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에 쉬어야 하는 데
요즘 남편은 예전처럼 화를 잘 내지 않는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남편을 변화시킨 건 나일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그렇게 믿고 싶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 요즘 나는, 남편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음을 느낀다.
생각해 보면 그건 그가 변한 게 아니라, 그를 바라보는 내 시선이 달라진 탓인지도 모른다. 결국, 남편이 아니라 내가 변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건 곧, 내 신경계가 천천히 회복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감정의 파도가 잔잔하다. 사물을 바라볼 때, 예쁜 것은 전보다 더 예쁘게 보인다. 말하자면 세상은 그대로인데 나의 렌즈가 달라진 것이다.
학교에서 요즘 유독 내 마음에 차지 않는 아이가 있다. 그 아이는 일기 쓰기, 독서록 쓰기, 수학 익힘 과제, 미술 시간 작품 완성도, 급식 시간 편식, 등교하면 꼭 보건실부터 가기 등등 다른 아이들과 다른 점이 참 많다. 게다가 다른 사람이 무심히 던진 말에도 유난히 예민하게 반응한다. 마치 자신이 비난받고 있다고 느끼는 듯, 그 말의 속뜻을 곱씹으며 혼자 깊숙이 상처받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결국 그런 예민함 때문에 친구들과 갈등을 겪는 일도 적지 않았다.
그냥 그 아이의 성격이라고 치부하고 지나치기엔, 요즘 들어 교사로서의 책무성이 마음을 무겁게 한다. 초등학교 5학년쯤 되면, 보통 아이들이 스스로 해낼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솔직히 묻고 싶을 때가 있다. “모두가 할 수 있는 걸 너는 왜 안 하니? 아니면 혹시 못 하는 거니? 내가 도와줄까?” 하지만 그 말을 그대로 내뱉는 순간 그 아이의 마음에는 깊은 상처가 남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같을 수 없다. 들에 핀 꽃들도 각양각색인데 하물며 우리 인간은 말해 무엇하리. 각자의 자리에서 아이는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는 중인데 미리 규정짓는 말을 하면 그것도 아이에겐 가시가 되겠지.
난 착한 선생님이 되고 싶은 게 틀림없다. 뭐, 그래. 그게 나쁜가? 예전엔 이런 생각이 들면 스스로 '아이고, 맙소사! 이 나이에 무슨 인정욕구야.' 하며 괜히 오그라들었지만, 지금은 뭐 그럴 수 있지. '그래, 넌 정말 착한 선생님이야. 인정해.' 하고 자화자찬을 한다.
그래서일까. 글을 쓰다 보니 문득 그 아이가 떠오른 것이다. 자식들도 유독 아픈 손가락이 있듯이.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 중에도 꼭 한 두 명 정도는 마음이 아련해지는 아이가 있다.
이제 5학년 우리 반과 함께할 시간도 두 달 남짓. 여전히 남다른 그 아이에게 앞으로 나는 평가보다 이해와 기다림으로 다가가야지. 조금 더 부드러운 시선으로. 왜냐하면 내 표정이 남편말에 의하면 무서워 보이기 때문이다. 입을 꾹 다물고 단일한 어조로 말할 때마다 남편은 기분이 좋지 않다는 말을 종종 했다. 아이들을 혼내야 하는 경우 내 표정과 말투는 완벽할 정도로 무섭기는 하다. 하지만 그 아이에겐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
휴일에 쉬어야 하는 데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날 칭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