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르떼 시민교육팀 Jan 11. 2022

반짝인 순간을 믿고 달려,
아무 문제 없을테니

드림아트랩 4.0 아티스트 인터뷰 - 신정원 (LOE)

신정원 디자이너

대화로서 기능하는 예술을 지향하는 그림 그리는 디자이너. 개인성을 반영해 창작한 캐릭터가 주변과 상호작용하며 만들어내는 공간에 주목한다. 캐릭터 드로잉을 기반으로 드로잉에서 애니메이션까지 다양한 장르의 표현에 도전하고 있다. 그가 만든 ‘드로잉 히어로’는 드로잉의 진입장벽을 낮추면서 내면의 빛을 밝히는 수업으로 잘 알려져 있다. 서울 성북구에 있는 디자인 스튜디오 ‘노드메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저지르리라 결심할 시간이 필요해


강지웅(이하 ’): 올해 사업을 준비하시면서 사업의 주제에 대해 스터디 하는 시간을 오래 가지셨잖아요. 어떤 고민들을 하셨을지 궁금해요.

신정원(이하 ’): 이번 드림아트랩에서는 작가들의 삶을 노출해보자는 방향을 잡았어요. 작가는 스스로 작업실을 오픈하고, 아이들도 작업실에서 받은 영감으로 자기 작업실을 누려보는 상을 떠올렸는데, 그 작업실에서 만들어질 결과물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아티스트들이 청소년에 대해 경험한 바들이 달라서 어느 한 방향을 쉽게 정하지는 못했고 각자 가지고 있는 상을 모아가면서 접근방법에 대한 논의를 많이 했어요.     


강: 평소에 청소년들을 많이 만나시는 분들이기 때문에 각자 가지고 계신 상을 모은 결과가 어떨지 궁금해요. 청소년에 대해 가지고 있는 평소 생각들도 다르지 않을까 싶어요.

신: 아이들에게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진짜 많이 했어요.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 단편적일지라도 내가 뭘 좋아하는지 또 싫어하는지 생각하면서 자기 스스로 명확하게 결정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없는 걸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이번의 사업 주제가 적극적이잖아요. 삶을 해킹하고, 작업실을 줄 테니까 뭐든 해보라는 제안을 했기 때문에 참여하는 친구들이 자유롭고 거침없이 표현할 거라고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가이드를 기다리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저희는 가이드를 끝까지 주지 않았는데 길게는 8~9주의 시간 동안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할지 정한 아이도 있었어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애초에 아이들에게 그런 시간이 있었다면 자기 삶에서 훨씬 재미있을 텐데 생각했어요.     


강: 그러면 모아진 청소년에 대한 상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로 정리할 수 있을까요?

신: 저에게 정리된 건 그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가이드를 필요로 한다는 느낌, 자기 스스로 결정하고 저지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의 장벽이 높아서 방어적이라는 느낌도 받았어요.     


강: 말씀해 주신 상을 지금 시기의 특징으로 봐야 할까, 아니면 청소년 시기의 특징으로 봐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편으로 지금 청소년을 만나는 형식과 장소들이 주로 가이드를 줘야 하는 상황이어서 그런 건 아닐까 싶기도 했어요. 청소년에 대한 상을 모으신 다음에 아무래도 적극적인 사업의 주제와 잘 만날 수 있을지 걱정하셨을 것 같아요.

신: ‘아이들을 초대해서 누구를 위한 무언가를 만들자’는 목표에서 ‘누구를 위한’을 둔 건 나름의 이유가 있었거든요. 대상에 대해서 치열하게 관찰하면 좋겠다, 그 관찰을 통해 이해한 바를 바탕으로 뭔가를 해보면 좋겠다는 것이었고, 그런 점에서 대상에 대한 분석이나 자기만의 어떤 이해가 중요한 프로젝트였어요. 그런 취지에서 아이들이 자신만의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에 아기를 관찰하는 작은 워크숍을 진행했는데요. 코로나 때문에 영상으로 대체한 것이 아쉽기는 한데 아이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고 활동하는 영상을 보여주면서 관찰했는데 아이들이 굉장히 집중하면서 아기를 관찰한 기록을 모았어요.     


강: 자기 가족이 아닌 경우를 제외하고 아기를 관찰할 기회가 별로 없잖아요. 확실히 낯선 제안이긴 했을 것 같아요.

신: 아기를 관찰하고 아이에게 어울리는, 혹은 아이가 필요로 할만한 장난감을 추천해달라고 미션을 주었어요. 아기를 소개할 때 상황극을 했는데요. 제가 아기의 보호자를 소개해주겠다고 해서 잠깐 퇴장했다가 다시 들어오면서 제가 아기의 보호자입니다하면서 들어왔거든요. 코로나 때문에 원래 하려던 계획을 간소화한 게 정말 아쉬운데, 아기를 직접 관찰했다면 타자를 관찰하는 걸 넘어서 ‘사람이 이렇게 시작하는구나’까지 느낄 수 있기를 바랐거든요.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말을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고, 이렇게 요구했었고, 서툴렀던 것들을 어떤 경험과 훈련을 통해 익숙해져 갔다는 것을 실감하면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관찰이 확장되고 애착이 생기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강: 깊은 뜻이 담겨있는 기획이었네요.

신: 완전 그랬죠(웃음). 드림아트랩이 예술과 기술을 융합하는 성격이잖아요. 작가들이랑 처음 모인 자리에서 ‘예술이 뭡니까’ 부터 시작을 했는데 엄청 부담스러운 거예요. 저는 정의를 명쾌하게 내리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사람이고, 내 정의가 분명 편협할 텐데 이걸 아이들에게 요구해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예술에 대한 진지한 마인드를 공유하는 정도로 접근했던 것 같아요.      


강: 관찰부터 접근하신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선생님께서 하시는 드로잉 작업에서 관찰을 많이 하시기 때문은 아닐까 싶기도 한대요. 관찰에 대한 아이디어는 평소 가지고 계시던 생각이 아닐까 싶어요.

신: 호크니의 책을 읽으면서 봤던 문장인데, “그린다는 거 본다는 것이다.”라는 문장이었던 것 같은데, 거기에 굉장히 공감했었어요. 아이들에게 잘 그려야 된다는 부담을 덜어주려고 했던 이야기 중에 “어떤 형상을 있는 그대로 그리려고 하기보다는 그냥 지금, 이 순간의 흔적을 남긴다고 생각하면 좋겠다. 지금 네가 들고 있는 연필을 쥐고 있는 힘과 종이가 이렇게 닿아서 발자국처럼 흔적이 남는다고 생각해보자. 그러면 아주 약하게 그어진 선도, 연필심이 부러질 정도로 강하게 그어진 선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는 거니까 다 수용될 수 있다”고 이야기했거든요. 또 그림은 보고 싶은 만큼 보고 이해하고 싶은 만큼 이해하고 떠나도 괜찮잖아요. 그림은 그걸 서로 허용하는 매체라는 생각을 평소에 했어요.     


강: 자의든 타의든 관찰의 기회가 드물긴 한 것 같아요. 상대적으로 성인과 비교해 청소년에게는 더 낯선 제안일 텐데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궁금해요.

신: 아이들은 심상이나 느끼고 있는 바를 재현하는 거에 훨씬 더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성장하고 뭔가가 되어가고 있는 자신에 대해서 자각하는 게 훨씬 더 커다란 욕구인 것은 아닐까. 관찰은 그런 자신을 조금 비춰보고 확인하는 도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아기 관찰 워크숍을 하기 전에 손을 풀기 위해서 자기 얼굴을 그리는 걸 했었거든요. 정밀 묘사를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진짜 자유로운 드로잉들이 나오더라고요. 불타오르는 듯한 그런 뭔가의 표현들, 정밀 묘사를 위한 힌트를 주기도 했는데, 그 힌트를 받아서 그려내는 건 있는 그대로의 모습보다는 거기에서 또 자기가 받은 인상을 또 다르게 펼치더라고요.     


강: 관찰 자체가 청소년들한테는 약간 미션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관찰이 LOE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동력인 셈인데, 참여하는 친구들이 어느 정도로 집중할 수 있겠다고 예상하셨나요?

신: 작가들마다 마음이 달랐을 것 같은데 저는 어렵지 않을 거로 생각했고, 그 다른 분들은 더 걱정하셨던 것 같아요. 관찰의 주제를 제한할지 풀어줄지 고민할 때 풀어줘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어요. 관찰에 그렇게 힘이 실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대상에 대한 애착을 참여한 청소년 모두가 갖는 건 쉽지 않을 것이라고요.     


강: 실제로는 어땠나요? 

신: 아웃풋인 드로잉에서 나오는 관찰의 영역은 적었지만, 관찰 자체에 대해 아이들이 집중하긴 했었어요. 아이들이 굉장히 성실하게 듣고 기록하고 제안한 것을 반영해줘서 저는 약간 옳다구나 했던 게 있고요. 이후에 자기 작업으로 넘어갔을 때 관찰을 통해 얻은 결론이 명확한 친구일수록 엄청난 추진력을 발휘하는 것을 봤거든요. 그래서 결국 그게 없으면 안 된다는 걸 확인한 것 같아요.     


'마음껏'을 만끽한다는 것


강: 청소년들이 내가 이야기해도 된다는 걸 받아들이기까지 기다려주신 거잖아요. 일반적으로는 여러 제약 때문에 끝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대답을 재촉하거나 이런저런 제안을 하면서 진행을 하죠. 어떤 점에서는 전략적으로 대치 상태를 만드신 건데 청소년들의 반응은 어땠을지 궁금해요. 

신: 저희가 ‘여기서 마음껏 뭔가 고민하고 표현하면 된다’고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요. ‘마음껏’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해서 그런지 정말 만끽하는 느낌이었어요. 어떤 주제를 설정하더라도 거기에 진심이 될 때까지 시간이 또 필요한데 저희가 기다린 시간은 그 시간까지 포함하는 것 같아요. 4명으로 구성된 팀이 있었는데 리드하던 친구가 갑자기 빠지게 됐어요. 남은 친구들은 프로젝트 주제에 본래 관심이 있던 게 아니었고 리드하던 친구가 한다고 해서 같이 온 거였거든요. 그래서 그때부터 자기 도구를 찾고 그 도구로 어떤 이야기를 끌어낼지 고민하는 시간을 길게 가졌어요. 고민하는 동안에는 진행이 잘 안 되다가 방향을 찾는 순간 눈빛이 살아나면서 방법도 찾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엄청나게 보였어요. 처음에는 남의 이야기처럼 멀게 느꼈던 주제인데 자기 손에 든 도구로 발화할 수 있다고 생각과 더불어 주제가 확 다가오면서 이것도 해보고 싶다, 저것도 해보고 싶다 하면서 시너지가 생기는 그런 사례도 있었어요.     


강: 아이들이 나름의 방법을 찾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을까요. 처음부터 끝까지 본인들이 알아서 해결하는 건가요? 작가들이 결합하는 지점을 찾는 것도 숙제였을 것 같아요.

신: 부담을 주지 않는 선에서 아이들 옆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계속했어요. 그러다 탐색을 제대로 할 수 있게 해줘야겠다 싶어서 미니 클래스를 열었어요. 우리한테 주어진 도구들을 손으로 직접 느끼게 해주자, 그런 것들이 있다는 걸 확인하고 표현할 방법이 많다는 걸 아이들이 실컷 구경하게 했어요.     


강: 아무래도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방법을 정하는 것보다 뭘 할 수 있는지 어느 정도 레퍼런스가 있는 상태에서 선택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겠네요.

신: 요즘 아이들이 도구를 너무 능수능란하게 다루니까 도구를 정하고 다루는 데에는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착각이라는 걸 이번에 알게 됐어요. 수많은 기능이 탑재된 도구여도 모국어처럼 자기화한 도구로 작업을 하게 되는 거잖아요. 아이들에게 주어진 도구는 많다고 해서 그게 다 아이들의 것이 되는 건 아니구나 생각하게 됐어요.     


강: 이야기하고 싶은 방향을 정한 다음의 작업들이 궁금하네요. 방향도 속도도 스타일도 다 달랐을 것 같아요.

신: 네, 아이들마다 각양각색이었어요. 그중에 인상 깊었던 친구가 아이돌 아티스트의 착장을 만들겠다는 친구였어요. 소속사에 취업하고 싶을 정도로 팬이라고 하면서 만들려고 하는 게 너무 명확해서 오히려 저희가 걱정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옆에서 질문도 하고 딴지도 걸면서 지켜보는 데 정말 우직하게 갈 길을 가더라고요. 그냥 아이돌이 지금 입는 옷을 만들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지워지지 않아서 그때부터 그 아이 옆에서 인터뷰를 했어요. 그 아티스트를 왜 좋아하는지, 앨범이 왜 좋은지 물어봤어요.      


강: 어떤 아티스트였나요?

신: 스트레이 키즈요. ‘스트레이’가 방황하고 떠돈다는 뜻이래요. 이 그룹이 어떤 앨범에서 방황하고 헤매면서 자기 길이 어딘지 모르다가 어느 순간, 어떤 타이밍을 만나서 그 에너지를 분출시키는 컨셉을 선보였는데 거기에 엄청나게 공감을 했대요. 아티스트 스스로 어떤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걸 팬으로서 지켜보면서 그 아이도 영감을 많이 얻었다고 해요. 그런 배경을 모르고 진로나 단순한 팬심으로 제가 오해했던 거죠. 작가들이 옆에서 계속 걱정하는데도 흔들림 없이 계속 간 아이가 대단하게 느껴지면서 아마 그 뮤지션도 자신의 음악을 설명하고 표현하기 위해 들인 노력들이 있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제일 진행이 빠르고 열심히 하지만 작가들이 가장 걱정하는 아이였는데, 아이의 목소리와 시선을 먼저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걸 저희가 오히려 배우게 됐어요.     


강: 아이돌에 대한 관찰은 어떻게 이루어졌을지 궁금해요. 팬이니까 일단 집중해서 관찰을 해왔을 텐데,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어떤 관찰을 했을지.

신: 본인이 좋아하는 앨범에 대한 해석을 열심히 했어요. 왕의 이미지와 도깨비의 이미지를 활용해서 비주얼적으로 컨셉을 만든 게 있었는데, 왕에 대한 이미지를 더 강화하면서 중세의 군주 느낌도 가져오면서 한복의 요소도 집어넣는 등 동서양의 섞임이나 에너지를 함께 표현하려고 굉장히 애를 썼어요. 팀원인 친구가 커다란 광목천에 도깨비 도장을 연속적으로 찍어서 임팩트를 더하자는 제안을 했는데,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저희가 엄청 벅찼거든요. 도깨비 도장 장난 아니다. 당장 하자(웃음). 되게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결국 통과해냈어요.      


'반짝인 순간'을 믿고 달려가기를, 날개를 단 것처럼


강: ‘도구를 자기화하는 것’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도구에 대한 고민을 계속하게 되는 것 같아요. ‘4차 산업혁명’과 더불어서 기술의 발전을 이야기하는데, 앞으로의 도구에는 더 많은 기술이 집약될 것이잖아요. 그것과 도구를 자기화하는 것은 다른 문제일 수 있는데 자꾸 생략된다는 느낌이 들어서요.

신: 아이들이 도구를 다루는 손이 미숙하거나 정보가 모자라서 생기는 문제는 거의 없는 것 같아요. 그런데 손을 움직이는 동력은 결국 자기 마음에서 나오는 거잖아요. 그런 자기 이야기를 만들 조건은 되게 열악하다고 느꼈어요. 그게 있으면 작업자로서 굉장히 풍요로운 환경인 건데, 지금은 상품들도 말을 할 정도로 이야기가 넘쳐나서 자기가 말할 기회를 잃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해요. 아이들이 작업하면서 고통스러워하면서 가장 많이 부딪혀 넘어지는 상황이 결정하는 순간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거라고 결정하는 순간이었어요. MBTI 이야기를 포함해서 다른 기준들에 자기를 투영하는 모습을 아이들에게서 많이 보았는데, 그런 것들에 가로막혀서 아이들이 많은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건 아닌가 생각도 들었어요.      


강: 결정의 순간의 고통스러움이 어떻게 드러나던가요?

신: 예를 들면 이런 거였는데요. 누군가를 위해서 무언가를 만들기를 제안하면서 그게 상품이든 예술품이든 다 좋다고 열어놨었는데요. 그림을 그리려던 친구가 갑자기 플랫폼 UX를 디자인하겠다고 했어요.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그 결정을 하는데 외부의 목소리가 너무 많았더라고요. 그럴 듯해 보이고,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한 요소를 넣어서 설계하느라 몇 주 동안 고민하다가 원래 그림을 하고 싶다고 하지 않았어 하는 이야기를 하다가 하던 작업이 맞지 않는 옷임을 확인하고 원래 하려던 작업으로 돌아와서 같은 고민을 했던 친구들이 모일 수 있다는 어떤 개념을 만들고 마무리했거든요. 그 친구랑 같이 이야기하면서 중간중간 던지는 말들이 조금 슬펐어요. 저희는 기능에서 자유로워져라, 아무 기능을 하지 않아도 좋다는 메시지를 계속 줬지만, 그 친구는 있어 보인다고 평가받고, 요즘 트렌드가 어떻다 하는 피드백을 많이 받았겠지요? 무용하게 되는 것에 대한 공포가 아이들에게도 있는 것 같았어요. 아이들이 자기 작업에, 자기가 떠올린 이미지에 몰입하는 것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확신하기까지 조금 더 응원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했어요.     


강: 친구들이 본격적으로 작업하는 단계에서는 각자의 작업이 가진 스펙트럼이 달라서 오히려 뒷감당하시느라 힘드셨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신: 생각보다 그런 수고는 적었어요. 뭘 할지 결정하고 나서 아이들이 엄청나게 움직였어요. 작업에서 저희가 도와준 건 없고 시행착오를 함께 겪었어요. 망쳐도 괜찮다고 이야기해줄 사람이 필요해서 옆에 같이 있어 줬고요. 아이들이 방향을 정한 다음에는 2~3주 동안 정말 날개를 단 것처럼 날아갔어요.     


강: 작업에 필요한 기능을 익히는 것이 고민하고 결정하는 시간에 포함되는 걸까요, 아니면 방향을 결정한 다음에 주어진 시간이 짧아도 기능을 빠르게 익히는 걸까요? 할 수 있는 범위를 세팅하고 실행하는 것과 필요한 걸 배워가면서 해결하는 건 좀 다를 것 같아서요.

신: 옷을 만든 팀 빼고는 다 후자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강: 그 에너지는 의지가 발휘된 결과일까요, 아니면 활용한 도구의 기능 덕분일까요? 

신: 아이들이 적용했었던 것들은 대부분 본인들이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정도의 기술을 요하는 것들이었고요. 처음엔 갈피를 못잡다가 결국에 뭘 만들고 싶다고 결정했을 때 기술이나 기능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나 이거 하기로 했는데 이거 할 때는 이 재료가 제일 좋더라’하는 선택하면서 자유롭게 선택하고 활용하는 것까지 연결됐어요.     


강: 기술이나 기능을 먼저 배우고 쓸모를 찾는 것보다 내가 하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왜 그걸 하려는지를 먼저 정리하고 거기에 맞춰 기술이나 기능을 선택하는 것이 더 적당한 순서라고 할 수 있겠네요.

신: 특히 예술과 기술을 다룰 때 그 태도가 저는 더 편한 것 같아요. 자기 세계관이 되게 필요한 거잖아요. 예술을 경험해보고자 했을 때 어떤 관점을 다듬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떠올려보는 거 없이 도구부터 만나면 감각적, 말초적인 경험이 되는 것 같아요. 그게 나중에 다른 유의미한 아웃풋으로 나올 수 있겠지만 아이들이 자기만의 목소리, 어떤 메시지를 만드는 것에 당장 영향을 주기는 어렵지 않을까, 그 반대가 되면 훨씬 더 많은 추진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강: 그런데 사람들이 기술에 대해 갖는 두려움 중 하나는 몰라서 사용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 같아요. 사회적으로도 그런 부담과 두려움을 주는 것 같고요. 선생님 말씀처럼 순서를 바꾸면 내가 하고 싶은 게 있는데 기술을 써서 할 수 있거나 아님2 다르게 해볼 수 있다는 걸 알고, 그래서 써보고 싶으면 써보는 그런 관점을 가질 수 있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기술을 모르면 도태된다는 식의 분위기가 압도하고 있는 것 같아요. 아티스트로서 이런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신: 저도 왜 안 그렇겠어요. 움직이는 포스터 보면서 준비해야 할 게 되게 많구나 많이 느끼는데, 뭐랄까 또 고집을 피우게 되는 거는 툴이 점점 쉬워진다는 사실인 것 같아요. 기술이 발전함과 동시에 누구나 쓸 수 있는 방향으로 가잖아요. 기술의 방향이 그렇게 나아가는 걸 보면서 오히려 전 반대로 이렇게 생각을 붙이게 되는 것 같아요. 스마트기기나 앱을 사용해서 전문가랑 비슷하게 결과를 만드는 걸 보면서 훈련받은 사람으로서 서운함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 이야기를 다듬는 과정이 너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싶은 게 뭔데 하고 물었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는 건 다른 문제인 것 같거든요. 아이들의 어떤 액션을 강력하게 만드는 건 결국 그 아이의 메시지일 것이라는 생각이 평소 디자이너로서의 일상과 이번 워크숍을 통해 저는 조금 확고해지는 것 같아요. 기술에 대해 마냥 나몰라라할 수는 없겠지만 접근이 쉬워지고 노출이 많아진 환경에서 나에 대해 들여다볼 시간이 부족해질 수 있다는 걸 인지하고 여기에 의지를 갖고 투자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도구를 만났을 때 훨씬 더 반가울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강: 기초적이고 원론적인 지점에 집중해야 지금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수단들이나 변화를 오히려 잘 누릴 수 있겠다는 말씀이시죠. 그게 의미와도 연결되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계산을 통해 어떤 멋진 걸 만들어낼 수는 있겠지만 거기에 담는 의미까지 계산해내긴 어려울 테니까요.

신: AI가 됐든 어떤 플랫폼 서비스가 됐든 저절로 만드는 어떤 이미지랑 나의 이미지가 달라야 그게 승부수가 되는 거 아니겠어요? 그런 차원에서 어떤 매력을 내가 가져갈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강: 보는 사람의 관점에서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가능할지, 그게 중요하게 여겨질지 모르겠지만 기술을 통한 작업과 인간의 작업을 구분하는 것이 요구될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인간의 작업에서 가치를 더 느낀다면 흐름이 확 기울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요.

신: 요즘 MZ세대가 선호하는 외모를 반영했다는 가상 모델을 봤는데 예전의 ‘아담’과 느낌이 비슷했어요. 사람이라고 착각할 만큼 기술이 덜 반영되었을 수 있지만 낯선 존재라는, 미지의 인물로 느껴지는 게 컸던 것 같아요. 작업을 하는 것이든 그걸 감상하는 것이든 다 일종의 만남인데, 그걸 기대하는 사람의 마음에 대해서는 기계보다 인간이 잘 이해한다고 생각해요. 작업을 의뢰하면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는 욕구를 가지고 싶은지, 작업을 보면서 감동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같은 것들에 대해 사람들이 상호작용하는 것들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있게 들여다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강: 세상에 수치화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고 생각하면 선생님 말씀이 더 잘 이해되는 것 같아요. 이번에 드림아트랩에서 작업한 경험이 친구들에게 어떤 의미로 남았으면 좋겠다고 기대하세요?

신: 외부의 조언 때문에 고민하던 친구가 자기가 하고 싶은 걸 솔직하게 이야기할 때 바뀐 얼굴이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자기가 가고자 하는 길에 뭔가 조건들이 달리기 시작하면서 아이들이 불투명해지는 순간이 있었는데, 반짝거리는 진심이 순식간에 드러나는 순간이 있었어요. 친구들이 그 순간에 느낀 반응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벗어던지고 나니까 내 손이 풀리는구나,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의식하지 않고 매달렸을 때 내 손에 닿는 것들이 생각보다 많구나 하고 느낀 친구들에게 그 경험이 유쾌한 성공사례로 남았으면 좋겠어요. 코로나도 예상하지 못했던 변수였고 4차 산업혁명을 포함해서 미래에 대한 부담도 커지지만, 어차피 아무도 모르는 거예요. 변수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그 성공 사례를 믿고 거침없이 나아갔으면 좋겠어요. 그래도 아무 문제 없을 거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초반에 뭐 하지 고민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던 초반의 순간들이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는 의미를 꼭 되짚어주고 싶어요. 심심하고 뭘 해야 할지 몰라서 조금 당황스러운 그 순간에 다리를 막 달달 거리면서 ‘그러면 나는 뭐 하지 나 무슨 말을 하고 싶지’ 이런 고민을 하는 순간들이 그렇게 쉽게 오지 않는데, 그 순간을 되게 만끽했으면 좋겠고 그런 시간이 이렇게 영글어서 그냥 하나의 결실을 맺은 시간이었다고 기억해 주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매거진의 이전글 긴 호흡을 기약하며 짓는 하나의 매듭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