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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ra Nov 01. 2023

인생에 한 번 뿐인 결혼식인데!

근데 원래 인생은 한 번 밖에 없는거 아닌가요?

지난 글에 내가 '결혼식'이 아닌 진짜 '결혼'을 어떻게 준비하고 어떻게 살아가는지 꾸준히 기록하겠다고 호기롭게 말했지만, 사실 결혼식을 먼저 준비해야하는 건 사실이다.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가장 당황스러웠던 건 내 이름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이다.


사방에서 나를 신부님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결혼과 관련된 장소를 갈 때마다 신부님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100명씩 있다. 나는 이름을 잃어버리고 100명 중 한 명이 되었다.


어찌나 지겹던지. 신부님이라고 외치는 이 분이 정말로 나와 내 결혼에 대한 걸 확실히 기억하고 있는건지, 아니면 일일이 외우기 싫어서 바람피는 모든 상대에게 '자기야'라고 호칭을 통일해버리는 이 시대의 카사노바 같은 존재인지 궁금해졌다. 내가 살아 온 28년 중 가장 거대한 투자를 하는데 그걸 100명이 줄지어 선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하는 기분. 이게 맞나? 이게 결혼인가? 수십번을 뒤돌아보게 되었지만 컨베이어 벨트는 계속 돌아가고 나는 어영부영 전진하고 있었다.


내 이름을 잃어버린 것도 서러운데 장소섭외부터 초대장 제작, 옷 맞춤, 심지어 초대에 이르기까지 내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보통 공주님들은 의견만 내고 일은 담당자가 따로 있는 거 아니었냐고요.

현실은 내가 공주이자 일꾼이자 통장까지 겸해야 했다.

연차를 내고 오만가지 베뉴를 발품팔고 천만가지 드레스샵을 손품팔았다.


남들 결혼식장 갔을 때는 별로 관심도 없던 것들이, 내 결혼식장이 된다고 생각하니 신경쓰이는 게 한두가지가 아니다.


가는 길, 외관, 내관, 식 구성, 담당자, 식사 구성, 식사 퀄리티, 주차, 도보접근방법 등에 포기할 수 있는 항목이 하나도 없는데 예산을 생각하면 눈물을 머금고 하나하나 내려놓아야 한다. 이게 지금 내 로망을 실현하는 과정인지 내 현실을 깨달아가는 과정인지 점점 헷갈린다. 심지어 최소 1년 후의 상황을 미리 고려해서 정해야 하는 것이니 내 직업은 공주, 일꾼, 통장에서 점쟁이까지 늘어난다. 북치고 장구치는 재주가 날로 는다.


그리고 대체 왜 웨딩드레스는 사진을 못 찍게 하는 걸까? 분명 돈은 내가 내고 있는데, 언제나 을은 나다.

그걸 또 당연해하며 손으로 그림을 그리고 기억을 되새기며 안 잊으려고 노력하는 나와 가족들이 안쓰러워진다.


그나마 결혼 준비를 하면서 감사하게 된 2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내가 파워J라 항상 플랜D까지 세우고 여유분을 2배 이상 고려하고 준비하는 성격이라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좋은 플래너를 만났다는 거다.


결혼을 목표로 태어나서부터 신부수업을 하는 시대는 지난 지 오랜데 어떻게 갑자기 눈 앞에 닥친 인생 최대의 행사를 기획할 수 있을 거라 당연하게 믿는걸까? 이 자리를 빌어 나의 플래너에게 닿지 않을 감사 인사를 보낸다. 그녀가 없었더라면 결국 결혼식을 포기하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내가 나의 플래너에게 가장 감사하는 부분은 인생에 한 번 뿐인 결혼식을 그다지 강조하지 않았던 것이다.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수도 없이 듣게 되는 말은 이거다.


인생에 한 번 뿐인 결혼식인데!


이 문장은 온갖 추가금을 불러오는 가히 마법의 문장이다.


물론 추가금은 무조건 나쁜 게 아니고, 또 일가친척과 모든 지인이 모인 감사한 날을 기념하기 위해 무언가를 더하는 것은 그 나름의 의미가 있을 때도 있다.

하지만 잊지 말길. 저 말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시대가 많이 변했다.

결혼식 때 말고는 좋은 옷 한 벌 제대로 갖춰입기 힘들던 시대는 지났다는 뜻이다.


우리는 언제든지 결혼식만큼 좋은 옷과 좋은 장소와 좋은 의미를 가지고 주변 사람에게 대접할 수 있다.


그러니 마법의 문장, 멈춰!

공주이자 일꾼이자 통장이나 점쟁이에게 마법까지 걸어버리면 세상이 너무 고달파진다.

결혼식도 물론 한 번 뿐이지만, 모든 인생은 원래 한 번 뿐 아닌가?


결혼을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에 왜 나는 결혼이 하고 싶은지,

결혼식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에 왜 나는 식이 꼭 하고 싶은지.

의미를 돌아보고 그에 맞는 결혼식을 하는 게 중요한 것 아닐까.


결론적으로 나는 5순위쯤 되는 통창이 아름다운 서울의 한 호텔에서 10월의 신부가 되었다.

결혼식은 결혼식 다워야한다고 믿는 꼰대같은 마음으로 귀여운 퍼포먼스 대신 단아하고 격식있는 결혼식을 테마로 잡았다. 덕분에 결혼식 전날까지 손님들의 자리 명패를 하나하나 오리고 접은 신부의 모습은 조금도 우아하지 않았지만, 당일 모든 손님의 자리에 네임카드와 식순, 축가 가사지까지 놓인 모습은 뿌듯했다.

입장 시 아빠에서 남편으로 옮겨가는 과정이 나한테는 맞지 않다고 생각해 아빠의 에스코트는 하지 않았고,

서로 다른 길을 걸어 이제 함께 한다는 느낌을 부여하고 싶어서 남편과 나는 각자 홀로 버진로드를 걸었다.

그 무거운 드레스를 입고 지미추 구두를 신고 혼자 버진로드를 걷는 건 정말 식은땀이 날 만큼 긴장 됐지만,

막상 걷기 시작하니 나를 360도로 찍어주는 친구들을 보면서 어찌나 귀엽던지, 입장하는 내내 웃음이 나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관계에서는 남편이 공주님 같아 남편의 입장곡은 백설공주 ost로 유명한 Someday my prince will come을 틀었고, 나는 다정한 남편을 꿈꾸며 Jax의 Like my father을 들으며 입장했다.

내 입장곡을 내 첫 직장동료가 축가로 불러주었는데 노래를 들으면 어쩐지 뭉클할거라 생각했지만, 사실 노래보다 내 친구가 날 위해 저 자리에 서 주었다는 사실이 고마워서 눈물이 핑 돌았다. 그녀가 가사지 없이 이 노래를 부르기 위해 얼마나 오래 연습했는지 알아서 더 그랬다.

엄마만 보면 수도꼭지가 되는 나지만 다행히 걱정했던 눈물파티는 일어나지 않았고, 내 예상보다 훨씬 더 그 날 그 장소에 와준 하객들에게 감사하게 되었다. 한 명 한 명의 축하와 마음이 전부 느껴저서, 행복이 이런걸까 생각했다.

남편은 식이 끝난 후 지쳐 쓰러져버렸지만 나는 아드레날린이 솟구쳐 밤늦게까지 잠이 오지 않았다.

그리고 아주 나중에, 결혼식 영상 촬영 편집본에서 둘이서 행복하게 잘 살라며 웃는 시어머니와 달리 울먹거리며 축복해주는 우리 엄마의 영상을 보면서 한참을 울었다.


돈도 품도 엄청 들인 결혼식이었지만,

신부라고 불리는 생활은 이제 지긋지긋하지만,


한 번도 결혼식을 후회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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