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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주영 Nov 23. 2020

행복해지고 싶어서 전화를 걸거나

2020년 8월 24일 오전 01:05

얘기를 하거나 함께 자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불행해지고 싶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와 시간을 나누면 불안하지 않으니까. 비참하다고 생각한 일들과 악화일로뿐인 세상이 가소로워지니까.


스스로 공부하기도 싫고 홀로 즐길 것도 없어 요즘 누구나 한다는 게임에 몇 주간 매달렸다. 그 안에서, "사람을 낙원 삼지 말라"는 게임 대사가 있었다. 읽고 오래 생각했다. 꽤나 다양하게 꽤나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그중 한 명이라도 내 행복의 실마리나 단서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적은 많았다. 그래서 지난 십몇 년 닳도록 헤지도록 마음을 주거나 쓰거나 하면서 살았던 것 같다. 여행지에 만났던 이 사람에게 이런 대답을 했더라면 우린 평생의 친구였을까. 그러면 내 삶의 범위는 넓어졌을까. 그때 헤어졌던 그 친구에게 좀 더 다정했으면 난 지금 아주 좋은 하루를 보내고 있었을까. 지금이라도 누군가에게 이런 메시지를 보내면 무언가 변하거나 달라지지 않을까.


난 내 능력이나 경험이 극적으로 전환되는 순간보다, 돈을 얼마를 움켜쥐고 무엇을 샀을 때보다, 누군가에게서 따뜻한 감정을 느끼면서 서로 통하는 기분이 드는 대화를 했을 때 더 기분이 좋았다. 누군가가 내 말과 글에 적극적으로 공감해주고 그렇게 말하고 읽은 시간에 가치를 매겨주면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그런 연결에 많이 집착했다.


이제 보면 그 시간들이 값이 없는지 힘이 없는지. 모르겠다. 그렇다고는 말할 수 없다. 다만 추억은 추억인데, 추억은 지금 나의 혼자를 달래주지 못했다.


또 언젠가 누군가를 만나 멋진 시간이 생겨도 그 시간은 지속적인 위안은 되지 못할 것이다. 어떤 경이로운 만남도 나중엔 그만큼의 허무의 빚을 상환해야 할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정말 다른 사람을 낙원 삼지 말고 혼자만의 이상을 일구면서 살면 되는 건가. 그래야 하나. 하지만 세상은 둘러보면 적도 많고 난관도 많고, 생애는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이상한 생각과 무거운 기분이 항상 가득한데, 이걸 정말 혼자 헤쳐나가는 걸까.  


그래서 다시 생각해보면. 차라리 없는 게 낫겠다고 천장만 바라보며 누워있던 하루 중에도 내 아주 다정한 친구가 갑자기 잘 지내냐고 묻기만 해도 그 날 하루는 덜컥 없어서는 안 되는 날이 됐다. 내가 이 세상에 무엇 하나 역할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날에도 그나마 내가 있는 편이 나은 관계도 있었다.


그 순간 난 행복하진 않아도 덜 불행하고, 난 여태 생애 가장 행복해서 살아있던 적은 드물지만, 잠깐 방금보다 덜 불행해서 삶을 이어온 날들이 무수히 잦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순간들만큼은 나는 나 아닌 남의 덕을 보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은 서로에게 뭐 굉장한 목적지나 결말은 될 수 없을지라도 휴게소 정도는 될 수 있는 거 아닌가. 잠깐의 그늘은 될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을 이 며칠 줄곧 했다. 홀로 샤워하면서, 설거지하면서 했다.


"덕분에 마음이 쉴 수 있던 날들"을 헤아려 봤고,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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