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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필 Jul 08. 2021

지금도 고통 속에 있을 누군가를 생각하며

학교 폭력 피해 대처에 대한 소고


최근 학폭 이슈로 주변이 다시 끓어오르고 있다. 여기에 작은 말 하나를 얹는게 의미가 있을까 싶다. 그래도 고통스러운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할 말이 있다. 이번의 흐름이 그저그런 소란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고통받고 있을 구체적인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학폭 사건을 두고 흔한 반응은 가해자를 묻어버리자. 강한 처벌로 사회에서 배제 시켜서 이런 일을 함부로 저지르지 못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소년법 폐지, 처벌 연령 낮추기, 원아웃 등 강력한 처벌을 외치는 것도 그런 가해자 강력처벌의 레파토리 중 하나이다.  


다 좋다. 강한 처벌이 가져오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폭력이 과연 가해자와 피해자의 1:1의 관계에서만 일어나는 일일까? 그래서 가해자를 날려버리고 묻어버리면 문제가 해결이 될까? 그런 해결이 피해 학생에게 충분한 도움일까?   


나는 학교 폭력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로만 작동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 주변에는 수많은 다른 가담자들, 방관자들,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선생과 학교 시스템이 있다. 1:1 관계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문제이다.   


나는 중학교 시절 심한 학폭의 피해자였다. 당시의 가장 고통스러운 기억은 가해자가 휘두르던 커터칼이나 주먹, 발길질 같은 것만은 아니었다. 애써 나를 무시하던 학교 전체의 분위기, 나의 단점을 들추어 피해자가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내게 전가하던 누군가, 나를 위로하는 척 자신의 착함을 주변에 과시하려 바빴던 누군가, 매 사건마다 땜빵식의 조치만을 하던 학교의 대처. 이런 것들이 나를 저항을 멈추게 하고 의기소침하고 침묵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저항을 멈춘 뒤에는 피냄새를 맡은 하이에나들이 몰려들기 마련이고 폭력은 더 일상적인 것이 된다.  


오마이뉴스 윤일희 기자의 다음과 같은 성찰은 이런 상황에서 중요한 지점을 짚는다.

“폭력이 일어나면 가해와 피해를 쉬쉬하고 가해자와 피해자만이 당사자인 문제로 가져가서는 안 된다. 가해와 피해가 벌어진 공동체의 일원 모두를 당사자로 보고 가해와 피해의 메커니즘을 성찰하지 않는다면, 폭력 피해는 그저 불운한 개인사가 되고 만다. 폭력이 암묵적인 질서로 자리 잡는 것이 가능한 것은, 공동체의 모든 일원이 가해의 조력자일 수 있는 가해와 피해의 중층적 위치성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http://omn.kr/1s5le


그렇다. 피해자의 시점에서 폭력은 한 두 사람이 휘두른 것이 아니라 그 구조 전체가 가담한 행위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대처는 가해자의 폭력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첫째, 그 폭력이 가능했던 프로세스를 낯낯이 밝히고 기록하여 대처방안을 마련하는 것. 둘째, 피해 학생에 대한 구체적인 회복의 프로세스를 만드는 것에 있다고 본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대처를 제안한다.  


1) 가해자와 피해자의 분리  

가장 기본적인 원칙인 가해자와 피해자의 분리가 여기에서도 적용된다. 피해 학생이 심적인 안정이 되찾을 때까지 가해자와 실질적으로 분리가 되어야 한다. 정도에 따라 가해 학생의 경우 전학 조치가 이뤄질 수 있어야 한다. 


2) 피해상황에 대한 종합적인 조사 

피해 상황에 대한 종합적인 조사가 필요하다. 위에서 얘기한 것처럼 학교 폭력은 구조적으로 작동되고 유지된다. 중립적인 위원회에 의해 피해상황에 그 구체적이고 세세한 관계를 밝혀내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3) 처벌과 원칙에 대한 명시적인 공표  

학교의 대처와 절차가 학생과 학부모 모두에게 쉽고 분명한 언어로 공유되어야 한다. 이것이 피해학생, 정의로운 시민으로서 성장해야 할 학생들, 심지어 가해학생 또한 존중하는 행위이다. 그리고 마음 약한 주변 학생들과 부모, 심지어 피해 학생 자신에게 잘못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분명히 하는 행위이다.  


4) 피해학생에 대한 심리적 지원 및 교우관계 개선 지원  

피해학생은 이미 자신의 상황에 깊숙히 묻혀서 자신이 얼마나 힘든 상황에 있는지 조차 모를 가능성이 있다. 그 이야기들을 천천히 끌어내고 회복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또한 피해상황으로 인한 심적인 상태로 다른 친구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 어려움을 겪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친구관계의 개선을 막고 더 고립되는 악순환을 만든다. 이런 부분도 개선하고 어울릴 수 있도록 적절한 상담과 지원을 통해서 관계 회복의 문을 열 수 있어야 한다.  


생각해보면 나는 그래도 운이 좋은 생존자였다. 나는 나의 경험으로 인해 폭력에 대한 민감성을 키울 수 있었다. 장애와 다양한 차별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나름의 방식으로 참여하게 된 것도 이 때의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고, 스스로의 경험을 해석하고 이야기를 써갈 수 있었다. 그렇게 지금은 나의 일부로서 받아들이고 있지만, 역시나 그 때 좀 더 빨리 그 지옥을 나오거나 다른 대처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가끔씩 생각해보곤 한다.  


그러나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순간에도 이렇게 살아가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을지 지겨운 하루 하루를 버티고 다음날 눈뜨고 학교 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을 누군가이다. 이 사람을 돕는 데 소리높여 가해자에 대한 혐오를 발신하는 것만으로는 너무나도 무력하고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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