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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보선생 Jan 20. 2024

끌림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에 솔직하기 


제주 살이가 2년 가까이 접어든 때였다. 어느새 차가 필요한 날이 필요하지 않은 날보다 더 많아졌더랬다. 혼자 놀기를 좋아하는 우리 가족에게도 아는 사람들이 생겼다. 남편의 건강 관리와 아이들의 야외 활동을 위해 교외로 나가는 일이 잦아졌다. 날씨가 좋아지고 코로나로 해외여행이 금지되면서 오히려 제주를 찾는 이들이 늘었는지 주말에 렌터카를 빌리는 것이 예전보다 훨씬 더 어렵고 비싸졌다.


차를 산다면 어떤 차를 살 것인가. 


당시 남편과 내가 기아 모닝과 미니 컨버터블 둘 사이에서 고민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지인들이 이 두 차를 비교하는 것이 특이하다고 했다. 처음에 제주에서 아이들과 차 없이 지내는 것을 보고 이유를 궁금해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돌이켜보면 제주에 사는 동안 우리 라이프 스타일에 대해서 주변에서 받았던 질문 중에서 차에 관한 질문이 가장 많았던 것 같다. 차가 없을 때는 왜 차가 없냐고. 차를 살 때는 왜 이 두 차 중에서 고민하냐고. 차를 산 후에는 왜 이 차를 샀냐고. 


가끔은 받는 질문에서 사람들을 더 잘 이해하게 되는 것 같다. 듣는 답보다 받는 질문이 더 많은 이야기를 한다. 


차를 사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와 기준이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차의 크기와 브랜드와 가격이 중요하다. 차가 사회적 지위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고 남에게 보이는 것이 중요한 사회다 보니 남의 시선에서 자유롭기 쉽지 않다. 이방인인데다가 남의 시선에 자유로운 우리 가족에게 가장 중요한 기준은 행복의 총량이었다. 차가 일상의 행복을 늘이고 불편을 줄이는 데 얼마만큼 기여하는가였다. 그리고 이 기준만을 두고 생각했을 때 모닝과 미니 컨버터블은 아주 적절한 비교 대상이었다. 


제주에서 첫 2년 동안 차 없이 지낸 것 역시 차가 없어서 생기는 행복의 총량이 더 컸기 때문이었다. 여전히 차는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없는 편이 좋다는 생각이다. 주차도 관리도 걱정할 필요가 없는 데다가 걷는 일도 훨씬 늘어난다. 꼭 필요한 곳에는 버스나 택시 같은 대중교통이 무척 편리하다. 


기아 모닝을 샀다면 그것은 차가 없어서 생기는 불편함이 차가 있어서 생기는 불편함의 크기보다 더 커졌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었다. 차가 꼭 필요하다는 이유만으로 산다면 주차가 쉽고 기름도 적게 들고 가격도 저렴한 모닝은 최고의 선택이지다. 실용적이고 편리한 점에서 더 나은 차가 없다. 물론 더 크고 편안한 차도 많을 테다. 하지만 그런 차가 주는 추가적인 행복의 크기는 아주 미미하다. 그에 반해 주차 때문에 일어나는 불편함과 차의 구입과 관리에 들어가는 비용의 크기는 꽤 커진다. 그러니 살 수 있는 가장 작고 실용적인 차인 모닝을 사는 편이 비용 대비 행복의 총량이 가장 클 것이다.


출처: Wikipedia


반면 미니 컨버터블은 제주도에 사는 사람이 차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을 극대화할 수 있는 선택지다. 화창한 날씨에 한적한 도로에서 차의 뚜껑을 열고 제주의 바다 바람을 맞으며 달리는 행복을 위한 선택이다. 그 가슴 터지도록 신나는 기분에서 얻는 행복의 크기가 상대적으로 비싼 비용의 값어치를 하고도 남았다. 차의 크기가 작으니 주차 역시 편리하고 연비도 엔진의 크기에 비해 좋은 편이었다. 뚜껑이 열리는 차 중에서는 가장 경제적이고 실용적인 차인 미니 컨버터블이 기아 모닝과의 비교 대상이 되는 것은 자연스러웠다. 


사실 둘 중 어느 차를 샀더라도 아마 행복했을 것이다. 결국 우리는 출고된 지 2년 된 중고 미니 컨버터블을 샀고 그 차로 인해 제주 생활이 두 배는 더 즐거워졌었다. 운전하기를 좋아라하지 않는 우리 부부에게도 화창한 날 제주에서는 운전이 일부러 하고 싶은 즐거운 경험이 되었다. 


출처: www.autoevolution.com


예전에 캠핑카에서 거주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TV에서 본 적이 있다.  


몇 년째 캠핑카에서 살고 있다는 이 남자가 비 오는 날 캠핑카 안에서 혼자 막걸리를 마실 때보다 더 큰 행복이 없더라는 말을 할 때 마음이 설레었다. 술은 마시지 않지만 빗소리 듣기를 정말 좋아하는 나의 마음이 함께 설레었었다. 만일 캠핑카 생활을 한다면 나는 톡톡 토토톡 빗방울 음악이 들리는 비 오는 낮을 제일 좋아하게 될까. 아니면 하늘에 별빛이 빼곡한 맑은 날의 밤을 제일 좋아하게 될까.


캠핑카에서 사는 것 역시 그저 무수하게 다양한 삶의 한 방식 중의 하나일뿐이라는 남자의 말이 와닿았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각자 자신에게 행복을 주는 것들에 솔직해지고 그것에 충실한 선택을 한다면 세상이 더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지 않을까. 아파트가 아닌 자동차나 배에서 사는 사람들이 더 늘어날지도 모르겠다. 모닝이냐 미니냐를 고민하는 것이 질문거리가 되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출처: Uriel Mont @ www.pexels.com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블로그를 통해 만난 한 친구와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서울에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한동안 제주 서귀포에서 소박한 삶을 살았던 친구다. 그런데 서울에 직장도 있고 자신보다 경제적으로 훨씬 여유 있는 친구들이 제주도에서 소박하게 살고 있는 자신에게 그럴 수 있는 여유가 있어서 좋겠다는 말을 자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친구의 여유가 정말로 부럽다면 그렇게 하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사실은 지금 이대로 사는 것이 나에게 더 좋기 때문이 아닐까. 어쩌면 서울 생활에서 얻을 수 있는 다른 것들이 자신의 행복에 더 중요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어쩌면 우리 모두는 이미 원하는 걸 추구하는 삶을 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 우리에게 필요한 건 단지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마 앞으로도 서귀포에 사는 친구, 서울에 사는 친구, 그리고 캠핑카에 사는 남자와 내가 사는 모습이 많이 다를 것이다. 각자에게 행복을 주는 것들이 다르기 때문이다. 어떤 모습이 되든 앞으로 모두의 삶의 방식을 응원하는 마음이다.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에 솔직하며 지금 나의 선택과 삶을 사랑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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