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노산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nshine Feb 01. 2024

푸념

노산일기


아기가 세상에 나온지 27개월이 되었다. 갓난아기때에 워낙에 순한 아이였어서인지 나는 지금이 너무 버겁다. 어디 한 군데 손벌릴 곳 없이 회사와 육아를 병행한다는 것이 얼마나 극한의 상황인지 이전에는 몰랐다. 남편은 두 달 먼 곳으로 장기 출장을 갔고 아기는 종종 아팠다. 감기이든 장염이든 질병이 그 무엇이든간에 약을 끊어본 날이 손에 꼽는 것 같다.


아이가 가지고 태어나는 기질적인 부분의 영향이 크겠지만 너무나 1분 1초도 나와 떨어지지 않으려는 껌딱지 아기를 볼 때면 워킹맘으로서 아기와 보내는 한정적인 시간 탓에 하루 내 모지랐던 애정을 이렇게 몰아서 요구하는 것일까 싶기도 한다.


아기는 자유의지가 생기고 점점 사고도 친다. 쌀독(?)을 엎어서 촉감 놀이를 한다든지, 자기 뜻대로 안될 때 모든 장난감 블럭을 온 집에 던져버린다든지.. 뒤따라다니며 치우는 것도 한계가 있어 집은 사람이 사는 집인지 짐승의 집인지 분간이 안되고, 나의 생존을 위한 최소의 행동 - 샤워, 밥먹기, 설거지하기, 빨래하기, 마른 빨래 개기 등 -을 할 여유도 주지 않는 아기 시선을 뺏기 위한 나의 가장 큰 도우미 유튜브를 내 손으로 켜서 아이에게 보여줄 때면 정말 내가 뭐하고 있는건가 자괴감이 올라온다.


가장 큰 문제는 밤에 아기가 자꾸 깨서 보챈다는 거다. 워낙 내가 잠귀가 얇은 탓도 있겠지만 안 그래도 잠이 얕은데 아기 덕에 밤에 3-4번을 깨다보면 100일의 기적이 1000일이었던가 싶고, 자다 깬 잠은 다시 이루기도 어려워 요즘은 정말 수면 부족으로 인한 체력적인 문제도 이어지고 있다.


염색하러 갈 시간이 없어 흰머리는 쏟아지는데 진짜 염색샴푸라는 것도 한 번 써 봐야겠다 싶다. 아니 그마저도 혹시 아기에게 안좋을까 싶어 조금 조심스럽다.


그림은 안그린지 못그린지 한참이 되었다. 회사는 올해에도 추가로 30명 해고를 하겠다는 정초부터 직원들 기운 빠지는 소리를 하고 앉았고 어쨌든 그 다음 타겟이 나인 것도 잘 알고 있다. 작년만해도 내 평생 회사에서 이런 취급은 처음 받아본다 화가 난다 라는 마음이었다면 지금은 아 그러세요 싶고 반쯤 놓고 있다.


책도 읽고 제 2의 직업을 준비도 하고 싶고 해지기 전에 아이를 하원 시켜 같이 놀고도 싶다. 그냥 발이 땅에 닿았으면 좋겠다. 의지로 움직일 수 없는 수많은 상황에 떠밀려 둥둥 떠다닌다.


라는 푸념글을 쓰며 퇴근 길 부랴부랴 얼집을 향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