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소망하는 사람에게 찾아간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솔직한 순간은 언제였나요?
어떤 사람들은 사랑을 할 때 가장 솔직해진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죽는 순간 가장 솔직해진다고 말합니다. 솔직해지는 순간 중 한 장면을 꼽으라면 혼자 있는 시간을 들 수 있습니다. 어느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오로지 스스로와 마주하는 시간, 그 순간에 사람은 다른 사람의 시선이 아닌 자신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행동합니다.
이슬람교를 믿는 무슬림들이 지켜야 할 의무 중 '라마단'이 있습니다. 라마단은 예언자 무함마드가 알라에게 최초의 계시를 받은 달을 기념하여 이슬람력 9월 한 달 동안 해가 뜰 때부터 해가 질 때까지 금식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라마단의 금식은 알라에 대한 순종과 감사의 의식이며 무슬림들끼리의 연대의식을 나타내는 축제입니다. 해가 뜨기 전 '수후르'라는 간단한 식사도 하고, 해가 진 후에는 함께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공동체 의식을 나눈다고 하는데요. 그렇다고 하더라고 긴 시간 동안 금식은 무척 힘든 일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침을 삼키는 것 마저도 논란이 될 만큼 라마단의 금식은 물도 금지하는 엄격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라마단 기간 동안 대부분의 관공서나 기업이 오후 2시경에 마치는 단축 업무를 하는데, 업무가 끝나면 대부분 집에 들어가 잠을 자는 등 휴식을 하면서 금식의 시간을 보냅니다. 그렇다면 무슬림들은 아무도 보지 않는 집 안에서 금식을 잘 지킬까요? 아무도 보지 않으니 몰래 물 정도는 마시지 않을까요? 무슬림들은 누구도 보지 않는 이 힘든 시간이 자신에게 가장 솔직한 순간이자 알라에 대한 믿음을 증명하는 시간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라마단을 지키며 알라를 만납니다.
'연가7년명 금동여래입상'은 16.2센티미터의 작은 불상입니다. 이 불상을 자세히 살펴볼까요? 눈을 지그시 감고 입술은 살짝 웃고 있는데 절로 평온한 마음이 들만큼 넓은 마음이 느껴집니다. 오른손은 시무외인이라 하여 위로 펼치고 있는데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라'는 뜻이며, 왼손은 아래로 향하고 있는 데 '너의 소원을 들어주겠다'라는 뜻입니다. 앉아있지 않고 서 있는 모습이 무척 당당해보입니다. 연꽃은 더러운 물에 살지만 물을 깨끗이 하며 아름다운 꽃을 피우니 불상이 연꽃 받침을 밟고 서 있는 것은 사람들의 어려움을 피하지 않고 그 속에서 함께 하겠다는 것입니다. 광배는 부처의 머리 뒤에 빛나는 것을 말하는데 이 불상의 광배는 온몸을 감싸 안고 있어 이 부처님의 사랑을 온 세상에 펼치는 것 같습니다. 광배에는 주로 불꽃 모양의 문양이 새겨지는데 이 불상의 광배에는 굉장히 활발하며 자유로운 불꽃 문양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이 불상을 바라보면 어려운 어른을 대하는 것이 아닌 편안하고 친하면서도 내 어려움을 잘 들어주는 어른을 대하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종합해서 이야기한다면 이 불상은 당당하고 힘 있는 모습이지만 편안한 느낌을 주며, 이 불상을 바라보는 사람의 모든 고민을 해결해주겠다는 미소를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연가7년명 금동여래입상'은 539년에 제작된 것으로 생각되며, 우리나라에서 제작시기가 정확히 알려진 가장 오래된 고구려의 불상입니다. 광배 뒷면에는 47자의 글자가 적혀있습니다.
연가 7년 기미년에 고구려 낙랑에 있는 동사의 주지이며 부처님을 공경하는 제자인 승연을 포함한 40명이 함께 천 개의 불상을 만들었습니다. 이 불상은 29번째인 인현의불로 법영이 공양합니다.
이 글을 보면 고구려에서 만들어진 불상으로 1000개의 불상 중 하나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999개의 불상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1000개의 불상은 숫자로 꼭 1000개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많은 부처가 사람들을 도운다라는 상징적인 수이기는 하지만 많은 수의 부처가 제작되었다는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아쉽지만 함께 제작되었다고 하는 다른 불상들은 현재 전하지 않습니다.
이 불상은 긴 시간이 흘러 1963년 옛 신라의 땅인 경남 의령에서 발견됩니다. 당시 가장 큰 힘을 가지고 있던 고구려가 불교를 널리 퍼트리기 위해 신라에 불상을 전해주었을 수도 있고, 제작된 후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우연히 머나먼 의령까지 왔을 수도 있습니다.
이 불상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16.2센티미터의 작은 이 불상을 집의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놓아두고 절에 가지 못하는 날에도 매일 바라보았을 사람을 떠올립니다. 그 사람은 일이 있어 집을 비울 때에는 짐에 소중하게 이 불상을 감싸 가지고 다녔을 것입니다. 이 불상을 보며 부처님의 말씀을 생각하고 진리를 깨닫기 위해 노력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불상과 단 둘이 함께 하는 시간은 개인적인 소망을 드러내는 시간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높은 벼슬이나 돈, 사랑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기도 했겠지요. 혼자 불상을 바라보며 드러내는 그 소망은 그 사람이 이루고 싶은 가장 간절한 소망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겠노라 다짐했을 것입니다.
결국 가장 솔직한 순간은 내가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을 때 생깁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잘 되고 싶다고요? 또는 부자가 되거나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요? 건강한 사람이 되고 싶은 수도 있겠지요? 소망한다면 먼저 솔직하세요! 무슬림에게 라마단이 고행이 아니라 신과 만나는 기쁨이듯이, 불상을 보며 과정이 힘들어도 이루어야 할 목표를 보며 힘내자는 다짐을 했듯이요.
간절하다면 노력하세요! 신도, 주변의 사람들도, 기회도 노력하는 사람에게 찾아가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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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2022년 1월 13일자(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802572&PAGE_CD=N0002&CMPT_CD=M0117)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