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봄에 쓴 글
오늘 아침 신문을 폈을 때, 두 사람의 자살 기사가 나를 맞이했다. 한명은 전세사기 피해자, 다른 한명은 십대 청소년이었다. 각자만의 이유로 세상을 견디지 못하고 꺾여버린 영혼들의 이야기가 신문 1면을 채우고 있었다. 두 삶이 세상을 져버린 이유는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상기시키는 것이 있었다. 부동의 자살률 1위 국가, 대한민국. 과장이었으면 좋겠을 정도로 극단적인 ‘1’이라는 숫자가 오늘의 신문 1면을 통해 유독 생생하게 다가왔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흔들리는 순간들 속에서 ‘꺾이지 않는 마음’을 지켜낸 우리나라 축구대표팀은, 2022년 월드컵에서 16강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뤄냈다. 그리고 수많은 대한민국 국민에게 감동을 준 그들의 슬로건, '중꺾마'는 금세 우리의 일상 속에 자리잡았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에 ‘중꺾마’를 외치며 마음을 다잡기 시작했다. K축구의 슬로건이, 끈기와 뚝심으로 똘똘 뭉쳐 무너지지 않는 K정신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비율로 사람들이 생을 마감하는 나라, 대한민국. 이곳에서 ‘중꺾마’라는 구호가 유행하고 있다. 이미 꺾일대로 꺾여버린 마음들이 세상을 떠난 이야기가 신문 1면을 채우고 있던 오늘, 이 사실이 왠지 섬뜩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중꺾마’라는 구호는, 이 사회가 그만큼이나 마음이 꺾이기 쉬운 곳이라는 것을 방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미 마음이 꺾여버린 사람들이 어떻게든 마음을 다잡아보려고 힘겹게 외치고 있는 구호인 것은 아닐까.
‘중꺾마’라는 구호에서는 개인의 의지가 강조된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으므로, 본인이 처한 환경이 어떻든 포기하지 말고 ‘노력’하면 된다는 메시지가 은연 중에 담겨있다. 이 메시지는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노력’이라고 말하는 한국사회의 능력주의와 맞닿아 있기도 하다. 성공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본인의 성공 요인이 노력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노력만큼이나 재능, 환경 등 운이 성공을 뒷받침한다. 학력 수준과 부모의 경제력 수준이 비례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하지만 능력주의는 이러한 운의 요소는 배제한 채, 성공한 이들은 노력했기에, 실패한 이들은 그 노력이 부족했기에 자신들의 결과를 마주했다고 손쉽게 설명해낸다. 그렇기에 아무리 노력해도 보상이 주어지지 않아, 혹은 너무 큰 실패를 마주해 마음이 꺾여버린 이들에게, 능력주의와 ‘중꺾마’가 해줄 수 있는 말은 “마음을 다잡고 노력해라”는 것밖에는 없다.
부모의 경제력, 개인의 재능과 그에 대한 현 사회의 수요, 정부의 정책, 그 외 개인이 제어할 수 없는 수많은 행운과 불운들이 우리를 성공과 실패로 이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실패가 닥쳤을 때 이겨낼 수 있도록 돕는 개개인의 단단한 마음은 물론 필요하다. 하지만 더욱 필요한 것은, 실패를 겪은 이들이 다시 도전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단단한 사회이다. 전세사기 피해자의 집이 경매로 넘어가지 않도록, 받아야 할 전세금을 온전히 돌려받을 수 있도록 하는 보호장치가, 입시경쟁과 친구관계, 가족관계 등으로 좌절하는 청소년들의 정신건강을 돌보는 사회적 안전망이 필요하다. ‘중꺾마’만큼이나, 혹은 그보다 더 우리 사회에 필요한 K정신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꺾여버린 마음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믿을 수 있는 사회가 되어주는 것. 그것이 우리가 “꺾이지 않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