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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찬인 Feb 11. 2022

봄날은 간다 감상평

흘러가는 것들.잊혀져가는 것들.변하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


벌써 몇 번째 관람인지 모르겠다. 스물 살 때부터 꾸준히 봐온 영화다.

볼 때마다 새로운 이해와 관점이 생기지만, 이번에는 특히 깊은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던 것 같아서 기록을 남긴다.

단순히 은수와 상우의 사랑이야기로만 보면, 놓쳐버리는 많은 것 들이 있다.


감독은 왜 상우의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가 핵심 대사라고 했을까?

상우는 왜 사운드 엔지니어일까?

할머니는 왜 치매에 걸리셨을까?

영화의 메인 악기로는 왜 아코디언이 쓰였을까?

상우의 성장드라마라는 건 무슨 말일까.



영화는 주제는 남녀의 사람보다도 '변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니면 변하지 않는다고 믿고싶을 정도의 순수한' 인물인 상우를 보여준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는 대사를 하는 상우를 보는 은수는, '당연히 사랑은 변하는거야'라고 말하고싶을 정도로 입이 근질근질했겠지만, 정말 진심으로 순수한 상우를 보며 차마 말하지 못한다.

상우는 그런 단순한 사실마저도 알지 못하는 때 없는 사람이었던 것.


하지만 상우는 이별을 겪게되고, 할머니의 장례식을 통해 더욱 성장하게 된다.

조금 더 단단해 졌달까. 몇 년 뒤에, 언젠가 나를 매몰차게 버린 그녀를 다시 만나도, 상우는 적어도 흔들리지 않는 척을 한다.

상우는 이별과 할머니의 장례식을 통해서 정확히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성장했다는 것일까?


그것은 마음이 강해졌다, 성숙해졌다 이런 말들 보다

'사라지는 것들, 없어져야하는 것들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을 배웠다'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할머니는 돌아가시기전 상우에게 이런 말씀을 하신다. '버스하고 여자는 떠나면 잡는 게 아니란다.'

한 평생 사별한 남편만을 기다리며, 치매에 걸려도 그 사실만큼은 놓아주지 못했던 할머니가 자신의 인생을 통틀어 상우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이 아닐까. 

처음에는 할머니가 상우에게 해주는 조언으로만 받아드렸지만, 어쩌면 당신이 스스로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이었다라는 생각이 든다.


풀잎 작은 소리 하나마저도 제대로 담지 못할까 아쉬워 하고, 기억하고 싶어하는 상우에게는 혼자서는 아마도 배우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끝난 것을 끝났다고 놓아주는 것. 지나간 것은 지나갔다고 인정해야한다는 사실을 할머니는 자신의 한 인생을 통해, 상우에게 묵직하게 전해준다.



영화 내부적으로도 재밌는 사실이 있는데, 음향감독인 조성우씨는 메인 음악의 악기를 아코디언으로 정한 것에 대해 이렇게 전한다.


"봄날은 간다의 주된 정서는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그리움'이다. 이런 것들을 음악적으로 표현하려고 했는데, 녹음 소리를 채집한다는 것은, 사라지는 소리를 녹음기 속에 기억하려고 하는게 상우의 직업이고. 점점 기억을 잃어가는 할머니를 상우는 점점 기억을 되찾아주려고 한다. 또 은수와 깊은 사랑을 하려고 하는데, 변하는 은수를 보며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고 대사를 한다. 사랑조차도 변하면 안되는건데, 변해버리잖아. 이런 흘러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주된 정서 였기때문에, 음악적으로 그런 것들을 표현해야 겠다고 생각했었다."


"아코디언을 사용한 이유는 -> 영화의 전채적인 색조를 아코디언이라는 악기가 이미 결정을 했던 것도 있지만, 아코디언이 사라져가는 악기이기도 해서이다. 심성락 연주가라는 우리나라의 독보적인 아코디언 연주가가 한분 계시는데, 조금 감추고 계신 분이라서, 그분이 돌아가시면 그런 연주가 다시는 없을 거다 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근데 봄날은 간다의 정서가 '지나간 것에 대한 추억','기억이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정서가 강하기 때문에, 사라져가는 악기인 아코디언, 사라져가는 음색인 아코디언이 봄날은 간다의 테마곡과 딱 맞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다만 다시 영화 얘기로 돌아가자면, 그래도 사랑 얘기를 빼 놓을 수 없다.


20살엔 너무나도 상우였던 나는, 마치 오버랩 되듯이 떠오르는 기억에 은수를 지독히도 미워했었다.

’왜 저렇게 헌신적인 사람을 차지?’, ‘정말로 사랑해주는데도 왜 좋아할 수 없는거지?’ 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 후에 영화를 다시 보게 된 것은, 23살, 내가 은수가 된 이후였다.

정말로 사랑받는다는 기분을 알게해준 여자친구에게 이별 통보를 한 뒤, 며칠 안돼서 다시 봤던게 이 영화였다. 이전에 내가 했던 질문인 ‘왜 저렇게도 사랑해 주는 사람을 차버릴 수 있는거냐’에 ‘그냥 못 사랑하겠으니까’라고 퉁명스럽게 답변을 하게 되더라.

은수도 이유가 있었겠지, 상우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이 영화에서 말로는 전달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겠지라는 생각이 이따금씩 마음속에 생기더라. 하지만 자기 변호를 하면 할 수록, 내가 지극히도 미워하고 사랑했던 그 사람을 다시 미워할 수 없다는게 참, 모순처럼 다가왔었다.


결국 모든 사람이 결정하는 모든 것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다 라는 것을 깨닫게 된 건 나중이다.

이전에 나에게 은수였던 그 사람도, 후에 상우와는 거리가 멀어진 나도, 상대방을 아프게 하고싶어서가 아니라, 그냥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그 선택을 한 것이라는 것이다.

상대가 사이코패스만 아니라면, 모두 자기가 행복해지고 싶어서 판단한 일이라는 거. 그게 서로에겐 아플지 몰라도, 내가 더 행복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는 거. 그걸 이해하기 까지 참 오래걸렸던 것 같다.


순수히 누군갈 미워하거나 증오할 필요도 없는 것 같다.

다만 연애하는 동안,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 처럼, 또 아플 때는 최선을 다해서 아파하고 미안해하면 될 뿐이라는 생각이든다. 그리고 모든 것은 변하고, 흘러간다는 것만 받아드리면 된다.

어차피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게 은수이고 상우니까.


말마따나 ‘봄날은 간다’이다.

그 ‘봄날’은 사람마다 다를지 몰라도, 적어도 언젠가 ‘간다’는 것은 알아야 한다.



Reference


https://www.youtube.com/watch?v=-Z79yGz5mYY&t=1s

https://www.youtube.com/watch?v=d5DWc2wsP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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