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노산일기

영심이의 기억

노산일기

by sunshine

작년 11월 딱 만으로 16년을 채우고 무지개 다리를 건넌, 마음으로 낳은 나의 첫 딸 영심이.


이효리가 유퀴즈에 나와 무지개 다리를 건넌 강아지들의 남은 기억들에 대해 이야기 하기에 나는 영심이 하면 어떤 기억이 가장 먼저 떠오르나 생각해 보다가 영심이가 어떤 강아지였는지 갑자기 한 문장으로 정리가 되었다.


미생들 특성상 정말 이러다 과로사 하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밤낮 없이 일주일을 보내다 2주에 하루 정도 출근을 하지 않는 일요일이 되면 알람도 다끄고 12시 1시까지 늘어지게 밀린 잠을 자곤 했는데 늦으막히 눈을 뜨면 늘 영심이는 내 배겟맡에 턱을 괴고 엎드려 내가 깰때까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상하게 그 기억이 참 많이난다.


야근 뿐 아니라 해외출장도 너무 잦아지면서 어쩔 수 없이 친정에 보내게 되었는데 당시만해도 개라면 질색팔색을 하던 우리엄마의 마음도 돌려놓은게 영심이었다. 반대로 나 외에는 사람도 개도 그 누구도 곁을 주지 않던 영심이가 나 외에 유일하게 따랐던 사람도 엄마다.

부부 간에 가끔 언성이 높아질 일이 생겨 아빠의 목소리가 커질 때면 영심이는 엄마 앞에 서서 아빠를 향해 짖었단다.


지난 기억을 떠올리다보니 영심이는 평생 우리를 지켜줬구나 라는 깨달음이 든다. 나에게도 엄마에게도 자기가 표현할 수 있는 세심하고 예민한 방법으로 온 몸으로 사랑을 표현하고 갔구나 싶다.


나는 평소에 사람에게 마음을 잘 열지 못하고 살았는데 영심이를 키우면서 너무 마음이 무장해제 되어 버렸다. 영심이 덕에 진짜 사랑하는 법도 배운 것 같다. 영심이를 키운 경험이 없었다면 난 지금 좀 더 못난 엄마였을지도 모르겠다 싶다.


영심이의 재는 친정 집 앞마당 나무 아래 묻혔다. 아빠 생신이라 친정에 왔다가 아빠가 할머니 할아버지 산소에 같이 가자고 하셔서 양산에 다녀왔다. 할아버지 할마니 자리 귀퉁이에 아빠엄마 자리를 잡아놓았더라. 그 돌이 내 마음에 무겁게 내려 앉았다. 돌아오는 길에 엄마가 당신이 가고 나면 집 앞 영심이가 묻힌 땅 흙을 한 움큼 퍼다가 엄마 자리 옆에 묻어달라고 하더라.


새로운 사람이 오고 내 사람이 떠나고 또 떠날 준비를 한다. 그것이 인생이겠지만 난 과정을 지나가는 것이 많이 힘들다.

keyword
sunshine 가족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회사원 프로필
구독자 93
매거진의 이전글일요일은 예수님도 쉬라고 하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