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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주영 Nov 24. 2020

내겐 '그 순간'은 오지 않을 것이다.

비극도 행운도 없이 사는 나와 내 옆자리 동료들을 위하여

그 순간 말이다. 인생을 좌우하는 변곡점, 가치관을 뒤흔드는 사건, 다시는 반복하고 싶지 않을 비극이나 또 한 번 겪고 싶은 엑스터시의 환희 같은 것, 인생이나 재정의 그래프를 꺾어 올려내거나 내리꽂아 당사자를 다른 사람으로 바꾸는 그 지점은 최소한 내게는 오지 않을 것이다.


애당초 그런 순간에 대해서 얘기하는 사람들을 나는 잘 믿지 않는다. 누가 믿더라도 내가 믿어서는 안 된다. 일단 전환점 이후의 삶을 사는 그들은 삶을 겪으면서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겪고 난 후의 삶에 대해 나름의 스토리를 설정하여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여태까지 살아낸 삶에서 가장 중요했던 순간에 느낌표를 탁, 찍어 우리에게 보여줄 뿐이다.  그 느낌표를 순진하게 굵은 글씨 큰 크기로 보아서는 안된다. 대체로 삶은 그렇게 공처럼 튀어 오르지 않고, 작은 하루들의 반복과 간섭과 엎치락뒤치락 전진과 후퇴로 이뤄져 있다. 재주든 운이든 많은 사람은 어느 날의 주가 상승이나 로또 당첨은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아닐 것이다. 물론 나한테도 드라마틱한 파경과 상실은 언젠가 있을 것이다. 그래도 일단 정말로, 나는 어떤 멋진 드문 특별한 사례는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내게도 언젠가 저런 날이 올 거야. 나도 그 결정적 순간이 되면 그 기회를 잡아내고 내 모든 것은 변할 거야. 삶은 그렇게 순식간에 변할 수 있어. 나는 그 날을 기다리며 살아가면 되는 거야.'


아니다. 나한텐 없을 것이다. 여태 없도록 살아왔기 때문이고, 스스로 없앴기 때문이다. 나는 지나치게 민감하고 예민해서 위기와 어려움을 교묘하게 비켜갈 줄 알았다. 살면서 교통사고 한번 없었다. 아파봤자 저린 다리나 결린 어깨를 짊어지고 출퇴근을 생환해 돌아오는 수준의 위기만을 다녀왔다. 사소하게 누군가의 기분을 상하게 하거나 피곤할 정도로 싸움에 열을 올리는 일도 이제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 것들 앞에서는 슬금 꼬리를 내릴 정도의 눈치와 비겁함을 갖춰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게 아무래도 끔찍하게 나쁜 파문은 없을 것이다. 내게 일어날 가장 불행할 일은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그 날이겠거니, 내일이든 30년 뒤든 필연적으로 그 날은 오겠거니, 하고 살게 된다. 그렇게 살면 된다.


또한 나는 겁이 많아서 성공에 열을 올리거나 기회에 목숨을 바칠 정도로 살고 있지 못하다. 그래, 이런 태도로는 당연히 거대한 역전을 이뤄낼 수 없다. 물론 그만큼 간사하게도 동시에 감사하게도 나는 빚 없이, 그리고 평생을 짊어질 실패의 기억 없이 살아내고 있다. 내 삶에 가장 큰 변화는 기껏해야 직장을 옮기거나 직종을 옮기는 일, 때로는 가차 없이 자리에서 잘리거나 비참하게 면접에 떨어지는 일이 태반 전부일 것이다. 그 외에는 평생 같은 마을에서 같은 직장을 똑같이 다니는 사람과 비슷하게, 어떤 스타카토 없이 살 것이다. 여행을 해도 모험을 겪지 못하고, 스릴과 자극을 찾아도 잘해봤자 적당히 쓸쓸한 추억 정도만 남을 것이다.


그래, 그럴 것이다. 도저히 잠도 못 이루고 술과 약을 털어 넣는 환자들의 밤을 위해, 부당한 처우와 폭력을 겪고 괴로움에 내일을 두려워하는 약자들의 밤을 위해, 오늘도 괴로운 하루를 거뜬히 이겨낸 이방인과 아웃사이더들의 밤을 위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 위대한 일을 이뤄내는 위인들의 밤을 위해, 너무 많은 것을 가져서 상실에 대한 공포를 겪는 순진한 행운아들의 밤을 위해. 그 모든 이들의 밤에 안식이 오라고 기도할 여유를 지금에라도 당장 내놓을 수 있을 정도로 내 삶은 무난하고 무탈하다. 어떤 놀라운 지점 없이 이렇게 단조롭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괴로움은 치욕적 이게도 매일 비슷하기만 한 이 삶을 살아내야 하는 외로움과 허무에 불과하다.


나는 그렇기에 오늘을 살아낸 것과 내일을 살기로 결심한 일에 만인의 환호와 응원을 받지도, 가장 특별한 부러움을 사지도 못할 것이다. 언젠가의 이야기가 되지도 못할 것이다.


그렇기에, 이 글을 쓰는 내 손가락은 로션으로 촉촉하고, 나는 특별히 죽을죄를 지지도 않았고, 나는 딱히 대단하지도 않기에, 그래서 나는 나를 칭찬하지도 못하지만 나를 미워하는 일에 죄책감을 느끼기에, 기회가 있음에도 발전하지 못하기에, 다만 살아낼 뿐이기에, 저주해서는 안되지만 저주하기에. 다른 날을 다른 성격과 다른 사고방식을 소원하지만, 그러기 위해 자다가도 자세를 몇 번이고 고쳐 누으며 제발 특별한 것을 염원하고 기대하지만, 결국에는, 어제는 심지어 꿈속에서 울고야 말았지만.


그래도 계속 이렇게 살 것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세상이 온갖 재난과 병과 승리와 비리에 연연하는 뉴스를 장식하는 순간조차, 내 삶은 마치 세 다리 건너 건너 살고 있는 듯 계속 이렇게 어정쩡하게 뜨겁고 적당히 춥고 그저 평안할 것이기에. 역시나 결코 그런 무시무시한 잊히지 않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받아들여야 한다. 그걸 받아들이고 그럼에도 살아가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중대하고 심각한 결단이 오직 그것이기 때문이다. 이 무난하고 무탈하고 동시에 적당히 남들만큼 피곤하고 어려운 이 삶을, 특별히 굉장히 좋은 이야기가 아닐지라도 끝까지 지켜보고 완결을 읽는 일을 해야 한다. 그걸로도 충분하다고 믿으면서, 남들 하는 것처럼 음악과 술과 음식 같은 좋은 일들을 욱여넣고, 이것으로 충분히 괜찮다고 믿는 것을 하겠다고 결심하는 일을 해내야 한다. 내 삶에 이뤄내야 할 것도 이겨내야 할 어떤 것도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고도 살아내는 일이 나의 가장 큰 알약이고 난 이걸 삼켜야 한다.


나는 그 누구에게도 특별할 필요 없이 내게만 특별하면 되지만, 사실은 나는 나한테조차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매일 견뎌야 한다. 나는 거울을 볼 때 가장 환하고 강렬한 사람도 가장 비겁하고 못난 사람도 가장 용감한 사람도 마주하지 못하고 그냥 평범하고 웃을 때의 얼굴이 적당히 못생기게 일그러지는 사람을 바라보며 그 사람을 챙기고 믿는 일을 매일 참아내야 한다.


나는 그런 삶을 택했고 동시에 강요당하고 있고, 다만 이런 삶을 살아야 한다.


그 날은 오지 않는다. 그 사실을 부정하면서도 못 내는 수긍 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대단한 용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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