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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아 Aug 16. 2022

존재로서의 만남.

2022.07.07

"한 주간 어떻게 지냈는지 들려주세요."

선생님은 내가 한 주간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침습적인 사고로 지옥과 같은 한 주를 보낸 나는, 늘 대답하던 대로 잘 지냈다고 대답했다. 선생님은 내 말이 뻔한 거짓말인 것을 다 안다는 듯양 잘 지냈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뭘 하면서 잘 지낸 것이냐고 웃으며 되물으셨다. 선생님의 질문에 빠져나갈 수 없게 되자 사실은 침습적인 사고로 인해 고통스러운 한 주를 보냈다고 대답했다. 선생님은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계시다가 침습적인 사고가 들 때마다 감사한 것을 찾아 카톡을 보내라고 하셨다. 우리의 뇌는 생각보다 단순해서 침습적인 사고가 들어온 순간 뇌를 감사로 전환하면 우울이나 불안의 감정이 사라진다고 한다. 즉 긍정적인 감정과 부정적인 감정이 함께 공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침습적인 사고에 대한 이야기는 일단락이 되었다. 선생님은 또 어떻게 보냈냐고 질문을 했다.


나는 지난 주말 원영(가명)이를 만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원영이는 아동보육시설에 거주하는 학생으로 내가 후원하고 있는 학생이다. 원영이를 만나 한 여름에 뜨거운 국수를 먹은 이야기, 아이스크림 가게에 가서 아이스크림 먹은 이야기, 학교 생활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 등을 신나게 했다. 원영이 이야기를 하니 다시 원영이 생각이 나서 기분이 막 좋아지려는 찰나였다.

"은아씨는 원영이가 왜 좋아요?"

원영이가 좋은 이유를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그냥 원영이가 원영이라서 좋은 건데..... 선생님의 질문에 당황했다. 그래서 나랑 원영이가 닮은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좋다고 했다. 선생님은 원영이와 나의 비슷한 점을 다 찾아보자고 했다. 수줍음이 많은 것, 키가 작은 것, 오밀조밀하게 생긴 것, 화내야 할 때 화내지 못하는 것들이 닮았다고 했다. 서로 닮은 듯 한 두 사람이 5년이란 시간 동안 어떤 관계로 어떻게 지냈는지를 소상히 이야기했다. 원영이는 쉬는 시간마다 우리 교실에 내려와서 나에게 충전을 받고 가는 아이였다. 나도 그런 원영이에게서 충전을 받았었다. 나의 작은 품 안에 쏙 들어오는 원영이가 나는 늘 있는 모습 그대로 좋았다.


그러자 선생님은 원영이가 선생님에게 원하는 역할이 무엇인지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나는 원영이에게 어떤 사람이 되어주고 싶은지 물었다. 원영이는 내가 엄마 역할을 해주기 원할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나는 원영이에게 기댈 수 있는 한 사람이면 좋겠다고 했다. 선생님의 질문을 들으며 어쩌면 내가 어린 시절의 나를 원영이에게 투영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영이를 원영이 존재 자체로 만나지 않고, 어린 시절의 은아로써 말이다. 선생님은 나의 알아차림을 눈치챈 듯, 내 안에 꼬여있는 문제들이 다 해결되어야 원영이를 존재 자체로 만날 수 있다고 이야기하셨다. 나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두어 번 끄덕였다. 

순간 원영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당분간 원영이를 만나면 안 되는 걸까 하는 생각도 스쳐 지나갔다. 어쨌거나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를 존재 자체로 만나려거든, 내 안에 있는 문제들이 해결되어야 한다는 것. 나는 더디더래도 그 실마리를 찾아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나아가고 있다는 것. 가끔 뒤로 가는 날이 있더라도 몸의 방향만큼은 앞을 보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기를. 그래서 한 주간도 잘 버텨내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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