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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랄라라 Feb 01. 2022

선비들이 일출을 바라보고 있지 않는 이유는?

겸재 정선의 <낙산사>

산에서 바라본 일출과 바다에서 바라본 일출

1월 1일 일출을 바라본 적이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1월 1일 아침이 되면 바다나 산에 올라 일출을 기다리며 한 해의 소원을 빌거나 이루고 싶은 일에 대한 다짐을 한다. 그 장소에는 혼자인 사람도 있고,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졸린 눈을 비비는 사랑스러운 가족과 함께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흐린 날씨에 일출을 볼 수 없어 아쉬움을 가지고 떠날 때도 많다. 하지만,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게 되었을 때는 머리가 아닌 가슴속에 저절로 "나는 할 수 있다"라는 마음이 꿈틀거린다. 어둠을 뚫고 떠오르며 온 세상을 붉게 물들이는 강력한 생명력이 심장을 쿵쿵 때리기 때문이다. 

산에서 보는 일출과 바다에서 보는 일출은 다르다. 산에서 바라보는 일출은 위엄이 있다. 그 위엄은 내가 걸어서 올라간 높이와 동일하다. 일출을 보기 위해서는 준비하는 시간, 일출 장소로 이동하는 시간, 일출 장소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동네 뒷산에서 바라본 일출과 지리산 천왕봉에서 바라본 일출은 그 위엄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산에서 바라보는 해는 할 수 있다는 성취감을 높여준다. 반면 넓은 바다와 함께 바라보는 떠오르는 해는 강한 생명력과 함께 넓은 포용력을 느끼게 한다. 지금까지 자신을 힘들게 했던 많은 것들을 여유로운 마음으로 바라보게 하고, 그것을 이겨낼 수 있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게 한다.

낙산사 일출/ 문화유산채널


 선비들이 일출을 바라보고 있지 않는 까닭은?

낙산사는 강원도 양양에 있는 절로 동해에서 아름다운 일출을 볼 수 있는 장소로 유명한 곳이다. 이 절은 신라의 의상대사가 관음보살을 직접 만난 곳에 지은 것이다. 의상대사가 관음보살을 만난 곳은 낙산사의 홍련암인데 바닷가 절벽 위에 위치하고 있어서 경치가 매우 아름답다. 그래서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낙산사의 홍련암과 일출을 그렸다. 대표적인 그림 중 하나가 정선의 <낙산사>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넘실거리는 파도를 뚫고 떠오르는 해다. 낙산사를 포근히 감싸고 있는 오봉산과 절벽 위 홍련암을 차례로 보고 나면 바위 위 일출을 바라보는 선비들의 모습이 보인다. 일출을 보기 위해 이 바위에 오르려면 아마 어두운 밤길이나 새벽길을 한참 동안 힘들게 걸어왔을 것이다. 바위 위에 있는 선비들은 모두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소원을 빌고 있을까? 하지만 그림 속의 선비들은 해를 바라보지 않고 편안하게 앉아 서로를 바라보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선비들은 일출이라는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일출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와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해가 떠오르는 시간에 맞춰 이 바위 위에 앉아 있을 수 있다는 것은 계획성과 성실성,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며, 그것은 자신이 앞으로 어떻게 공부를 해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태도를 충분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절 앞에 서 있는 한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해진다. 갓을 쓰고 있지 않는 것으로 보아 선비들의 시중을 들기 위해 따라온 사람이거나 낙산사에서 일을 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바위 위에 여유롭게 앉아있는 선비들의 모습과 비교하여 이 사람의 뒷모습이 무척이나 허탈해 보인다. 낙산사의 일출을 보기 위해 밤새 길을 걸어왔으나 이미 늦어버린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일출의 시간은 짧고 후회는 아무리 해도 소용이 없다. 이 사람은 이미 떠오른 해를 바라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겸재 정선의 <낙산사>/간송미술관

내일도 내일의 해가 뜨지만....

어려서 학문을 좋아하는 것은 해가 돋아오를 때의 햇빛 같고
장성하여 학문을 좋아하는 것은 해가 중천에 오를 때의 햇빛과 같으며
늙어서 학문을 좋아하는 것은 켜놓은 촛불의 빛과 같다.


위의 글은 춘추시대 진나라의 사광이 한 말이다.  언뜻 보면 늙어서 학문을 좋아하는 것이 촛불로 비유되는 것이 어릴 때와 장성하였을 때의 햇빛에 비교하여 초라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저녁이 되면 해는 지고 어둠이 찾아온다. 그 어둠을 밝히는 것은 촛불이다.  밤을 촛불로 밝힌다는 것은  하루를 되돌아보아 내일을 계획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되돌아봄은 내일의 자신을 보다 나은 길로 이끌어주는 기회가 된다. 되돌아보지 않고 앞으로만 나아가고자 하는 사람은 작은 성취에 매달리다 금방 지쳐버리게 된다.


오늘의 떠오르는 해를 보지 못했다고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내일도 해는 떠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밤에 준비하지 않는다면 내일의 떠오르는 해도 볼 수 없을 것이다. 지나간 시간을 아쉬워하지만 하지 말고, 그 마음을 담아 다가올 시간을 준비하자. 그렇게 한다면 여유롭게 내일의 해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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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오마이뉴스 2022년 2월 3일자(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806972)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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