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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ra Jan 07. 2022

응애인데요, 결혼합니다.

스물아홉 살 '응애'가 어떻게 '으른'같은 결혼을 해요?

 2022년, 스물아홉이 되었다.


 고등학교 시절을 '10년 전'이라고 말하는 것도 낯선데 그마저도 아슬아슬한 나이가 되었다는 게 당황스럽다. 학창 시절부터 함께해온 친구들을 만나면 '우리 아직 응애(아기)인데 왜 회사에 있지?' 하고 한탄한다. 삭막한 사회가 무섭다고 호들갑 떠는 이 사람들은 한의사, 교사, 기자 등 버젓이 한 자리 차지하고 있는 번듯한 n년차 사회인뿐이다. 그들처럼 아침마다 번듯한 갑옷을 챙겨 입고는 카톡에서, 집에서, 글에서는 엄살을 떠는 덜 자란 어른이 결혼을 한단다.
그게 바로 나다.


제가요? 결혼을 한다고요?
전 아직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응애'인데, 어떻게 '으른'같은 결혼을 해요?


 술자리에서의 푸념만 들으면 순 억지로 끌려가는 것 같은 이 결혼, 사실 내가 가장 원했다.

 나는 이른 결혼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이십 대 중반에 결혼한 부모님의 영향이 컸다. 항상 젊고 예쁘며 건강한 나의 부모님. 스물아홉이 된 지금까지 부모님의 정년퇴직 시기나 위태로운 가계 같은 걸 한 번도 걱정해본 적이 없다. 세대 차이를 극심하게 느끼거나 내가 부모님을 보살펴야 하는 새로운 포지션에 고뇌해본 적도 없다. 물론 이 모든 해맑은 회상은 절대 부모님이 젊어서 누렸던 특권이 아니다. 자식의 인생에 부모로서 조금의 풍랑과 시련도 되고 싶지 않았던 마음에서 비롯된 절박한 희생이 만든 행운이었을 뿐. 그러나 그것도 비교적 최근의 깨달음이니, '내가 일찍 결혼하면 부모님이 정년퇴직을 고민할 때쯤이면 내가 이미 자리 잡은 후라 함께 여행도 다니고 더 여유롭고 느긋하게 살 수 있겠구나' 하는 순진한 생각을 한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이토록 머리에 꽃밭이 가득한 내가 스물아홉에 결혼할 것이라는 것은 사실 나도 예측하지 못한 일이다. 내 막연한 생각에 적정한 결혼 시점은 스물 다섯 전후 정도였고, 그 시절에 결혼 생각이 없어졌다거나 아무리 찾아봐도 상대가 없었거나 했던 것도 아니다.

 다만 스물네 살의 나는 생각보다 할 줄 아는 것이 없었다. 재수며 휴학 따위를 하면서 졸업은 아직 한참 남아있었고, 독립할 자신도 없었다. 본가를 3박 4일 이상 떠나 있던 시기라고는 스무 살 때 기숙사 살던 1학기(그마저도 매주 집에 왔다), 캐나다 어학연수 3개월, 유럽여행 3주, 통역으로 브라질에 방문했던 1주 정도가 전부다. 혼자서는 부엌 가스불도 못 켜는 나는, 처음 보는 집에서 혼자 자는 것부터 큰 도전이었다.

 결혼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딱 그 정도였다. 


 스물다섯 살에는 그래도 내가 이른 결혼이 로망이었다는 사실을 다시 상기해낼 정도는 됐다. 신념이 너무 다른 사람과는 결혼까지 가지 못할 테니까 시작도 하지 말자,라고 다짐하면서도 아직 몇 번의 연애가 남아있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스물여섯의 나는 드디어 졸업했다. 사회생활은 내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다. 감정이 널을 뛰고, 콘크리트 숲 속에서 새끼 기린처럼 후들거리며 중심을 잡으려 안간힘을 썼다. 업무도, 연봉도, 인간관계도 내 마음 같지 않았다.

 결혼의 기역자도 나오지 않았다. 배우자와의 미래는 무슨. 나 혼자의 미래조차도 불투명했다.


 그리고 스물일곱의 나는 결혼을 결심했다.
 그저 어느 날, 평소와 다르지 않은 어느 흐린 날에 이 사람과 결혼해야겠다, 했다. 


 스물여덟의 나는 프러포즈를 받았고, 상견례를 했고, 날짜를 잡고, 식장을 잡았다.
 결혼을 결심하기까지는 4년이 걸렸는데, 진행은 3개월도 채 걸리지 않은 것 같다. 일사천리다.


 그리고 갑자기 스물아홉이 됐다. 결혼이 1년도 남지 않았다. 막상 결혼하려니 생각할 게 너무 많았다. 결혼식 하루를 위해서 결정해야 하는 게 얼마나 많은지 알고 있는 미혼 성인이 있을까? 심지어 결혼식 후의 인생은 그보다 더 정교한 결정을 요구한다. 행사는 망쳐도 되지만, 인생은 망칠 수 없으니까.

 만약 나에게 확고한 신념과 분명한 취향이 없다면, 당신이 해야 할 선택의 개수는 한껏 증가한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국적부터 새로이 선택해야 한다. 한국에서만 살라는 법은 없으니까! 그다음엔 지역을, 주거 형태를, 또 그 안의 소분류들을 끊임없이 선택해나가야 한다. 중요한 건, 이 선택의 끝에 마주한 그 선택지는 절대 최종이 아니다. 내가 가진 예산과 확장된 가족들의 의견에 따라 수없이 수정하게 되기 때문이다. 집 하나 고르는데

진짜_진짜 진짜_무조건_이게 마지막_진심_최종. house

같은 의사결정 과정을 겪게 된다. 엄마 아빠가 정한 집으로 몸만 가면 되는 나는 더 이상 없다.


 다행히 이 모든 것을 쉽게 결정했더라도, 그다음 과정은 쉽게 넘어가지 못할지도 모른다. 바로 삶의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다. 무척 거창하게 들리지만, 사실은 그저 '어떻게 생활한 건지'에 대한 문제다. 우리의 생활습관은 어떻게 맞춰나갈 것인지, 생활비는 어떻게 쓰고 저금은 어떻게 할 것인지, 가족들은 어떻게 대할 것인지 같은 당장의 사소하고 거대한 문제를 넘어 10년 뒤, 30년 뒤, 50년 뒤의 계획까지 줄줄이 끌어오게 된다. 혹은 나는 왜 살아가는가, 왜 일을 하는가, 언제 행복하고 불행한가 등을 세상에서 제일 깊게 고민하게 되거나.


 나 혼자만의 인생은 조금 쉬었다 가거나 생각 없이 살아보는 기간을 갖거나 심지어 쓰러져도 든든히 받쳐 줄 부모님이 계셨는데, 독립된 2인 가구가 되려니 더 이상 기대기도 마땅치 않다. 나에게는 최후의 순간에 부모님이 나의 비빌 언덕이 되어주실 거라는 단단한 기대가 있지만 부모님께 내 남편의 비빌 언덕이 되어달라고 말할 수 없고, 내 남편에게 우리 부모님의 자식처럼 살아달라고 말할 수도 없다.

 그러니 나는 앞으로 꾸준히 달려 나갈 50년을 그려야 한다. 고작 스물여덟 해의 지식과 경험으로 앞으로 오십 년의 최선을 그려내야 한다. 그 계획은 늘 변수를 만날 테니 나는 끊임없이 실행과 실패, 수정을 거듭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나에게 결혼은 이런 거라고 말해주지 않았다.

 나 하나 잘하고 배우자를 잘 고른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진 않는다고 말해주지 않았다.

 아무리 완벽하게 준비해도 나는 끊임없이 실패하고 일어서야 한다고 말해주지 않았다.

 심지어 그 하나하나의 과정을 어떻게 겪어냈는지는 알아낼 길이 없다.


 그래서 나는 꾸준히 기록할 생각이다. 내가 '결혼식'이 아닌 진짜 '결혼'을 어떻게 준비하고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 과정에서 이 글을 읽을 다른 사람들과 무수히 많은 의견을 나눌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나의 일기가 가장 개인적이면서 동시에 모두의 기록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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