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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떼 시민교육팀 Jan 19. 2022

#퍼스널한 #미시적인
#주어_있는 #적정한

융합예술 전문가 인터뷰 - 전수환

전수환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

연세대학교 전산과학과를 졸업하고, KAIST에서 경영정보학 석사학위와 경영공학과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0년대 전통문화예술콘텐츠 인터넷 서비스 '코리아인사이츠'를 기획하고, 난장커뮤니케이션 및 폴리미디어 등의 공연음반 기획사와 기술 융합 문화예술 프로젝트를 협업하였다. KAIST 지식경영연구센터에서 기업 실행공동체 연구를 진행하며 다수 기업을 대상으로 지식경영 컨설팅과 강의를 했으며, 한예종 교수로 임용된 후로는 경영예술, 생활예술, 융합예술 관련 실행연구를 진행했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융합예술센터 아트콜라이더랩 소장을 맡고 있다.





강지웅(이하 ‘강’): ‘융합예술’이라는 용어가 많이 쓰이는데 정확하게 정의하는 것은 어렵게 느껴지는 것 같은데요. 현장에서 여러 사례를 만드시기도 하고 연구해오시면서 융합예술을 어떻게 정의하실지 궁금합니다.

전수환(이하 ‘전’): 융합예술을 바라보는 각자의 관점에 따라 의미도 다르게 정의하는 것 같아요. 저는 지식경영을 전공했기 때문에 노나카 이쿠지로(Ikujiro Nonaka) 교수의 ‘지식창조과정(Knowledge Creating Process)’ 혹은 ‘실행공동체(Community of Practice)’ 관점에서 융합예술을 보는데요. 경영의 관점에서 융합예술은 지식 융합으로 볼 수 있는데, 크게 노나카 교수가 제시한 개인적 차원, 팀 차원, 조직 차원으로 이어지는 존재론적 지식 융합과, 실행공동체(Community of Practice)를 통한 지식 융합의 방식으로 융합예술을 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노나카 교수는 개인이 가지고 있는 지식 중에 겉으로 표출되지 않는 지식을 암묵지(tacit knowledge)와 형식지(explicit knowledge)로 구분했어요. 암묵지는 아직 영감이나 직감, 개인이나 집단의 노하우나 경험 같은 주관적인 지식이고 형식지는 숫자나 텍스트로 표출된 객관적인 지식인데요. 노나카 교수는 암묵지와 형식지의 상호작용을 사회화(Socialization), 표출화(Externalization), 연결화(Combination), 내재화(Internalization), 이렇게 네 인식론적 지식창조과정으로 구분했어요.
 
노나카의 지식창조과정이나 실행공동체의 렌즈를 통해서 융합예술을 살펴보면 융합예술은 정형화된 예술 장르라기보다는 나, 우리, 사회가 연결되어 지식이 생성되는 동적 과정이고, 지식창조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사회적 소통의 마당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융합예술을 위한 지식융합이 활성화 될 수 있는 조건과 환경, 그리고 과정을 어떻게 잘 지원할 수 있을지의 관점에서 융합예술을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강: 지식경영 내에서 암묵지와 형식지에 대해 어떤 가능성과 필요로 이해하고 있을지도 궁금해요.     

전: 현재 경영학에서 지향하는 조직은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고, 혁신을 통해 새로운 역량과 성과를 계속 창출하는 조직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안정적 효율적 조직을 추구하던 경영학의 모습도 분명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회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고 진폭이 커지면서 기업들은 조직이 학습하고 스스로 변화하는 방법에 대한 모색에 점점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봅니다. 기업이 현재 하는 일에서도 성과를 내기만 해서는 부족하고, 앞으로의 미래를 준비하는 데 필요한 지식을 조직 내부와 외부의 네트워크를 통해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러한 변화를 느끼는 것은 개인도 마찬가지지요. 과거에 비해 은퇴 시기가 빨라지게 되었고,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고, 사회변동이 커지면서 직업이 여러 개가 될 수 있으면서 새롭게 필요해진 지식을 학습하게 될 필요가 생겼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공부를 재밌게 했던 기억들이 별로 없어서 끝없이 계속 학습하는 것이 불편하기도 한데요. 그럼에도 어떻게 하면 학습을 재미있게 하고 사회가 새롭게 가는 방향에 필요한 지식을 계속 만들고 활용하는 방법을 함께 고민해야 할 것 같습니다. 
 
1990년대 한국기업에서는 지식경영을 조직 차원의 지식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서 거기에 지식을 쌓으면 유용할 것이라고 접근했어요. 구성원들에게 지식을 꺼내서 조직 데이터베이스에 쌓도록 강제하기도 했는데 그럼 양을 늘어나지만 좋은 지식이 쌓인다고 볼 수는 없죠. 지식의 수는 올라가도 그중에 의미 없는 지식이 많아지는 거예요. 모든 지식은 관계를 타고 흐르는데 조직문화에 상호 신뢰나 호혜성이 갖춰지지 않았다면 좋은 지식을 나누고 싶지 않겠죠. 그렇게 데이터베이스에 지식을 쌓아서 조직의 성과를 내려고 했던 것의 한계를 발견하게 되고, 지식창조 과정이나 실행공동체를 통해 커뮤니티형 조직이나 지식 동아리도 만들고, 외부의 혁신가들을 영입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조직이 새로운 지식을 만드는 여러 방법들을 도입하게 되었습니다. 한국 기업들이 그 한계를 발견하고 조직문화나 생산적 지식 구축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상황에서 제가 실행공동체를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을 쓰게 됐어요. 형식지만의 지식이 아닌 암묵지와 관계를 중심하는 지식경영이 주목받던 시기였다고 기억합니다. 

     

강: 주로 융합은 서로 다른 경계의 연결이나 결합을 이야기하는데, 지식창조 과정은 과정을 주목하게 하는 순환적인 개념으로 다가와서 흥미로워요.

전: 제가 예전에 바로크 연주와 궁중무용 융합공연을 기획한 적이 있어요. 무용원에 있으면서 궁중 무용을 배우게 되었고, 친분이 있던 바로크 연주자 단체의 기획을 돕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생각해보니 바로크 음악도 서양의 궁중음악이었으니까 서로 궁중이라는 공통점이 있잖아요. 그래서 그걸 합쳐보면 어떨까 떠올리게 된 거예요. 이것이 자연스러운 융합이죠. 그렇다면 제가 그런 생각을 어떻게 했을까요? 그 생각을 떠올리기까지의 과정들이 있는 거죠. 제가 가지고 있는 바로크 연주 단체와 궁중 무용가들과의 관계를 바탕으로 제가 바로크 음악 연주를 감상하고, 궁중무용을 배우면서 지식을 내재화하는 학습과 관계의 축적이 이루어진 결과 바로크 음악에 맞춰서 궁중무용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표출하게 되는 거죠. 그런 점에서 우리가 융합이라고 부르는 결과가 있으려면 그 결과에 도달하기까지의 축적과정을 주목해야 하는 거죠.          


강: 융합이 주로 시도하지 않았던 이질적인 방향을 향하면서 새로운 좌표를 찍거나 영역을 확장하는 어감이었는데, 교수님 말씀을 들으니 무작위로 이루어지긴 하지만 설명할 수 있는 연결이라는 어감이 떠오르는데요. 융합이 필요한 시도라는 걸 이해는 하면서도 어떻게 시도할까 했던 막연함에서 실마리를 찾은 느낌이에요.

전: 융합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인 공감대는 상당히 형성된 것 같아요. 사이드 프로젝트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기업에서 근무시간의 일정 비율을 업무가 아닌 일에 사용하도록 하는 경우도 있고요. 지식경영에서는 그걸 ‘마당’이라고 부르는데 다른 경험이나 관계를 만들면서 ‘융합 마당’이 만들어지는 셈이에요. 거기서 다양한 경험, 관계, 정체성 등이 만들어지면 자연스럽게 원래 하던 것을 넘어서는 융합으로 연결되지 않을까요? 그런 점에서 관계나 학습을 통해 암묵지를 축적하고 표출하는 과정은 재미있고 자연스러울 필요가 있겠고요.      



     

강: 지식창조 과정에서 시간과 개별성을 생각해보게 되는데요. 지식이 창조되는 동안 시간이 걸리고, 그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디테일들이 저마다 다르다는 점에서요. 그렇다면 융합에 대해 어떤 범주화된 정의를 하는 것도 무리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전: 다시 저의 예를 들면 요즘 저는 중장년층과 노년에 관심을 두고 제 역량 안에서 새로운 융합 아이디어를 떠올려 보는데요. 이 관심은 ‘노년의 여가시간에 뭘 하면서 지내지’하는 제 안에서 제기된 새로운 필요 때문에 생긴 것이거든요. 저의 맥락이 변하는 가운데 새로운 아이디어로 연결되는 거죠. 장르와 장르가 결합하는 것도 융합이지만 맥락을 달리하는 경우도 있다, 저는 그걸 ‘재맥락화’라고 불러요. 예술에서도 특정 계급과 지역이 향유하던 예술이 맥락을 달리하면서 다른 계층과 지역이 향유하는 사례가 늘 있었어요.      
 
이런 맥락은 퍼스널한 융합과도 연결되는데요. 다른 것과 연결하고 싶은 욕구는 반드시 개인적인 데서 잘 피어날 수 있어요. 봉준호 감독이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고 이야기한 것처럼 자기 안에서 무언가를 더 하고 싶다는 욕구가 있을 때 연결도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거죠.           


강: 확실히 드림아트랩 내에서 이루어진 융합의 주제들이 대부분 거시적인 담론을 다루고 있는데요. 그런 점에서 퍼스널한 융합의 필요성이 좀 더 크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전: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개인도 자기 삶과 환경의 변화 때문에 새로운 문제나 맥락을 맞이하면서 새로운 지식을 필요로 하게 되잖아요. 나이에 따라 필요로 하는 니즈가 달라질 수도 있고요. 그런 배경에서 퍼스널한 융합의 필요성도 생기게 되겠죠. 예를 들어 요리를 스스로 할 필요를 느끼신 노인 남성분이 요리를 배우는 건 작은 융합 프로젝트이겠지만 그 작은 시도들이 거대한 사회 문화 변화를 (지식창조 과정을 통해) 우연히 발생시킬 수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개인에 적합한 나름의 시도가 정말 소중하다고 생각하고, 저는 그걸 ‘미시적 융합’, ‘적정 융합’이라고 표현해보고 싶어요.          


강: 퍼스널한 융합의 다양한 결과가 궁금해지는 한편으로 모아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전: 퍼스널한 융합을 시도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방금 얘기한 요리를 예로 들어서 각자의 필요로 요리를 배우기 시작한 사람들이 많아지면 서로 가르쳐주는 경우가 생기지 않을까요? 그게 암묵적인 맥락을 공유한 사람들이 모여서 지식을 만드는 실행공동체죠. 그런 점에서 공통된 맥락에서 나도 할 수 있겠다,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융합에 대한 니즈를 확인시켜주는 것, 융합에 대한 욕구와 주어를 연결하는 것이 융합을 지원하는 방법의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봐요.       


강: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많은 융합예술 교육에서 어떻게 주어가 있는 융합에 대한 니즈를 심어줄 수 있을까 고민해보게 되는데요. 한예종 융합예술센터를 찾는 학생들은 어떤 욕구들을 가지고 있는 편인가요?

전: 지금 학생들은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잖아요. 기술에 대한 경험이 많죠. 기술을 따로 배워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자기의 확장으로 여기기 때문에 미시적 융합에 대한 관점으로 접근하죠. 그렇게 자기 안의 필요에서 시작해 기술을 연결하는 경험으로 확장하는 거죠. 그러한 학생들의 각자의 ‘내 안의 융합’을 위한 지원을 융합예술센터 아트콜라이더랩이 제공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강: 교수님과 말씀 나누면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융합예술교육은 무엇을 가르쳐줄지보다는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를 더 고민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 청소년 때의 조그만 성공의 경험과 그로 인한 자신감 획득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청소년이 자기의 동기를 가지고 주도적으로 시도하고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는 경험을 축적하도록 하는 거죠. 우리 청소년 시절을 돌아보면 거시적인 주제보다는 작더라도 자신을 위해 무엇을 했던 경험들이 더 중요하게 남아 있지 않나요? 물론 교육을 통해서 사회적 의미를 추구해야 하는 필요성은 있죠. 그래서 의미도 설계하고 재미도 설계하는 이중 설계가 필요한 것 같아요.          


강: ‘0의 모험’에서 융합에 대해 방식이 다양하고 비선형적이고 우연적이라고 말씀해 주신 것이 인상적이었는데, 그에 대해 더 설명해주시겠어요?

전: 네덜란드에서 연구년을 보내면서 짧은 기간이지만 그곳 문화를 관찰하면서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해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는 것을 사회가 함께 노력하고 있다는 걸 느꼈어요. 모든 일에는 우연과 실패가 전제되어 있고요. 호기심에 의해 시도하고, 실패를 기반으로 계속해서 무언가를 남기는 것을 격려하는 문화에서 (다양한) 창조가 이루어질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강: 같은 영상에서 코로나로 인한 변화와 관련 해 시공간의 제약과 기존의 예술공간과 기술의 공존에 대해 해주신 말씀도 인상적이었는데요. 코로나로 인한 변화에 대해 어떤 전망을 해볼 수 있을까요?

전: 제가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데 (코로나 확산 상황에서) 음악을 주로 듣는 장소가 공연장에서 따릉이로 바뀌었어요. 따릉이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클래식 음악을 듣는 게 너무 좋은 거예요. 물론 자전거 안전 운행에 지장 없는 헐거운 헤드폰을 사용합니다. 클래식 전용 앱에서 인공지능이 제가 평소에 안 들어봤던 음악을 추천해주는데, 새로 알게 되는 음악이 있으면 메모해뒀다가 더 찾아 듣기도 하거든요. 그렇게 저의 예술 소비 방식이 달라지기도 하면서 새로운 공간에 만족하고 있어서 나중에 공연장을 다시 찾게 되더라도 이 방식도 유지할 생각이에요. 이런 경험처럼 코로나로 인한 예술창조와 향유 방식의 변화가 어느 한 가지로만 있다기보다는 기존의 것과 새로운 것이 서로 병존하기도 하고 충돌하기도 하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게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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