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일주일 전 지난 8년을 살았던 전셋집에서 이사를 했다. 집을 샀냐고요? 아니오 또 전세랍니다. 이전 집은 집주인이 투자용으로 산 아파트라 중문도 없고 붙박이장도 없는 깡통 아파트였는데 나도 남의 집에 돈 쓰기 싫어 없으면 없는 대로 적응하며 살았다.
새로 이사 온 집은 병히가 어머니와 보고 결정한 곳으로 나의 의견과 소망이 1도 반영 안 된 장소였다. 대형평수이나 이십 년이 넘은 구축 아파트에 저층이라 얘기만 들어도 싫었는데 이미 계약을 했다니 어쩔 수 없었다.
주인집이 이사 가고 처음 본 집 광경은 쇼킹했다. 빌트인 냉장고 안에는 성에가 가득했고 바닥은 시커멓게 썩었으며 시스템 에어컨은 누랬다. 겨우 탈출한 대원 아파트가 떠오르며 머리가 어지러웠다. 좋은 거라곤 방이 하나 더 생겨 딸들의 침실을 꾸밀 수 있다는 점밖에 없었다. 이곳에서 살 내가 아닌 어머니와 집을 보러 간 병히가 원망스러웠다.
"짐들에 가려져 이 정도로 낡은 줄 몰랐어 미안해 지속아"
지금껏 호강만 시켜준 병히의 실수를 눈감아 주기로 했지만 속이 부글거렸다. 어머니에게 집을 보고 온 날 밤새 운 이야기를 전하니,
"울긴 왜 울어. 전에 살던 전세가에 두 배짜리 집이야 그 돈 없어서 여기 못 사는 사람들이 수두룩해!"
"......."
뭐든 선택엔 책임이 따르는 법. 이 집에 따르는 책임은 모조리 병히 것이라고 마음을 놓으니 부글거리던 속이 잠잠해졌다. 그리고 드디어 어젯밤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엄지 손가락만 한 발이 수십 개 달린 시커먼 돈! 벌! 레! 소리 질러~~~~
나는 병히를 불러 화장실에 있는 벌레를 잡으라고 했더니 그가 몸서리를 쳤다. 십여분 돈벌레와 사투를 벌인 병히에게 그동안 벌레를 잡아본 적 있느냐 물으니 없다고... 나는 자꾸만 웃음이 새어 나왔다. 갓 짠 국내산 참기름에 비할 수 없는 꼬수움이었다. 이십 년 넘은 저층 아파트를 골랐을 땐 벌레와의 동거도 각오했어야지!
병히는 이제 다시는 나 없이 집을 보고 계약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 집에서 얼마나 살지 모르겠지만 벌레가 많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