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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주영 Nov 27. 2020

신이 한 사람을 세상에 보내면서 말했다.

2020년 9월 29일 오전 02:04

신이 한 사람을 세상에 보내면서 말했다.

네 목적은 자부심을 갖고 돌아오는 것이다.

그 한 사람이 물었다.

선행을 하는 것도 아니며, 신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 것도 아니고, 대단한 지식이나 위업을 쌓고 돌아오는 것도 아니라 자부심입니까?

신이 대답했다.

선행을 해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면 선행을 해라. 내 이름을 알리는 일로 네가 자부심을 느낀다면 내 이름을 알려라. 지식을 쌓고 업적을 쌓을수록 자부심도 그만큼 부풀러 오른다면 그렇게 해라. 다만 자부심을 느낄 수 없는 일이라면, 자부심을 훔쳐가는 일이라면 그중 어떤 것도 하지 말라.

사람이 다시 물었다.

왜 제게 오직 그 하나만을 원하시는 겁니까.

신이 말했다.

나는 세상에 세운 질서와 규칙만큼이나 혼란을 여기저기 흩뿌려놨다. 나는 좋고 선하며 믿을만한 사람들만큼이나 속이고 실망시키며 심지어는 배신하는 사람들도 너보다 먼저 보내 놨다. 나는 맛있는 음식만큼이나 쓴 고통을 생애 전체에 여러 번 준비해뒀다. 그 안에서 오직 하나만을 목표로 삼을 수 없을 것이며, 그 안에서 단 하나의 절대적인 가치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심지어 넌 나조차도 의심하거나 원망하거나 부정하겠지.

그리고 신이 이어 말했다.

내가 네게 주는 숙제는, 그 많은 가능한 답들 안에서도 나름의 목표를 찾아 이뤄내는 것, 그 와중에도 우선할 수 있는 가치를 위해 봉사하고 스스로를 바치는 것이다. 많은 것을 느끼고 경험해라. 헛된 일에 힘을 써봐라. 되돌려 받지 못할 친절을 베풀어라. 그리고 그동안 가치 있는 기분과 생각들을 고르고 모아서 독특하고 누구도 이해하기 어려운 너의 세계를 만들어라.

내가 만든 세상 안에서 너의 세상을 다시 한번 만들어라. 내가 먼저 보낸 다른 아이들의 세상을 엿보고, 내가 나중에 보낸 다른 아이의 세상을 함께 꾸미면서 그 과정이 가끔은 어렵고 귀찮고 지겹다고, 하지만 때로는 아름답고 행복하다고 여겨라. 그 수백만 가지 가능한 세상 안에서 너 나름의 한 가지 정답을 가장 충실하게 짜 맞추고, 이루고, 이름 붙이고 와라. 그러고 나서 돌아오는 너의 얼굴과 영혼만이 나를 기쁘게 할 것이다. 그 얼굴과 영혼을 내가 자부심이라고 이름 붙인 것이다.

이 세상을 불규칙하게 한 이유는, 네가 매번 같은 답을 가지고 돌아온다면 너와 나 모두가 이 영원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을 혼란하게 한 이유는, 오히려 항상 선하지 않으며 그렇다고 항상 악하지도 않은 세상 안에서도 네가 찾아내는 일관된 믿음이 항상 선한 세계에서의 정의감보다 항상 악한 세계에서의 인내보다 더 구하기 힘들고 어려운 것임을 우리 모두 겪어보고 알기 때문이다.

사람이 깊이 생각했다. 그리고 인사했다.

다녀오겠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마트에서 장을 보고 돌아가는 길 별을 올려다보다가 문득 그 대화를 기억했다.

전 아직 자부심도 목표도 믿음도 찾아내지 못했는데 어쩌죠,

그가 별을 올려다보며 묻자 신이 조용히 대답했다.

지금 네가 바라보고 있는 건 인공위성이고, 네가 남은 시간이 아직 많다. 그리고, 넌 사실 이미 충분히 많이 해냈다.

신이 말했다... 네가 올려다보는 이 별들만큼이나 별에서 보이는 네 세상도 빛나고 있다고. 점점 더, 빛나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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