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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난나 Aug 11. 2022

오랜만의 출장, 남겨진 이야기

얼마전 급히 가게 됐던 경주 출장.

나의 임무는 최근 발생한 사고 관련한 본부부서의 형사 고소장 접수  사내변호사로서 경찰서에 동행하여 빠른 수사 촉구  부수적인 절차의 신속한 결정을 요청하는 것이었다(내용을 자세히 밝힐  없는  양해 부탁드립니다..).​


변호사가 간다고 안되는  되게 해주는 것도 아닐텐데 굳이 지방에 동행까지 하여야 하는 점이 못내 내키지 않았지만 나는 회사에 소속된 직원으로서 회사에서 가라고 하면 가야 하니.. ​​


아침 8시까지 서울역에 도착하여 아침거리를 사들고 부랴부랴 열차 승강장을 찾았다 오랜만에 열차를 타봐서 그런지 승강장도 헷갈리고 차량 번호도 안보이는  같고, 여튼 탑승시간 3분여를 남겨두고 겨우 탑승에 성공했다.

경주는 예전에 한번 와본 적이 있었는데 오랜만이었다.

경찰서 가서 고소장만 접수하면 되는 간단한 일이라 생각한 나는 시간이  남으면 경주 찰보리빵이나  사올까 하면서 나름대로의 혼자만의 여행 기분을 즐겼다. ​


그런데 거의 신경주역에 다 도착했을 무렵 들려오는 전화 벨소리.


우리가 고소하려 한 피고소인과 연락이 돼서 오늘 만나기로 하였는데 그 만남에 동행해달라는 본부부서 팀장님의 요청이었다.

그럼 그렇지.

늘 변수는 있었지’


나는 애써 담담한 마음을 가지고 피고소인과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마음을 가다듬었다. ​


팀장님과 함께 만나본 피고소인은 생각보다 어렸고, 전후 사정을 자세히 들어보니 나름대로의 억울한 사정도 있었다. ​


우리는 피고소인을 설득하여 우리가 피해입은 금액을 보전하면  뿐이었기에(당시 생각으로는) 상대방과 최대한 합의를 하기 위해 이야기를 열심히 들었다. ​


이미 상당부분의 금전적 피해 보전이 이루어졌고, 오늘 얘기가  되면 경찰서까지 굳이 가도 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나는 최선을 다해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분들의 요구사항을 최대한 수용해드리기 위해서 무던히도 애를 썼다. ​


그건 아마도 피고소인의 모습에서 세상 물정 모르고 내가  행위가 어떠한 범죄를 구성하는지도  모르는(아니 범죄가 되지 않는다고 믿고 싶은)철부지 어린아이 같은 얼굴과 그럼에도 거대하고 뾰족한 세상 모퉁이에 숱하게 부딪혀 상처입은 자존심을 바짝 세우고 있는 내적 영혼이 느껴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


이번 사건의 잘잘못을 떠나 그에게 어떤 연민 같은 것이 느껴졌기에 나는 진심으로 여기서  종결되어 경찰서에 가지 않기를 바랐다. ​


이야기는 순조롭게 흘러가기도 하고, 상대방의 무리한 요구사항 때문에 지체되기도 하였으나 합리적인 중간 선에서 적절하게 협의를 보기로 하여 협의의 초안? 마련해놓고 동행하신 팀장님께서 상부의 최종 결정권자에게 해당 협의안 초안을 보고 드렸다

당장은 결정이 어렵고 상부에서 회의? 하는 시간이 걸린다고 들었던  같다. ​


 사이 너무 열띠게 이야기를 듣고 협의안을 조율하다 보니 배가 고파졌다. ​


비록 우리는 서로 대립하는 고소인과 피고소인의 입장에 있었으나 협의를 위해 협력하는 관계이기도 하기에 함께 점심을 먹자고 제안하여 점심으로 밀면을 먹게 되었다. ​


오랜만에 먹어보는 밀면은 맛있었고, 분위기도 화기애애하고 좋았다. ​


마치 막냇동생 같은 피고소인과 나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짧은 시간에 친해지는 느낌이었다


여기서 끝낼  있다는 희망감에 잔뜩 부풀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


어쩌면 나중에 이곳에 여행을 와서 이런 인연을 계기로 연락 한번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착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리가 마련한 협의안은 결국 상부에서 최종적으로 거절되었고, 원칙대로 형사절차를 취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화기애애하게 들어와서 전화를 받으러 간 팀장님과 나는 이 이야기를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차라리 점심을 같이 먹지 않고 적대적인 관계에 그대로 있었으면 더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과 후회가 밀려왔다.



세상은 역시 내뜻대로만 되는 건 아니었다.



아니면 너무 동생 같은 상대방에게 주관적으로 감정이 치우쳐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못했던 것일 수도 있다.



회사 경영진은 이번만 이 사건을 협의로 처리했을 경우 유사 사건에서의 향후 선례가 남는 걸 두려워하는 것 같기도 했다.


충분히 회사 입장에서 납득이 될 만한 협의안 거부 결정 이유였다.


반면,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요구사항이 그리 큰 것도 아닌데 단지 개인적인 안심을 위한 것인데 그것도 못해주냐는 불만이 가득했고 그 입장도 이해가 안되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러가지 상황상,

그리고 최종적인 회사의 의사결정권자의 결정 , 팀장님과 나는 경찰서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서에서 고소장 접수 시에 기본적인 법률상담도 함께 진행되고 있는 듯 했다. 경찰 사건이 너무 많아져서 일단 처음에 죄가 되기 어려운 사건을 걸러내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고소장 접수, 그리고 수사관님께 빠른 수사촉구 후 향후 벌어질 일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갔다.


경찰에서 연락이 가고 피의자로 전환된 신분을 가진 그녀는 또 여러가지 변명을 늘어놓겠지만 그 모든 이야기들을 오늘의 나처럼 수사관들이 다 받아줄리는 만무하고.


경찰은 질문하는 것에만 답하라는 소리를 하기도 하겠지.그리고 본인이 행한 일들이 어떠한 죄가 되는지 분명히 인식을 하게 되겠지..


아직 나이가 어린 그녀가 그런 일을 겪고 심적인 고통 속에 허우적댈 걸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러나 한편, 만일 어떤 일을 저질렀고 그것이 법에 의해 죄로 판단된다면 사회적인 합의라는 법에 의해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는 것이 맞다는 생각도 들었다.


연민에 치우쳐 변호사라는 본분을 잠시 제쳐두고 무리한 합의를 이끌어내려 했다는 것이 약간은 민망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소장에 기재된 인적사항에 동생과 같은 피고소인의 생일은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이런저런 감정이 뒤엉켜 마음이 복잡한 나는


집에 돌아오는 열차안에서 다시 한번 생각을 해본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였고


그래도 상대방을 돕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나


단지 정책적인 결정에 의해 모두를 만족시키는 결과에 도달하지 못했을 분이라고.



그리고 이 사건의 이면에는 내가 모르는 다른 사정이 충분히 있을 거라고, 단 몇 시간동안 그를 다 안다고 생각한 내가 자만했던 거라고.


오히려 이 사건을 계기로 그 역시 사건의 객관적인 사정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동력이 생길 수 있기를 바라볼 뿐이라고.

그래도 경주의 하늘은 파랗고 예뻤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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