를 보며 그 사람도 삶의 지난함에 대해 말했다. 철벅철벅, 비슷한 소리를 내는 파도처럼 우리도 반복되는 지루한 삶을 함께 오가는 것 같았다.
함께 걸어준 그 사람들, 더 정확하게는 그 시간들을 함께 버텨주고 옆에 있어준 그 사람들 덕에 나는 이제 혼자 걸어도, 혼자 시간을 보내도 무척 괜찮아진 사람이 되었다. 그 사람들은 나를 위해 억지로 행동한 것도, 시혜를 베푸듯이 위로를 준 것도 아니었다. 다만 내가 누군가의 온기를 필요로 할 때, 무엇을 바라서가 아니라 단지 그럴 수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기꺼이 내 옆에 있어주었다. 함께 걸어주었다.
그 사람들은 그때의 자신이 나에게 얼마나 위안이 되었는지 알고 있을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나 또한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장면에서, 누군가가 필요로 하는 것을 주었던 사람일 것이다. 의도하지 않더라도 따뜻한 마음은 때로 누군가를 구원한다고 믿는다. 나와 걸어주었던 그 사람들도 혼자 걷는 길에 어려움과 슬픔보다는 홀가분하고 충만하기를, 혹은 누군가의 손을 잡고 기쁘게 걷고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