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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shine Feb 01. 2024

푸념

노산일기


아기가 세상에 나온지 27개월이 되었다. 갓난아기때에 워낙에 순한 아이였어서인지 나는 지금이 너무 버겁다. 어디 한 군데 손벌릴 곳 없이 회사와 육아를 병행한다는 것이 얼마나 극한의 상황인지 이전에는 몰랐다. 남편은 두 달 먼 곳으로 장기 출장을 갔고 아기는 종종 아팠다. 감기이든 장염이든 질병이 그 무엇이든간에 약을 끊어본 날이 손에 꼽는 것 같다.


아이가 가지고 태어나는 기질적인 부분의 영향이 크겠지만 너무나 1분 1초도 나와 떨어지지 않으려는 껌딱지 아기를 볼 때면 워킹맘으로서 아기와 보내는 한정적인 시간 탓에 하루 내 모지랐던 애정을 이렇게 몰아서 요구하는 것일까 싶기도 한다.


아기는 자유의지가 생기고 점점 사고도 친다. 쌀독(?)을 엎어서 촉감 놀이를 한다든지, 자기 뜻대로 안될 때 모든 장난감 블럭을 온 집에 던져버린다든지.. 뒤따라다니며 치우는 것도 한계가 있어 집은 사람이 사는 집인지 짐승의 집인지 분간이 안되고, 나의 생존을 위한 최소의 행동 - 샤워, 밥먹기, 설거지하기, 빨래하기, 마른 빨래 개기 등 -을 할 여유도 주지 않는 아기 시선을 뺏기 위한 나의 가장 큰 도우미 유튜브를 내 손으로 켜서 아이에게 보여줄 때면 정말 내가 뭐하고 있는건가 자괴감이 올라온다.


가장 큰 문제는 밤에 아기가 자꾸 깨서 보챈다는 거다. 워낙 내가 잠귀가 얇은 탓도 있겠지만 안 그래도 잠이 얕은데 아기 덕에 밤에 3-4번을 깨다보면 100일의 기적이 1000일이었던가 싶고, 자다 깬 잠은 다시 이루기도 어려워 요즘은 정말 수면 부족으로 인한 체력적인 문제도 이어지고 있다.


염색하러 갈 시간이 없어 흰머리는 쏟아지는데 진짜 염색샴푸라는 것도 한 번 써 봐야겠다 싶다. 아니 그마저도 혹시 아기에게 안좋을까 싶어 조금 조심스럽다.


그림은 안그린지 못그린지 한참이 되었다. 회사는 올해에도 추가로 30명 해고를 하겠다는 정초부터 직원들 기운 빠지는 소리를 하고 앉았고 어쨌든 그 다음 타겟이 나인 것도 잘 알고 있다. 작년만해도 내 평생 회사에서 이런 취급은 처음 받아본다 화가 난다 라는 마음이었다면 지금은 아 그러세요 싶고 반쯤 놓고 있다.


책도 읽고 제 2의 직업을 준비도 하고 싶고 해지기 전에 아이를 하원 시켜 같이 놀고도 싶다. 그냥 발이 땅에 닿았으면 좋겠다. 의지로 움직일 수 없는 수많은 상황에 떠밀려 둥둥 떠다닌다.


라는 푸념글을 쓰며 퇴근 길 부랴부랴 얼집을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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