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왕 앞에서도 옆으로 걷는 게 두 마리, 김홍도의 <해탐노화도>
그리스 신화 속 신들의 왕 제우스는 세멜레를 보고 사랑에 빠진다. 인간으로 변해 세멜레에게 다가간 그는 세멜레의 사랑을 얻게 된다. 하지만, 제우스의 부인이자 여신들 중 가장 높은 위치를 가지고 있는 헤라에게 들키고 만다. 헤라는 세멜레의 유모로 변신해 그녀에게 접근해서 마음속에 의심을 심는다. 마음속에 의심이 자란 세멜레는 제우스를 만났을 때 자신의 소원을 들어달라고 한다. 사랑하는 여인의 말에 제우스는 큰소리친다. " 난 신들의 왕 제우스! 내가 들어줄 수 없는 일이란 없다. 네가 원하는 어떤 것이라도 들어주지! 이것을 스틱스 강에 두고 맹세하지!" 세멜레는 제우스에게 본래의 모습을 보여달라고 한다. 인간에게 번개의 신인 자신의 모습을 직접 보여준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는 제우스는 자신의 말을 후회하게 된다. 하지만 스틱스 강에 맹세를 한 제우스는 신의 모습을 보여주게 되고, 제우스의 본래 모습을 본 세멜레는 눈이 멀고 온 몸이 타서 죽는다.
스틱스는 저승을 일곱 바퀴 돌아 흐르는 강의 이름이며, 강의 여신의 이름이기도 하다. 스틱스 여신은 올림푸스의 신과 티탄 신족의 전쟁에 자신과 자신의 아이들 젤로스(경쟁), 니케(승리), 크라토스(위력), 비아(폭력)를 데리고 올림푸스 편에 서서 싸운다. 그 전쟁은 올림푸스 신들의 승리로 끝나고 제우스는 스틱스 여신에 대한 감사의 표현으로 죽은 사람은 반드시 스틱스 강을 건너야 저승에 갈 수 있게 되도록 하고, 스틱스 강에 맹세를 한 것은 어떤 신이라도 반드시 지키도록 하였다. 만약 신이 스틱스 강에 맹세를 한 것을 지키지 않는다면 신들의 시간으로 1년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고 누운 채로 지내야 하고 그 이후에도 9년 동안 신들의 회의에 참석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는 신으로서의 자격을 잃는 것이나 마찬가지라 어떤 신도 스틱스 강에 대한 맹세를 어기지 않았다.
스틱스 강에 대한 맹세 때문에 사랑하는 세멜레를 잃게 된 제우스의 표정이 주변의 먹구름처럼 안타깝기만 하다. 하지만, 세멜레의 주위엔 그녀가 감당할 수 없는 제우스의 상징인 번개가 둘러싸고 있고, 제우스는 그녀의 최후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과거에 합격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과거 합격을 기원하는 그림이나 도자기를 옆에 두면서 열심히 공부하였다.
그중 하나가 물고기가 거친 물살 속을 힘차게 뛰어오르고 있는 그림이다. 그림 속 잉어는 거친 파도 위를 뛰어오르고 있는데 구름이 주변을 감싸고 있고 멀리 산이 보이고 있다. 중국 황화의 상류에는 근처에 물의 흐름이 빠르고 매우 높은 용문이라는 폭포가 있었는데 수많은 물고기들이 용문을 오르려고 하였으나 실패했다고 한다.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여 마침내 그 폭포를 거슬러 오른 물고기는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는데, 이를 어려운 과거에 합격하는 것에 비유하게 되었다. 즉 이 도자기의 그림은 과거를 준비하는 선비가 지금은 어렵고 힘들지만 포기하지 않고 공부한다면 언젠가는 합격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
모란은 꽃들의 왕이라 불린다. 그래서 모란은 왕의 상징하여 왕실의 행사에 많이 사용된다. 또한 귀함을 상징하니 과거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모란을 그린 그림을 가까이 두거나 모란이 새겨진 그릇을 즐겨 사용했다. 이 그릇에는 모란과 함께 넝쿨이 함께 새겨져 있다. 넝쿨은 끝없이 이어지는 것을 상징하니 이 접시는 과거 합격과 함께 그 이후에도 계속 높은 벼슬을 하는 등 개인과 집안의 번성이라는 소망을 담고 있다.
김홍도의 '해탐노화도'는 게가 갈대꽃을 탐낸다는 뜻의 이름을 가진 그림이다. 게 두 마리가 갈대꽃을 꼭 잡고 있는데 떨어뜨리지 않겠다는 듯 잔뜩 힘이 들어간 모습이다. 갈대의 한자 발음인 '로'가 왕이 과거 합격자에게 나누어주는 음식인 '려'의 발음과 비슷하다고 하여 과거에 합격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게는 딱딱한 껍질을 가지고 있어 천간의 첫 번째인 '갑'을 상징하니 장원급제를 상징한다. 또한 게가 두 마리 그려진 것은 소과와 대과에 모두 합격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용문을 뛰어오른 물고기, 모란, 갈대를 잡고 있는 게는 모두 과거 합격의 소망을 담고 있지만 조금씩 의미는 다르다. 용문을 뛰어오른 물고기는 과거를 합격하기 위한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모란은 과거에 합격하여 귀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드러내고 있다.
갈대를 잡고 있는 게는 조금 다른 뜻을 담고 있다. 그림의 윗부분에 적혀 있는 글을 읽어보자.
"海龍王處也橫行(해룡왕처야횡행)", 바닷속 용왕님이 계신 곳에서도 나는 옆으로 걷는다.
과거에 합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과거에 합격하고 난 다음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게는 옆으로 걷는다. 게가 용왕님 앞이라고 앞뒤로 걷지 않듯이, 과거에 합격하고 난 후 왕이나 벼슬이 나보다 높은 관리 앞에서도 공부한 대로 내 신념을 지키며 백성과 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갈대를 잡고 있는 게는 용왕 앞에서도 자신의 길을 가겠노라는 다짐을 하고 있다. 자신에게 하는 약속을 다짐이라고 하며, 공공의 장소에서 여러 사람에게 하는 약속을 공약이라고 한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많은 후보들이 공약을 제시하고 있다. 많은 공약을 제시하고 있는 대통령 후보들은 용문 앞의 물고기처럼 거친 물살 속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공약을 말하는 후보들의 머릿속에는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모란처럼 자신에게 주어지는 큰 권력을 생각하고 있을까, 아니면 갈대를 물고 있는 게처럼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자신의 말한 약속을 지켜 나라와 국민을 행복하게 하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을까? 그들의 공약은 스틱스 강에 대한 맹세가 되어야 한다. 공약을 듣고 있는 국민들이 그것을 잊지 않고 지켜볼 것이며, 지키지 않았을 때 책임을 지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