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산일기
오이타 여행을 결심했던 가장 주요한 목적지는 아프리칸 사파리였다. 이름 그대로 마치 아프리카 초원에 거니는 야생동물들을 바로 코앞에서 볼 수 있는 동물원이라고 했다. 최근에는 여러 블로거들을 통해 좀 유명세를 타고 있기는 하지만 몇년 전 구글맵을 통해 처음 발견했을 때도 평점이 매우 높아 궁금증을 자아내던 곳이다. 이곳 근처에는 하모니랜드라는 산리오 캐릭터들이 나오는 놀이동산도 있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미취학 아이들부터 초등학생들까지 좋아할만한 놀이기구가 있고 퍼레이드가 정말 알차다고 했다. 이 두군데라면 아기와의 여행으로는 최상의 코스다 싶었다. 더군다나 하모니랜드는 평일은 오후 5시까지 영업이지만 토요일은 8시까지 영업이라 시간도 넉넉하다. 2박3일의 메인데이인 두번째 날 토요일에 이 두군데를 가는 것으로 계획했다. 사실 숙소 결정에도 아프리칸 사파리에서 차량 15분 거리에 있는 점이 가장 장점이 되었다.
하지만 이러나저러나 비가 그치지 않는다. 그냥 비가 아니고 폭우다.
검색해보니 아프리칸사파리는 투어버스나 개인차량을 이용해 둘러보는 형태라 우천시에도 관광이 가능하다고 했다. 하모니랜드는 야외라 포기하고 아프리칸사파리만 가보기로 했다.
아프리칸 사파리 리셉션은 9:30-15:00까지 오픈이고 동물원의 개장시간은 10:00, 클로즈는 15:30이다. 비가 너무 오니 컨디션이 나쁘기도 했고 일정이 틀어져버리니 서두를 필요도 없을 것 같아 느긋하게 숙소를 나섰다. 산을 넘어 가니 곧 동물원 입구가 보인다. 날씨 때문에 방문객도 많이 없어서 오픈런 해서 예약해야 한다던 투어버스도 자리가 있었다. 어찌나 비바람이 몰아치는지 주차 후 버스 대기장으로 가는 중에도 몸이 휘청거릴 정도였다. 그래도 버스 탑승 시간이 되니 여기저기서 비를 피해있던 사람들이 몰려와서 만석이 되었다. 버스투어의 가장 장점은 철창을 통해 야생동물에게 먹이를 직접 줄 수 있다는 점이다. 버스 탑승 시 플라스틱 트레이와 쇠집게를 하나씩 전달 받았고 트레이 안에는 곰, 사슴, 사자 등이 먹을 수 있는 먹이들이 4종류로 구분되어 있었다.
안내방송 후 버스가 곧 출발했다. 버스 탑승 시의 잠깐의 설레임이 무색하게 퍼붓는 비때문에 앞이 안보였다. 드넓은 초원에서 여유롭게 거니는 동물들을 보고 싶었는데 동물들도 구석에서 비를 피하기 바쁘다. 그나마 먹이를 먹겠다고 엉금엉금 나오는 동물들도 몇 있지만 다들 비를 쫄딱 맞아 꼴이 안쓰럽다. 비가 버스 안으로 들이치니 다들 창문도 열다 닫기 바빴다. 그나마 투어의 백미는 사자 먹이주기였다. 사자 입냄새를 맡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에서 먹이를 줄 수 있었는데 동물원에 길들여진 사자는 마치 귀여운 고양이 같은 느낌으로 넙죽넙죽 생닭을 잘 받아먹었다. 투어는 한시간 정도 진행되었고 워낙 앞이 잘 안보이다보니 마지막엔 좀 지루한 감이 있었다.
이래저래 여행의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 아직 12시밖에 되지 않아 비를 피하기에는 도심지가 낫겠다 싶어 벳푸로 가기로 했다.
가는 길도 계속 산길이라 고불고불 어지럽다. 이런 시골마을 인구밀도가 높지 않은 곳에도 멋진 관광지를 만들어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일본 지역개발 능력에 놀랄때가 많다.
벳푸 돈키호테 주차장에 주차를 한 후(무료) 근처 도보 이동이 가능한 맛집를 검색해 보았다. 튀김돈부리로 평점이 높은 식당이 있기에 예정에 없던 튀김요리를 먹어보기로 했다. 벳푸는 비가 그치고 날씨가 점차 개고 있었지만 성수기가 아니어서인지 길에 사람이 도통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식당 안은 줄이 길어 15분 정도를 기다려야 했으니 성수기에는 도전도 못할 식당이겠구나 운이 좋다 싶었다.
대기는 있었지만 요리는 빨리 나왔다. 허기가 졌던 우리는 새우튀김 돈부리 두 개와 사시미, 맥주 두 잔을 시켰다. 역시 맛집 답게 튀김은 부드러우면서도 바삭했고 생맥주는 말모 일본 어디서나 거의 90% 확률로 실패가 없다. 왜 한국에서는 이 맛이 안나는걸까?
혹시나 싶어 키즈카페 같은 곳이 있을까 미리 찾아보았는데 벳푸의 백화점 내에 그런 곳이 한 곳 있었다. 마침 이번 여행 내내 유난히 요리(놀이)를 해야겠다는 아기의 의견도 있고 비는 그쳤지만 날씨도 스산하고 해서 키즈카페를 찾아가기로 했다. 백화점 프런트에 키즈카페가 몇 층인지 물어봤는데 일본에서는 키즈카페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지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인터넷 검색으로 백화점 내 키즈카페 사진을 보여주고야 층수를 알 수 있었다.
벳푸의 유일한 백화점이라고 하는데 레이아웃도 그렇고 상품 진열 상태도 그렇고 우리나라의 마트보다도 횔기가 떨어져 보였다. 하지만 키즈카페가 있던 층은 아기들 전용층으로 간단한 게임기나 작은 놀이기구도 있고 생각보다 키즈카페 놀이감도 다양했다. 벳푸에서 아기 기르는 분들은 이곳에 다 모인 듯 해 보였다. 이 백화점에서 가장 사람이 많은 층일 것이다.
아기는 뛰어다니면서 이것저것을 만지더니 어디서 백엔 동전을 두개를 주워왔다. 장난감 기계에서 누가 잔액을 가져가지 않은 모양이다. 아기는 동전을 주운 놀이기구에서 그 동전으로 잠시 재미있게 놀고 키즈카페에 입장해서 원없이 요리놀이를 했다.
아기의 체력도 소진해줬겠다 우리는 다시 돈키호테로 향했다. 역시나 그 사이 아기는 잠들어서 우리는 돈키호테 쇼핑을 원없이 할 수 있었다. 원래 벳푸에 오면 유니클로도 가볼 생각이었는데 돈키호테 쇼핑 후 체력이 방전되어 버려 유후인으로 바로 돌아가기로 했다. 벳푸는 그새 날이 개어 해가 나고 있었는데 유후인으로 돌아가는 산길은 아직도 비구름이 산을 넘어가지 못하고 를 뿌려대고 있다.
유후인에 저녁 식당을 한 곳 예약해 두었는데 예정보다 빨리 도착한 우리는 유후인 골목을 조금 거닐었는데도 시간이 남아 예약 시간보다 한 시간 더 빠르게 입장했다. 다행히 테이블이 있어 저녁을 빨리 먹을 수 있었다. 식사는 맛이 있었지만 점심의 튀김이 소화가 되지 않은데다 피로도 조금 쌓여서 약간 우겨넣는 기분으로 식사를 했다.
숙소로 돌아와 온천 후 공용거실에서 맥주를 마셨다. 거실에는 수백권의 만화책들이 있었는데 일어를 읽지 못하는 아쉬움이 컸다. 그 중 슬램덩크를 발견하고 아기에게 이건 엄마 인생만화책이야 라고 소개를 해 주었다.
숙소에서 일하고 계신 분이 한국어를 잘하시기에 잠시 대화를 나누었는데 알고보니 대만분이셨다. 한국을 여행하며 2년 정도 사셨다고 하고 지금은 6개월 정도 체류기간을 잡아 일본에서 일하며 지내고 계시다고 했다. 그래, 유스호스텔은 이렇게 전 세계의 새로운 사람을 만나며 살아가는 얘기를 듣는 재미가 있지. 아기와 함께한 유스호스텔은 조금은 불편했지만 나름의 재미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