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점 복귀
<프렌치 엔딩> 목차 구성으로 계획했다가 시간이 부족해 못 쓴 챕터가 2개 있다. 이 책의 결과 및 결론과도 같은 두 챕터를 아쉬운 마음에 따로 쓰고자 한다.
<프렌치 엔딩>을 끝까지 읽어봤다면 잘 알겠지만 우여곡절 끝에 우리 가족은 현재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지내고 있다. 감히 살고 있다곤 못하겠다. 또 언제 어떻게 여길 뜰지 모르니 말이다. 프랑스에서 파리 다음 두 번째로 인구수가 많은 항구 도시인 마르세유는 한국으로 치면 부산과도 같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단, 마린 도시의 개발 등으로 최첨단 도시로 뜨고 있는 부산과 다른 점이 있다면 마르세유에는 아직도 역사 깊은 문화 유적이 많이 남아있으며 항구 도시인만큼 13세기부터 계속된 외부 인구 유입으로 알제리아, 모로코 등 기타 중동 나라 이민 인구가 굉장히 많다. 그래서 여느 프랑스인들은 마르세유를 프랑스라고 부를 수 없다고 말한다. 그만큼 마르세유 거리를 걷다 보면 백인 프랑스인보다는 흑인, 중동인 등 다른 피부 색깔을 많이 볼 수 있다. 남편은 프랑스 사람이고 여기서 태어난 아기도 거의 아시아인보다는 유럽인의 모습에 가깝지만 셋다 마르세유가 처음인 우리도 굳이 따지고 보면 마르세유에 이민 온 사람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6월에 처음 집을 보러 왔다 7월에 정식으로 이사를 온 뒤 8월까지 계속된 여행을 마치고 8월 말에 제대로 마르세유 아파트에 정착한 우리는 이제 마르세유 생활 3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사실 처음 집을 보러 왔을 때부터 유럽에는 코로나 경보가 한국에 비해 높은 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6월부터 8월까지는 그런 뉴스를 얕보듯 거리에 관광객, 주민 할 것 없이 사람이 빼곡히 차 있었다. 휴가철이 끝나면서 자연히 관광객이 빠지기 시작한 마르세유에는 다시 코로나 경보가 찾아왔고 거리에는 사람들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주말만 되면 보통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집 앞 구항구 광장에는 산책을 즐기는 주민들로 꽉꽉 차곤 했다. 그러던 지난 10월 말, 마크롱 대통령은 8시 뉴스를 통해 프랑스의 높아져만 가는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수에 대한 현상황을 보고했고, 국민들에게 거의 간곡하듯 자가 격리를 12월 1일까지 재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소상인으로 지역 경제를 이끌어가는 게 국가 경제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만큼 직격을 받는 바나 레스토랑 주인들은 불만의 목소리를 계속 냈지만 유럽 내 확진자수가 가장 높은 국가로 향해가는 판국에 대통령도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었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가장 중요한 국가의 대통령인 만큼 마크롱은 자가 격리 발표의 결론에 이르기까지 그 중요성에 대해 한 20분을 설명했다.
그리고 지난주 금요일, 남편이 직장에서 문자를 보냈다. 직장 동료 중 한 명이 코로나 확진자로 양성 판정을 받아 오늘 출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이제 2개월도 안된 갓난아기가 있는 우리는 마찬가지로 갓난아기가 있는 직장 동료만큼이나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이번 주 월요일, 검사를 받을 수 없는 아기를 제외하고 나와 남편은 코로나 검사를 하러 갔다. 출산 당시 병원 입원 전에 필수로 검사를 받아야 했던 나는 두 번째로 받는 검사였다. 그리고 이틀이 지난 오늘 우리 둘은 다행히 음성 판정을 받았다.
사실 온 세상이 코로나와 전쟁 중이지 않았더라면 내 생활은 그다지 밝지 못했을 것 같다. 아직도 밤에 최소 두 번은 깨는 아기에게 모유를 먹이고 밤을 설쳐 아침 늦게 잠드는 게 일상인 나는 보통 늦은 아침에 일어난다. 그것도 아기가 모유를 찾아 깨면 같이 깨는 게 일반적인 나는 집안에 여러 개 나 있는 창문을 하나도 열지 못한 채 모유 수유를 하며 보통 아침을 먹는다. 밖에 오늘은 햇빛이 비추는지 어두운지 비가 오는지 거의 알지 못하고 지낸다. 그리고 11시쯤 아기가 다시 잠에 들면 재빨리 샤워를 한다. 이제는 아기가 한 번 잠들면 최소 2시간은 자서 샤워하고 화장 좀 할 여유도 생겼다. 그리고는 10월 한 달 동안은 정신이 있을 때 빨리 하루에 한 챕터씩은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으로 열심히 책을 썼다. 아침에 쓰다 하루 중간중간 쓰다 밤에 자기 전에 마무리를 지었다. 그러다 보니 안 그래도 부족한 잠에 밤잠을 더 못 자 혀 온갖 곳에 혓바늘이 돋았다. 그래도 밤에 자고 일어나 아침에 휴대폰에 떠 있는 독자들의 반응을 보고 행복했다. 내 글을 어떻게 읽었더라도 지난 7년간 내 삶을 의미 있게 해주는 거니까. 감사했다.
그리고 이제 글을 꼭 하루에 한 챕터씩 쓸 강박은 없어진 지금 다시 내 삶의 의미를 찾고 있다. 그동안 여러 나라를 거치면서 우리나라가 아니어서 그렇다느니 비자를 받기 힘들어서 그렇다느니 하는 온갖 핑계로 일정하게 해 오지 못한 경제활동부터 시작해서 그렇다고 딱히 잘 해낸 것도 아닌 집안일, 그리고 취미 삼아해서 취미 밖에 못된 유튜브 채널 운영 등 난 도대체 잘하는 게 뭘까 하는 회의감도 든다. 원랜 아기를 낳고 나면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아이템을 잡아서 자택을 사무실 삼아 이커머스 사업이라도 해봐야지 하는 생각을 하고 맘 편히 먹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때가 되어 아이템을 수색하다 보니 각자 소싱, 배송 등등 문제가 너무 많고 지금 현 상황을 똑같이 유지하면서 편히 할 수 있는 사업은 없어 보인다. 그럼 다시 유튜브로 브이로그나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러고 내 채널을 보면 다른 채널들에 비해 구독자도 턱없이 부족하고 반응도 너무 없어 보인다. 다시 고민이 시작된다. 그러다 저녁밥이나 하고 오늘 하루는 또 지나간다.
글을 쓴다는 게 애꿎은 변명의 공간하나 마련하는 건 아니지만 맘 편히 할 수 있는 걸로 생각하고 하다 보니 결국은 내 정당화밖엔 또 되질 않는다. 그 와중에 그게 또 이해를 받고 인정을 받으면 마음의 위로가 되고, 그러면 또 하루를 큰 일 이룬 거 없이 살고는 또 이 자리로 돌아와 글로 내 생각을 정리한다. 그래서 독자들에게 무한 감사하지만, 그런 마음에서라도 이번엔 꼭 뭘 이루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7년 내내 원점 복귀인 내 인생에서, 한 사람의 인생에 대해 아무것도 이룬 건 없다고 할 수 없겠지만 한 사람의 업적에 대해 아무것도 이룬 건 없다고 할 수 있는 내 지겨운 챗바뀌에서 한 번쯤은 좀 벗어나 보고 싶다. 죽도록 힘들게 노력해야 하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