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코즈모넛cosmonaut Nov 02. 2020

운수 좋은 날

운, 노력, 가능성의 변증법

 요즘 들어 부쩍 ‘난 운이 없는 사람이야’하는 생각을 하며 산다. 유튜브를 시작한 지 1년이 지났는데도 대박 영상이 잘 나오지를 않는다. 많은 이들이 “내용이 그렇게 좋은데”하고 위로해줄 때마다 마음만 조급해진다. ‘내용이 좋다는데 왜 운이 안 따라주는 거지?’ ‘저 친구는 정말 별 볼일 없는데 벌써 10만 구독자네’ 하는 심통 머리 없는 마음만 나를 괴롭힌다.      


유튜브도 인스타그램도 모두 책을 위해 시작한 일이었다. 책을 내면 대형 출판사의 홍보나 신문광고에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판매를 하리라 생각했다. ‘고객에게 도달만 된다면 점차 내용으로 평가를 받을 것이니, 고객에게 도달하는 자립적인 메커니즘만 만들면 난 성공할 수 있을 거야’하는 정말 시건방진 생각이 내 마음에 똬리를 틀고 앉았었다. 그것이 나를 성급하게 만든 원인이었다.     


유튜브, 인스타그램에서 인플루언서가 되고 나서 책을 쓴 다음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으로 홍보를 하면 책이 꽤 나가겠지? 별도의 책 전문 온라인 쇼핑몰을 만들어 이들과 링크를 걸면 독립적으로 책을 팔 수 있을 거야. 책이 꽤 나가기 시작한다면 그걸 보고 대형 서점들도 내 책이 고객들에게 도달될 수 있도록 애쓸 것이고, 그럼 대박이겠지?     


책을 팔 계획은 ‘완벽’했지만 지금 와서 보면 구멍 숭숭이다. 기생충에서 봉준호 감독이 계획은 아무나 세우는 게 아니라고 한껏 비웃었지만 난 그가 말한 ‘아무나’에 내가 해당하지 않는다고 착각을 하고 살았다. 만일 내가 돈이 많거나 권력이 있거나 유명세를 타는 사람이었다면, 유튜브도 인스타그램도 모두 성공했을지 모른다. 돈과 권력과 유명세로 못할 게 없는 세상이니 말이다. 그런데 난 그 아무것도 갖은 것이 없는 구멍이 숭숭 난 사람이었으니, 계획이 의미 있을 리 없다. 계획대로 되지 않자 운을 탓할 밖에 다른 길이 내게는 없었던 것이다. 현실에 맞닥뜨리면서 점차 난 글조차 시원스럽게 써 내려가지 못하는 사람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얼마 전에 대표적인 유튜브 인플루언서인 ‘신사임당’의 짧은 방송을 보고는 난 화들짝 놀랐다. 내가 운이 없다고 한탄을 하고 있을 때 그는 실제로 우리 삶에서 운이 무엇인지에 대해 명확한 결론을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운은 운과 만나려 노력하는 사람에게 올 가능성이 높지 않겠어요? 무한 반복이죠, 답은”. 난 내가 갖고 있었던 계획의 우수성에 대한 자뻑, 글쓰기 능력에 대한 어처구니없는 믿음이 그가 말한 운에 대한 명쾌한 답을 보지 못하게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난 방법과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길을 선택하는데 머물러 있었다. 딱 그 자리에 서서 결과를 기다리다가 잘 되지 않으니 운 탓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그러고 있을 때 ‘신사임당’은 일주일에 무려 여섯 편의 영상을 꾸준히 올리고 있었다. 나는 일주일에 겨우 한 편의 영상을 올리고 ‘내용은 괜찮은데 왜?’하며 자뻑 모드에 빠져 운을 탓하고 있을 때 말이다. 여섯 편의 영상이 한 편의 영상보다 운을 맞이할 가능성이 높다는 자명한 사실에 난 눈을 감고 있었다.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은 전혀 다른 차원의 소설이다. 식민지 조선의 구조적 모순이 모든 현실의 삶을 억압하고 있었고, 운수 좋다 생각한 김첨지의 하루 수입 30원은 병든 아내의 죽음과 죽은 아내의 젖을 빨고 있는 아이의 처참한 현실과 맞바꾼 것에 지나지 않았다. 운이 좋아야 결국 개떡인 사회에 현진건은 살고 있었다. ‘신사임당’이 말한 대로 김첨지는 무한반복으로 발품을 팔아 운을 만날 수 있었지만, 그 운 덕에 예감이 좋지 않았는데도 친구와 술을 한 잔 걸쳤고, 결국 병든 아내의 죽음을 목도할 수밖에 없지 않았나.     


현진건이 말했듯이, 무한반복이 운을 결정한다는 ‘신사임당’의 교훈에 따른다고 해도 모든 것이 잘 될 수 없다. 그런 세상이라면 노력하는 자 모두에게 운과 복이 따라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를 우리는 너무도 자주, 많이 접하고 살지 않는가?     




유튜브 영상 업로드 횟수를 늘리고, 인스타그램 피드와 해시태그 등등 모두를 정성껏 정확히 올리리라 결심을 하기는 했다. 그 무한반복이 운과 만난다 해도 내가 김첨지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운을 향한 무한반복과 세상의 불공정을 거부하는 무한반복을 함께 실천하는 길만이 내게 열려있는 좁은 문임을 오늘에서야 깨달았다. 가능성은 그저 좁은 문일 뿐이다. 물론 그 가능성이라도 부여잡으려면 무한반복론을 따르는 것이 옳다. 그 좁은 문을 뚫고 나갈 가능성들이 모인다 치면 세상은 어떻게 변화할까……. 갖은 것 없는 나에게는 그런 상상도 노쳐서는 안 될 또 하나의 가치임에 틀림없다.



작가의 이전글 #2 우주여행자에게 나라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