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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주 Oct 21. 2020

여행자와 같은 삶-카프카_「칼다 기차의 추억」

  <<칼다기차의 추억>> (프란츠 카프카/이준미/하늘연못) 중에서

    


 이 소설집의 표제작인 「칼다 기차의 추억」은 카프카의 작품들 중에서도 생소한 단편이다. 이 소설에선 그의 단편들에서 흔히 발견되는 우화 형식도, 변신 모티프도 발견되지 않는다. 언뜻 평범해보이는 이 쓸쓸한 이야기에서 카프카는 무슨 말을 하고팠을까. 


 화자는 수년 전 러시아의 외딴 역에서 일했던 때를 담담하게 회상한다. 애초에 대도시인 칼다까지 연결하기 위해 계획되었지만, 어느 황무지 작은 소읍에서 철도가 중단되었다. 화자는 철도가 거의 필요없고, 자주 운행되지도 않는 그 작은 역에 고용되어 판자로 된 칸막이방(역사驛舍)에서 지냈다.      


 내 생애의 한 때 나는 러시아의 한 작은 철도에서 일했다. 그곳에서처럼 그렇게 고독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고집스레 어느 한곳에 머물거나 속하지 못하는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당시의 나는 그런 곳을 찾았으며, 더 많은 고독을 느낄수록 더 좋았다. (p.177)     


 이 시골 사람들 모두 대인관계가 원만한 것이 특징이었다. 그런데 나는, 내가 나에게 강요했던 이 고독이 정말로 얼마 안 되어 과거의 걱정들을 흩어지게 만들었다고 분명히 내 마음으로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온전한 고독을 견디어 내기에 조건들이 너무도 적절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독 속에 서 있는 한 인간을 지속적으로 통제하는 것은 불행에 대한 대단한 힘겨루기라고 나는 대체로 생각했다. 고독은 그 어느 것보다 더 강력하고 그 사람을 다시 사람들에게로 몰아간다. 물론 그러면 사람은 다른 길을, 보기에는 덜 고통스럽지만 사실은 여전히 알지 못하는 길을 찾으려고 애쓴다. (p.179~180)     


 고독이 좋았고, 더 많은 고독을 느낄수록 좋았다는 말이 와닿는다. 아마도 화자는 그 이전에 괴로운 일이 있었으리라. 대체로 고독을 자처하는 사람은 천성적 기질 탓도 있지만 관계로 인한 혼란과 고통을 겪은 경우가 많다. 이 소설에선 고독이 ‘과거의 걱정들을 흩어지게 만들었다고’만 밝히고 있다. 과거의 걱정들이 어떤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렇다면, 그 외딴 역에서 찾은 고독이 마냥 좋기만 했을까? 고독을 자처해서 이 외딴 역에 머물렀고, 고독으로 인해 마음의 평안도 얻었지만, 불행하지 않으려는 본성은 결국 사람을 향한다. ‘고독은 그 어느 것보다 더 강력하고 그 사람을 다시 사람들에게로 몰아간다.’는 말에 공감한다. 고독의 한 가운데에서 절대고독을 느낀 이는, 그 고독이 그 어느 것보다 강력하다고 느낄 것이다. 고독에 익숙해질수록 고독 말고는 다른 감정이 들어올 자리가 없다. 오직 고독만이 남고, 점점 더 고독해질 뿐이다. 처음엔 달콤했던 고독이 어느새 불행으로 느껴지고, 불행에 저항하는 마음이 생긴다. 그리하여 결국 다시 사람들을 찾게 된다.     

 

 화자가 이 작은 역에서 만난 사람들은 가난한 농부들이다. 역을 비울 수 없는 화자와 거래하기 위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오는 사람들에 의해 생필품을 조달한다. 화자가 자는 동안에도 화자의 오두막을 노크하고 들어가 잡담을 하고 차를 마시기도 한다. 화자는 이 시골 사람들 덕분에 오직 고독하기만 한 삶을 벗어나 관계의 소소한 기쁨도 맛본다.      


 그러나 화자는 근무를 시작하고 3개월쯤 지났을 때 심한 기침과 함께 앓기 시작한다.      


 나는 내가 더 나아진 게 아니고 오히려 더 나빠졌다는 것과, 나를 위해서는 칼다로 가는 것이 불가피하며 거기서 내 상태가 나아질 때까지 며칠 지내야 한다는 걸 분명하게 깨달았다. (p.195)      


 이 문장으로 소설이 끝난다. 갑자기 뚝 끊긴 느낌이다. 이야기가 아직 남았을 것만 같다. 마지막 문장으로 미루어, 미완성작이라 추측된다. 


 이 이야기 속에서 칼다는 지명으로만 등장할 뿐, 화자가 칼다에 가거나 그곳에서 일어난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왜 제목이 ‘칼다 기차’의 추억일까? 심지어 철도가 칼다로 연결되지도 않았다. 연결할 계획이었으나 여러 가지 요인으로 연결되지 않았다고 한다. ‘칼다 기차’는 가고자 했으나 가지 못했던 곳을 말하는 것일까? 이루지 못했던 꿈일까? ‘칼다 기차’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칼다 기차의 추억’은 당연히 존재하지 않는다. 칼다 기차의 추억이 의미하는 바가 가보지 않은 지점에 대한 욕망이나 아쉬움은 아닐 듯하다. 그렇다면 화자는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칼다로 가고, 칼다 기차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계획되어 있었다고 추론할 수 있다. 역시 이 소설이 미완의 소설임을 뒷받침하는 추론이다.      


 병세가 심해짐과 동시에 갑자기 끝나버리는 이 소설의 결말에서, 폐결핵을 앓다가 갑자기 끝나버린 카프카의 삶이 연상돼 더욱 쓸쓸하다. 생각해보면, 시작과 결말이 명확한 것은 소설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우리의 삶은 어느날 갑자기 뚝 끊어져버리는 미완의 삶이지 않는가. 어제까지 했던 일을 오늘 마무리 짓지 못하고, 어제 했던 약속을 오늘 실행하지 못한 채, 어느 날 갑자기 끝문장만 남아버리는 것, 그렇게 우리의 삶은 대체로 미완의 결말이다.     


 화자가 이 작은 역에 잠시 머물다가 떠났듯이, 칼다에서도 오래 머물지 않았을 것 같다. 카프카는 자신의 삶을 여행자처럼 잠시 머물다 떠나는 삶으로 표현하고 싶었을 수도 있다. 역이라는 공간은 잠시 거쳐가는 곳이다. 역에서는 오래 머물 수 없다. 기차도, 승객도. 


우주의 유구한 역사로 보면 인간의 삶은 찰나이다. 카프카의 삶 뿐 아니라, 누구의 삶도 잠시 거쳐 가는 여행자의 삶이라고 생각하면 카프카의 짧은 삶이 덜 애달프다. 누군가의 여행은 좀더 길었고 누군가에겐 좀더 짧았을 뿐, 한 곳에 영원히 머무는 여행자는 없으니 말이다.


단편소설집 <<칼다 기차의 추억>>에 대해.

*읽은 때 : 2020.08.18.~2020.0830.

*별점 : 4.0/5.0

*한줄평 : 카프카의 단편 100여편을 꾹꾹 눌러 담은, 속이 꽉찬 단편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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