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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Oct 29. 2020

보드라운 내 손을 지켜준 엄마 손

내 손은 유난히 가늘고 보드라웠다.

너무 가늘어 반지를 맞출 때도 금은방 사장님께서 그동안 손님들에게 반지를 맞춰 드렸던 호수 중 내 호수가 제일 작은 것이라고 할 정도였고, 우연히 내 손이 나온 사진을 본 친구의 친구가 나를 ‘섬섬옥수 친구’라고 부른다고, 그렇게 자기들 사이에서 통한다고 알려줄 정도였다. 보드랍기도 참 보드라워서 특히 뜨거운 것을 잘 만지지 못했다. 굳은살이라곤 하나 없는 내 손은 식당에서 나온 스테인리스 공깃밥 그릇도 맨손으로 옮기지 못했다. 내가 제일 가장자리에 앉아 있어 그릇을 옮기려고 ‘잠시만’이라고 말하며 옷소매를 끌어당기려고 하면 그때 엄마는 항상 내 손보다 먼저 공깃밥 그릇을 맨손으로 툭 집어 원하는 위치로 옮겨 주셨다.


엄마, 안 뜨거워?

이게 뭐가 뜨거워!


그럴 때마다 나는 엄마에게 뜨겁지 않냐고 물었고, 엄마는 또 그때마다 이게 뭐가 뜨겁냐고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셨다.

그래서 그렇게 나는 엄마는 원래 뜨거운 것을 잘 잡는 사람으로 생각했다. 원래부터 피부가 두꺼운 편이라, 나보다 뜨겁고 차고 한 온도에 덜 민감한 편이라고...




그러던 어느 날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내 임무는 서빙과 더불어 설거지를 해야 하는 것이었다.  

먼저 초벌로 철수세미로 직접 그릇을 씻은 후 식기들을 세척기에 넣어 돌린다. 삐-소리와 함께 식기 세척이 끝나고 식기세척기의 뚜껑을 들어 올리면 뜨거운 물로 샤워를 마친 그릇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그것들을 밖으로 꺼내, 하나씩 하나씩 마른행주로 물기를 싹 싹 닦아 줘야 했다.


아-뜨거워!

처음 설거지 일을 해본 나는 요령이 없어 맨손으로 컵을 잡으려고 했다. 엄청 뜨거웠다.

하지만 뜨겁다고 손이 데었다고 내색할 시간이 없었다. 개수대에 식기들이 쌓이기 전에 제때 임무를 끝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재빨리 마른행주를 손에 덧대어서 식기를 닦아 냈다, 뜨거움을 견디며.


그렇게 몇 회에 걸쳐 뜨거운 식기를 씻고 닦으며 정신없는 타임을 보내고 마침내 퇴근 시간이 다가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손을 만져보았다. 손은 세제와 물기를 많이 만져 건조하며 뻣뻣했고, 뜨거운 것에도 조금 데어 손에 열이 남아 있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삼일, 일주가 지났다. 일주일이 지난 날도 전날들과 다름없이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한결 피로가 덜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손이 덜 뜨거웠다. 자주 뜨거운 것을 만져 뜨거운 것에 대한 내성이 겹겹이 쌓여 피부가 조금은 두꺼워진 것 같은, 주방세제 때문에 덜 보드라워진 내 손이 느껴졌다. 그런 내 손이 고맙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해 한참을 바라보다 핸드로션을 듬뿍 바른 후 한참 동안 마사지를 해 주었다.


그런데 그때 문득 엄마 손이 생각이 났다.

고맙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한 내 손이 엄마의 손과 조금 닮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엄마도 이렇게 뜨거웠겠지?

뜨거운 것을 참고, 견뎌내신 거겠지.


알게 되었다.

내 보드라운 손은 엄마의 거칠고 두꺼워진 손이 대신 지켜준 것임을.

뜨거운 그릇보다 더 뜨거운 엄마의 마음을, 사랑을 알아차렸다.


자신의 딸은 보드라운 것만 만지며 살아나가기를 바라는, 그래서 당신은 모든 것을 견딘 것임을. 그 손임을.

조용히 곁에 계신 엄마의 손을 꼭 잡아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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