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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오산로드 May 08. 2017

서울 근교 백패킹

1 - 프롤로그 &  민둥산


프롤로그


세계일주를 하고 싶지만, 오늘도 졸린 눈을 비비며 출근을 하고 있는 나를 달래기 위해 백패킹을 시작했다.


서울 근교 백패킹 - 프롤로그


많은 사람들에게 세계일주는 인생의  버킷리스트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부부가 함께, 연인과 함께, 혼자 여행을 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없는 집 제사 돌아오는 듯한 월세를 걱정하는 평범한 20대 후반 직장인에게 세계일주는 가슴 한구석 종이학처럼 곱게 접혀 있다.


세계일주라는 가슴속의 종이학을 접었다 폈다가를 반복하다 우연히 '백패킹'을 알게 되었고,

'백패킹'은 나에게 세계일주를 대신할 수 있는 훌륭한 대안이 되었다.


나에게 백패킹은 투샷 아메리카노 한잔, 오후 3시 당 떨어질 때 사무실에서 먹는 트윅스와 같은 소소한 선물이다.


퇴근길 7호선 가산디지털단지역에 몸을 기대고 '이번 주에는 어디 갈까?'라는 기분 좋은 생각을 하며 지친 하루를 정리한다.




"소중한 것을 깨닫는 장소는
언제나 컴퓨터 앞이 아니라 파랑 하늘 아래였다."
- 다카하시 아유무
첫 번째 이야기 - 민둥산


어린 시절, 명절에는 부모님과 함께 무궁화호를 타고 시골에 내려갔다. 나는 항상 아버지 무릎에 앉아 있었으며, 아버지는 비닐을 벗겨 먹는 소세지를 사주셨다.


이제는 KTX가 무궁화호보다 많아졌다. 무궁화호에 있는 넓은 좌석과 옛날 기차 냄새는 아쉽지만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회사에서 출장 갈 때는 KTX를 이용한다. 빨리 업무를 끝내고 사무실로 돌아오고 싶지만, 혼자 여행 갈 때는 KTX보다 몇 시간이 더 걸리지만 무궁화호를 타고 싶다.


기차에서 과자를 먹으면서 아무 생각 없이 멍~하고 있거나, 한숨 자고 일어나면 어느새 '민둥산역'에 도착한다.



20kg가 좀 되지 않은 배낭을 메고 등산을 하고 있으면,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그냥 힘들다)


땀은 비 오듯 쏟아지고, 작은 벌레들은 귓가에서 앵앵거린다. (끝까지 따라온다)


약 2시간에 지났을까, 민둥산 정상에 도착할 즈음에 시원한 산바람이 땀을 식혀준다.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다.


백패커 가방의 무게는 자신의 '곤조'라고 생각한다.

무거운 가방을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정상까지 짊어지고 가려면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사진을 좋아하는 백패커의 가방에는 사진기와 삼각대가 있을 것이며, 

흥이 많은 백패커의 가방에는 맛있는 술과 음식이 있을 것이며,

독서를 좋아하는 백패커의 가방에는 책과 이어폰이 있을 것이다.


저녁 무렵 백패커들의 사이트를 둘러보면, 백패커의 대략적인 성향을 알 수 있다.

힘들게 가져온 술과 음식을 친한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먹는 사람.

조용한 구석에 텐트를 치고 독서를 하고 있는 사람.

8시부터 잘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 (본인...)



칠흑같이 어두운 산속에서 잠을 자면 꿈도 꾸지 않고, 평소보다 더 깊은 잠을 잘 수 있다.

내 몸을 온전히 감싸는 침낭의 포근함. 

목덜미 뒤에 있는 군용 핫팩. 

텐트 특유의 꿉꿉한 냄새. 

혹한기 24인용 천막 안에 있던 노란색 따봉등.

산속의 동물과 바람소리.

침낭 안에서의 잡생각.



날이 밝았다.

민둥산의 아침은 꽤나 추웠다. 

차가운 폴대와 축축이 젖은 텐트를 정리는데 평소보다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잔을 마시고,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짐을 정리하고 산을 내려간다.




누군가 말한 것처럼, 산을 오를 때는 보이지 않던 꽃들이 내려가는 길에는 보인다. 

마음의 여유를 찾기 위해 산을 오르지만, 정작 산을 오를 때는 여유를 갖지 못하는 내 조급함이 조금은 나아졌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이번 여행을 마무리한다.


서울 근교 백패킹 - 민둥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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