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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주영 Nov 25. 2020

우리는 삶을 고르지 않고 추억해야 하기에

그레타 거윅의 작은 아씨들(2019) 감상평

당신은 메그도 조도 에이미도 베스도 아니다. 또한 당신은 메그이기도 하거나 조이기도 하면서, 에이미일 수도, 베스일 수도 있다.


어렸을 때부터 주인공이 여럿 등장하는 작품을 보면 우린 대체로 그중 어떤 인물 유형과 자신이 가장 가까운지 견주어 보는 일을 많이 했다. 파워레인저나 웨딩피치가 그랬고, 프렌즈를 보고도 그랬고, 섹스 앤 더 시티를 봐도 그랬다. 혈액형과 별자리, MBTI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경향에 따라서 성격에 따라 인물을 갈라 나누다 보면 그 사고방식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으니까 그랬고, 그렇게 이해하는 틀 속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더욱 풍부하게 이해하기도 했다. 너와 내가 어떻게 다르게 보고 느끼고 결정하는지를 자연스럽게 말하면서 그 안에서 승자와 패자를 굳이 나누지 않았으니까, 모두 편안하고 원만하게 이야기를 즐겼다.


작은아씨들, 이 영화는 그런 분류법보다 좀 더 큰 한 발자국을 내디딘 것 같다. 그렇게 인간의 본질로 더 가까이 다가섰다. 당신은 굳이 조이거나 에이미거나를 고르지 않아도 된다고, 모두가 메그의 선택을 할 때가 있고, 에이미일만큼 화날 때도 있고, 베스처럼 선할 수도 있다고. 다만 모두 조처럼 소중히 기억하라고. 저 넷의 삶 중 어느 하나를 두둔하려 하기보단, 네 자매에서 찾아내는 당신의 삶의 여러 추억들 모두를 그 자체로 소중히 여기라고. 심지어 해피엔딩이 아니기에 누군가 꾸미고 지어내라 할 지라도, 그 정형성을 벗어난 자기 자신을 자랑스러워하라고. 그렇기에 어쩌면 당신은 메그처럼 헌신적인 결말을 맞지 않아도 에이미처럼 많은 것을 얻어내지 못해도, 조처럼 재능을 발휘하지 못해도 당장은 괜찮다고.


실제로 그레타 거윅 감독은 이야기 속 네 명의 인물들 모두를 좀 더 입체적으로 만들기 위해 이야기를 덜고 더했다. 성인이 된 각자를 앞서 배치하고 회상을 차츰 보여주면서, 선형적으로 보이는 그들의 이야기를 단순하게 원인과 결과로 이해하는 것을 경계했다. 그 각자 인물의 지금과 다른 어제를 함께 경험하고, 그를 통해 그 주인공들을 용서할 필요가 있기도 전에 용서하게 만들었다. 다르게 말하자면, 그들과 닮은 관객들이 저 자신의 찬란하거나 아름답던 추억을, 못나고 아픈 실수를 떠올리면서도 완전히 다른 현재를 되새기면서도 자신의 과거를 미워할 아주 잠깐도 허락하지 않았다. 단순한 장면 배치만으로도 말하는 것이다.


'우리 중에 독단적인 주인공도 일방적인 죄인도 단 한 사람도 없어. 기억해봐, 삶은 그런 적이 없어. 가끔 돌이키고 싶을 정도로 너무 아름다웠지. 지금과는 너무 다르게 미성숙하기도 했지. 하지만 지금만큼 알 수 없었던 당시의 우리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어. 그리고 지금의 우리의 삶이 굳이 죗값이라고 대가라고 누가 함부로 말하겠어.'


초라하고 아쉽다고 메그를 생각한다면 메그 역시 실크 하나 드레스 하나에 일희일비하는 자신의 삶을 한탄할 때도 있지만 사랑에 거짓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을 보라. 짝이 없어 외로울 것이라고 조를 한 줄로 짧게 설명하려거든 그가 혼자만의 시간에 생각하고 해내는 것들의 가치 역시 함께 보라. 그리고 조가 너무 외롭다고 고백하던 순간을, 타협하려던 순간과 그 타협이 불가능해졌을 때의 표정을 보면서 사람들 중 그 누구도 외롭거나 그렇지 않은 일에 책임이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라.  삶을 모르던 철부지 에이미가 현실주의자가 되었을 때도 그 역시 동시에 사랑이라는 대책 없는 낭만에 결정을 맡겨야 했다는 것을 기억하고, 아직도 무언가를 꿈꾸는 자신을 용서해라. 모든 걸 베풀다가 불운을 전염받아 떠난 베스를, 그 누구도 비난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라. 넷 중 가장 빈자리가 큰 그를 기억하면서, 당신이 보상받을 수 없는 친절과 헌신을 베푼 순간들을 후회하지 마라.


그러니까 굳이 나누어 가르지 말라. 이 중 어떤 삶을 선택할 수 있다고 과신하지 말라. 자매 중 누가 가장 행복한 결말을 맞았는지 따져보려 들지 말고, 수천번을 본다면 그 수천번마다 네 자매 중 다른 사람에게 공명하고 공감할 자기 자신을 미워하지 말라고. 사람은 그렇게 복잡하고 복합적인 존재니까.


당신은 조의 메그였고, 넷 중의 에이미였으며, 기억 속의 베스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들을 기록하는 조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언제든 삶은 굉장히 야속하지만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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