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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주 Jan 06. 2021

남겨지는 사람들-「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김초엽/허블) 수록 소설 (4)

      


 인류가 먼 우주의 항성계로 활발히 이주하는 시대에 일어날 법한 일들로 또 하나의 훌륭한 이야기가 탄생했다. 이 소설집의 소설 한 편 한 편이 다 훌륭하다. 재미와 과학지식, 상상력, 애틋한 감성이 골고루 버무려진 잘 차려진 코스요리를 먹는 기분이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이 소설집의 표제작답게 작가가 차려놓은 코스 요리 중 메인 요리다. 이 소설에 이르러서야, 이 소설집 전체를 관통하는 공통 감성이 손에 잡힌다. 그것은 그리움이다. 그리움은 외로움을 동반한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이 두 감성이 전면에 드러나며 가슴이 먹먹해진다.      

 

 폐기시한이 지난 우주정거장은 백일흔 살의 노인, 안나의 점거로 인해 폐기되지 못하고 있다. 그곳에서 안나는 이미 운항이 중단된 슬렌포니아 행성으로 가는 우주선을 기다리고 있다. 젊은 시절, 그녀의 남편과 아이가 슬렌포니아 행성으로 먼저 이주를 했고, 냉동 수면 기술의 핵심 연구원이었던 그녀는 연구를 마치는 대로 뒤따라가기로 했다. 당시 먼 우주로 가기 위해서는, 우주선 주변의 공간을 왜곡하는 워프 버블을 만들어서 빛보다 빠르게 다른 은하로 도달하는 워프 항법을 사용했다. 그러나 그녀의 연구가 막바지에 이를 무렵, 훨씬 경제적이고 빠른 웜홀 항법이 개발되면서 워프 항법은 폐기되었다. 웜홀 항법은 우주에 이미 존재하는 수많은 통로를 활용하는 것이므로 웜홀이 연결되어있지 않은 슬렌포니아 행성으로는 갈 수 없다. 경제성의 논리로 슬렌포니아로 가는 우주선 운행이 중단되면서 그녀는 남편과 아이를 영영 만날 수 없게 된다.      

 

 “완벽해 보이는 딥프리징조차 실제로는 완벽한 게 아니었어. 나조차도 직접 겪어보기 전에는 몰랐지. 우리는 심지어, 아직 빛의 속도에도 도달하지 못했네. 그런데 지금 사람들은 우리가 마치 이 우주를 정복하기라도 한 것마냥 군단 말일세. 우주가 우리에게 허락해 준 공간은 고작해야 웜홀 통로로 갈 수 있는 아주 작은 일부분인데도 말이야. 한순간 웜홀 통로들이 나타나고 워프 항법이 폐기된 것처럼 또다시 웜홀이 사라진다면? 그러면 우리는 더 많은 인류를 우주 저 밖에 남기게 될까?” (p.181)     

 

 그녀는 자신이 개발한 냉동수면 기술인 딥프리징 기술을 이용해 냉동수면 상태와 각성상태를 반복하며 슬렌포니아 행 우주선을 기다렸다. 오직 남편과 아이를 만나기 위해 잠들고 깨어나기를 반복한 100년여의 세월이 가늠되지 않는다. 가족을 향한 그리움은 세월이 지난다고 옅어지지 않는다. 그녀가 느꼈을 그리움과 외로움의 깊이가 100년과 우주라는 단어만큼 아득하게 느껴진다.      

 

 워프 항법이 한 순간 폐기된 것은 단지 경제성 때문이다. 그녀의 말대로 훨씬 더 광대한 곳으로 인류를 실어나르는 웜홀이 한 순간 닫혀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우주 저 먼 곳으로 뿔뿔이 흩어진 인류는 영영 다시는 돌아올 수도 만날 수도 없게 된다. 허공에서 물방울을 뿌리듯 흩뿌려진 인간이라는 점들이 그렇게 하찮게 뿌려져도 되는 것일까? 안나처럼 일시적 이별이 영원한 이별이 되어도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 우주를 향한 인류의 야망에, 개인의 이별과 절박함은 고려대상이 아니다. 그녀의 지적대로 빛의 속도로 갈 수조차 없는 인간은, 광대한 우주에서 얼마나 작고 무력한 존재인가. 과학발전에 대한 과신과 무분별한 욕망, 오만함 뒤에는 반드시 댓가가 따른다. 끝없는 욕망과 오만함으로 지구를 병들게 하는 인간이, 미래에는 그 스케일을 우주로까지 팽창시킬 생각을 하니 오싹해진다. 


 “예전에는 헤어진다는 것이 이런 의미가 아니었어. 적어도 그때는 같은 하늘 아래 있었지. 같은 행성 위에서, 같은 대기를 공유했단 말일세. 하지만 지금은 심지어 같은 우주조차 아니야. 내 사연을 아는 사람들은 내게 수십 년 동안 찾아와 위로의 말을 건넸다네. 그래도 당신들은 같은 우주 안에 있는 것이라고. 그 사실을 위안 삼으라고. 하지만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조차 없다면, 같은 우주라는 개념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우리가 아무리 우주를 개척하고 인류의 외연을 확장하더라도, 그곳에 매번, 그렇게 남겨지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면…….” (p.181)     
 “우리는 점점 더 우주에 존재하는 외로움의 총합을 늘려갈 뿐인 게 아닌가.” (p.182)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이 안나의 입을 통해 나직이 울려온다. ‘같은 하늘 아래’ 와 ‘같은 우주 안’이 내포하는 간극은 얼마나 큰가.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조차 없다면…… 인간이 얼마나 작은 점인지 깨닫지 못한다면, 인류의 외연을 확장할수록 외로움과 그리움은 우주만큼 크고 깊어질 뿐이라는 메시지가 무겁게 와 닿는다.      

 

 구석기 시대의 인간과 현대의 인간, 먼 우주로 떠나는 인간, 모든 인간사에서 일어나는 부조리와 아픔들은 크게 다르지 않다. 먼 미래에도 여전히 인간들은 가족의 사랑이 소중하고, 이별에 가슴 아플 것이다. 빛의 속도로 가더라도 수만년은 걸리는 그곳에 이제 더이상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는 없다. 그러나 안나는 이미 떠난 그들의 흔적이라도 봐야 했다.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그녀 자신도 알지만 길을 떠날 수밖에 없는 것. 그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그녀는 자신이 가야할 곳을 정확히 알고 있다고 했다. 그녀가 가야 할 곳, 그곳은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곳이다. 이미 생을 다한 그들 곁으로 가기 위해 그녀는 망망대해 같은 우주 속으로 들어가버렸다.     

  

 우주 속을 떠돌다가 생을 다한 자들이 모이는 행성이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종교에서 흔히 말하는 천국 같은, 물성이 없는 영혼이 모이는 별, 그런 곳에서 안나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가족과 재회하면 좋겠다. 넓디 넓은 우주 어느 공간에는 그런 비현실적인 별 하나쯤 있어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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