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를 찢는 신하도 필요하고, 붙이는 신하도 필요하다.

신념과 포용은 다른 말이 아니라는 것을 실천으로 보여준 최명길(1)

by 랄라라

초중고 학창 시절 국어시간의 주장하는 글의 예문과 사회(역사) 시간의 토론 주제로 자주 나오는 것이 ‘병자호란 당시의 주화론과 주전론’이다.

청나라의 침략으로 당시 임금이었던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도망갔다. 남한산성을 둘러싼 청나라군은 임금을 구하기 위해 온 조선군들을 크게 물리쳤으며, 강화도를 함락하여 세자빈과 봉림대군을 붙잡았다. 이때 남한산성 내에서는 항복하자는 주화론과 끝까지 싸워야 한다는 주전론이 대립하였다. 주화론을 주도한 사람은 최명길이다. 최명길은 겁쟁이 거나 강한 힘을 가진 청나라에게 잘 보여 자신의 지위를 유리하게 하기 위해 항복을 주장하였던 것일까?


최명길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신념이 있었으며, 그 신념을 실천할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의 신념은 나라와 백성을 향하고 있었다.

나라와 백성을 위한 그의 신념은 어떻게 실천으로 이어졌을까?

우선 광해군의 정치가 옳지 않다고 생각하자 광해군을 쫓아내고 인조를 왕으로 세우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왕을 바꾸는 일은 실패한다면 역적으로 몰릴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인조를 왕으로 세웠다. 인조를 왕으로 세운 그는 땅을 양반들이 아닌 농사를 짓는 사람에게 나누어주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농민들에게만 있던 군역(국방의 의무)을 양반들에게도 부여해야 한다고 소리 높였다.

인조가 왕이 되는 데 큰 공의 세웠던 이괄이 자신에게 내린 상에 불만을 가져 군사를 일으켰다. 그 세력이 무척이나 커서 인조는 피난을 가게 되었다. 최명길은 이괄을 설득하는 한편 임금이 도망간 한양의 백성들을 안정시켰다. 또한 직접 군사 책임자가 되어 이괄과의 전투에서 승리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병자호란이 일어나기 전 청나라가 황제국임을 선포하자 대부분의 신하들은 청나라를 오랑캐라 말하며 모든 관계를 끊어야 한다고 말할 때 최명길은 청나라를 황제국으로 인정하고 형제의 예를 지켜 나라를 보존하자고 하였다. 대부분의 신하들이 청나라가 쳐들어온다면 고려시대 몽골과의 전쟁의 예처럼 강화도로 수도를 옮기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였다. 하지만, 최명길은 고려가 수도를 강화도로 옮겼을 때 백성들이 당한 고통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만약 전쟁을 한다면 군사를 국경이었던 의주 압록강에 모아 벌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패하더라도 백성들의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최명길은 국제 정세와 대한 올바른 판단과 전략가로서 사고의 유연함을 가지고 있었다.

인조가 병자호란 당시 강화도로 피난을 가지 못하고 위기에 처했을 때 모든 신하들이 우왕좌왕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였다. " 일이 급박하게 되었습니다. 신이 달려가 청나라 장수를 만나겠습니다. 실패한다면 그의 손에 죽을 것이나 대화를 할 수 있다면 조금의 시간을 벌 수 있을 테니 그 틈을 타서 남한산성으로 들어가십시오" 인조에게 이 말을 남긴 최명길은 청나라 장수와의 목숨을 건 회담을 하였고, 인조 일행은 남한산성으로 피신할 수 있었다.

다운로드.jpg 출처: 머니투데이, 권경률의 사극 속 역사인물 67

그렇다면 남한산성에서 청나라에 항복을 하자고 한 최명길의 입장은 무엇이었을까? 전쟁이 계속되었을 때 국가와 백성들의 피해가 더욱 커질 것을 예상하여 그 피해를 줄이기 위한 방법을 제시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인조가 최명길의 의견을 받아들여 항복을 결정하자 최명길은 직접 항복문서를 작성하였다. 그런데 계속 전쟁을 주장하던 김상헌이 그 문서를 찢어 버렸다. 임금이 지시한 문서를 찢은 김상헌을 크게 벌 줄 수도 있었지만 자신을 ‘나라를 팔아먹고, 임진왜란 때 도와준 명나라를 버린 은혜를 모르는 비겁자’라고 비난한 그에게 어떤 보복도 하지 않았다. 그는 찢어진 문서를 주우며 “나라에는 문서를 찢는 신하도 필요하고 나처럼 붙이는 신하도 필요하다”라고 말한다. 전쟁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들의 생각 역시 나라를 위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며, 나의 생각만이 옳은 것이 아니라 다양한 생각을 존중하는 것이 나라를 발전시키는 데 필요한 것임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병자호란이 끝난 후 명나라와의 관계를 끊겠다는 약속을 어긴 것이 들켜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이때 최명길은 죽음을 각오하고 스스로 청나라로 인질로 가서 2년간 감옥에 갇혀 고생을 하게 된다. 그는 이렇듯 나라의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힘든 일을 겪더라도 스스로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실천하는 것'과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것'이 다른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신념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편협한 고집이다. 신념과 고집은 나와 다른 의견에 대한 태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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