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 친구의 딸, 내 팀원이 되다

레퍼럴을 신뢰하는 미국 문화

by 그레이스



미국 회사에서 일하면서 가장 신기하게 느끼는 건 '레퍼럴 문화'다.


직원을 채용하거나 업체를 고를 때, '누가 추천했는지'가 생각보다 훨씬 큰 영향을 미친다. 처음엔 이걸 왜 이렇게 중요하게 보는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았었다.


그런데 최근 두 가지 일을 겪으면서, '레퍼럴'이 단순히 네트워크 활용이 아니라 미국 비즈니스 문화의 핵심이란 걸 알게 됐다.


2025년 11월, 인턴으로 일하던 친구의 계약 기간이 끝났다. 새로운 사람이 필요했지만, 올해 내게 할당된 헤드카운트(인원)는 없었다. 그래서 우선 계약직을 뽑고, 하반기에 상황이 나아지면 정직원 전환을 검토하기로 했다.


이제 막 채용 절차를 시작하려던 어느 날, 상사에게 이런 메시지가 왔다.


"내 친구 딸이 마침 구직 중인데, 핏이 맞을 것 같아."

바로 이력서를 전달 받았고, 인터뷰와 승인 절차는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 그렇게 올해 초부터 나는 지금 상사 친구의 딸과 함께 일하고 있다.


사실, 처음에는 솔직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추천을 받아 들어온 사람과 일하는 건 생각보다 부담스러운 일이다. 혹시 일하는 방식이나 성격이 잘 안 맞으면 어쩌나 걱정이 앞섰다. 일반 채용 과정과 비교해서 (그 친구에게) 쉽게 기회가 주어진 것도 마음에 걸렸다. 혹시나 이 일을 가볍게 생각하고 대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이제 함께 일한지 2달 차에 접어든 지금, 걱정과 달리 큰 문제 없이 잘 지내고 있다.


이런 경험을 하며 기회를 '어떻게' 얻는지는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때론 운이 작용하기도 하고, 보너스로 학연/지연/혈연 찬스가 주어지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주어진 기회를 어떻게 활용하느냐다.


미국 회사에서 일하면서 정말 다르다고 느끼는 부분이 바로 이처럼 레퍼럴을 선호하는 문화다.


직원을 채용할 때도, 벤더를 선정할 때도, '이미 함께 일해본 사람'을 훨씬 신뢰한다. 회사 직원의 자녀를 인턴으로 채용하는 경우도 자주 본다. 나에게는 정말 충격적이었지만, 현지에서는 매우 자연스러운 듯 보였다. 심지어 직원 추천으로 채용이 성사되면 보너스를 지급하기도 한다!


이런 '레퍼럴 문화'는 채용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올해 3월에는 우리 회사에게 가장 중요한 이벤트가 열린다. 이번에는 특별히 전시 부스 참가 뿐 아니라 임원진 디너, 칵테일 파티 등 추가 행사를 하기로 했다. 이 많은 행사들을 혼자 감당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서 에이전시를 고용하기로 했다.


약 10개 정도의 업체를 리서치했고, 그 중 3개를 추려서 보고했다. 그런데... 상사가 각 업체에게 클라이언트 2명을 연결해달라고 요청하라는 거다. 레퍼럴 체크였다. 나름 직장 생활 14년 차, 해외 생활 10년 차인데, 처음 해보는 일이었다.


업체들은 실제 고객을 연결해줬고, 나는 각 레퍼럴과 30분씩 화상 미팅을 진행했다. 낯선 사람에게 시간을 요청하는 것 자체가 꽤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이런 낯선 이의 요청을 선뜻 들어준 이유가 무얼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그렇게 모든 레퍼럴 체크를 마쳤고, 세 업체 중 가장 빠르게 레퍼럴을 제공한 업체와 계약했다.


그런데 막상 일을 시작하니 기대만큼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오히려 레퍼럴 확인 과정이 ‘안전한 선택’이라는 착각을 준 건 아닐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나중에 든 생각인데 뒤에서 레퍼럴 체크 해준 대가를 받았을 수도 있지 않은가.)


이쯤 되니 궁금해졌다. 왜 미국에서는 이렇게까지 레퍼럴을 선호할까? 챗GPT와 퍼플렉시티에게 물어보니, 몇 가지의 이유를 정리해줬다.


첫째, 미국은 고용 및 계약과 관련한 법적 리스크가 큰 시장이다. 채용이나 계약이 잘못됐을 때의 비용이 크기 때문에, 이미 신뢰 관계 안에서 검증된 사람을 선호한다.


둘째, 시장이 방대하다. 인재와 벤더 풀이 워낙 넓어 이력서나 제안서만으로는 판단이 어렵다. “같이 일해봤다”는 경험 기반 정보가 더 설득력을 갖는다.


셋째, 의사결정자의 책임 분산 효과. “누군가 강력 추천한 사람”이라는 근거는 내부 설득과 방어 논리로도 유용하다.


넷째, 미국은 개인주의 사회라고 하지만, 동시에 네트워크 기반 경제다. 투자도, 계약도, 이사회 구성도 관계 위에서 돌아간다.




이번 경험을 통해 한 가지 분명해진 건, 레퍼럴에도 ‘깊이’가 있다는 점이다.


에이전시 사례처럼, 나와 아무 연결고리가 없는 사람이 해준 추천은 크게 의미가 없다는 걸 알게 됐다. 반면, 상사의 '친구'처럼 오랜 시간 신뢰해온 관계라면 그 무게가 다를 수 있다. 결국, 같은 레퍼럴 방식도 네트워크의 퀄리티에 따라 결과가 천차만별일 수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연줄’이라는 단어가 부정적으로 여겨진다. ‘공정성’에 대한 기대가 높고, 기회는 능력과 노력에 따라 배분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인 것 같다. 미국은 네트워크를 잘 구축하고 관리하는 것 또한 하나의 능력으로 보는 것 아닐까.


이번 일을 통해 나도 조금 생각이 달라졌다. 일만 잘한다고 기회가 자동으로 오는 건 아닐 것이다. 누군가가 나를 떠올려줄 관계를 구축하는 것. 그리고 추천받았을 때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실력을 갖추는 것 또한 중요하다.


나와 함께 일해본 사람이 다른 누군가에게 주저 없이 나를 추천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업무에만 파묻혀 있지 않고, '관계 자산'을 쌓기 위한 노력에도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해보려고 한다.


*제 경험과 생각을 바탕으로, AI 글쓰기 파트너 '딜라이팅 AI'와 함께 완성한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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