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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주영 Nov 25. 2020

새로고침의 일상

2020년 11월 4일 오전 01:34

미쳤다는 것은 같은 짓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원하는 것이다.라는 영어권의 관용표현이 있다. 사실 따져보면 같은 페이지에서 새로고침을 반복해서 누르는 행위도 일종의 같은 짓이라고 할 수 있다. F5, 당겨서 리프레쉬, 스크롤 올리기.

하지만 인터넷의 위험한 점은 그 새로고침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똑같은 짓을 계속해서 하고 있음에도 새로운 자극을 준다. 결국 인터넷에 길들여질수록 인간은 실패하지 않아도 즐거울 수 있는 안전지대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별다른 시도를 하지 않아도 기분 좋을 수 있는 마약 주사 행위를 내면화하는 것이다.


매일 새로고침으로 살아있는 이들의 삶이 변하기 위해서는 인터넷을, 와이파이와 온갖 통신망을 삶의 레이어에서 제거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도 모른다.


동시에, 어쩌면 일하고 장보고 요리하고 설거지하고 세탁하고 청소하고 나면, 고갈된 나 자신이 유일하게 의욕 없이도 해낼 수 있는 건 오직 힘없는 무한새로고침뿐일지도 모른다는 걸 깨닫는다.


난 조용히 미쳐가고 있다. 죽어가고 있다. 어쨌든 인간은 무한동력머신이 아니기 때문에, 같은 짓으로 같은 일상을 벗어날 순 없고, 사고하는 것으로 더 사고하거나 행동하는 것으로 더 행동하진 못한다.


무언가 바꾸어야 한다. 새로고침은 그냥 슬프기만 하니까. 제자리걸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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