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주영 Dec 13. 2020

삶이 허무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2020년 9월 24일 오후 11:26

짧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 길고 보람이 없는 탓일 것이다. 무얼 남겼다고 느낀 순간, 사라지는 것은 나 자신이 아니라 충만감이다. 가끔 심지어는 결실들까지 사라진다. 나는 남는데. 죽을 때까지 이 짓이 반복된다. 무언가 만들고, 그 기분은 사라지고. 무언가 해내고, 그 기분이 사라지고. 누군가 만나고, 그 기분은 사라진다. 물리적인 것은 남지만, 그것들도 모두 어느 순간엔 닳거나 질린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들은 기억으로만 남다가 기억으로도 사라진다. 재현되지 못하고 퇴색되어 간다. 처음엔 작은 디테일들이, 다음엔 그 공기와 소음이나 분위기가, 모든 게 페이드 아웃되어간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사랑도 어떤 지독한 싸움도 끝나지 않는 일들의 연속 같다. 지친다. 삶은 호수 위에 파문을 일으키는 돌멩이 같고, 파문은 금방 끝난다. 삶은 끝나지 않는 지독한 것, 지치는 것, 다 알게 되고 잊게 되는 것이다.


특히 하루에 몇백 건의 소식을 스크롤하며 모든 것들이 액정에서 휘발되는 이 허무의 시대에서는 모두들 당연히 지친다. 위안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 남기는 것과 보여주는 것을 혼동하기 쉬워서 사진을 찍고 글을 남기며 매일 다들 자신의 존재를 어딘가에 증명하고 있지만, 그걸로 충분하지 않기에 모두 몇 번이고 화면을 새로고침 하고 있는 것 아니던가.

작가의 이전글 포기를 잘하는 사람하고는 안 맞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