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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아 Sep 22. 2022

불안의 이득.

2022.09.15

지난 시간에 이어서 '불안'을 화두로 선생님과 대화를 이어갔다. 내가 느끼는 불안이라는 감정을 어떻게 말로 설명해야 할지 어려워하자 선생님은 나를 대신해 내 마음을 읽어주셨다.

"은아씨, 이런 생각 해본 적 있어요? 불안한 일이 있을 때는 불안한 일이 있으니까 불안하고, 불안한 일이 없을 때는 불안한 일이 일어날까 봐 불안하다는 생각..."

"네! 있어요. 딱 그거예요."


그렇다. 언제부턴가 인식되기 시작한 불안은 껌딱지처럼 내 삶에 붙어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고 불안한 일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늘 따라다녔다. 그래서 나는 삶이 고단하다고 느꼈고, 실제로 고단했다. 강의 의뢰라도 들어오면 불안한 마음에 만든 ppt를 점검하고 또 점검한다. 같은 주제로 10번을 넘게 한 강의인데도 단 한 강의도 똑같은  ppt로 강의한 적이 없다. 하루의 시간을 통제하지 못할까 봐 불안한 마음에 타임 테이블을 작성해서 체크해 가는 방식으로 하루를 살아낸다. 오늘 직장에서 있었던 일을 나중에 기억하지 못할까 봐 불안한 마음에 블로그에 차곡차곡 기록한다. 선생님은 나의 이야기를 듣더니 이런 말씀을 하셨다.


"은아씨가 불안하기 때문에 이룰 수 있었던 것이 생각보다 많았네요? 미래가 불안해서 열심히 공부해서 교사가 되었고, 불안해서 기록해 둔 기록들이 책이 되었고, 망칠까 봐 불안한 마음에 철저히 준비해서 좋은 강의를 했네요? 불안이라는 감정이 은아씨를 괴롭게만 한 것이 아니라 이득을 가져다준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이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 나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나는 불안의 얼굴이 악마의 얼굴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불안의 또 다른 얼굴이 천사의 얼굴을 하고 있을 줄은 생각지 못했던 사실이다. 머리를 한 대 얻어맞아 멍해져 있는 나에게 선생님은 삶을 볼 때 '전체성'을 가지고 봤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삶의 일부분만 떼어놓고 보면 불안하고, 두렵고, 모든 것이 그림자 같지만, 삶을 전체적으로 보면 불안함 속에 안정감이 있고, 두려움 속에 용기가 있고, 그림자를 있게 하는 빛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선생님은 나에게 '긍정적인 자원'이 많은 사람이라고 했다. 불안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것에 끝나지 않고, 그 감정을 행동으로 실천해 많은 성과를 이루어 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제발 삶을 전체성을 가지고 보라고 여러 차례 나에게 당부의 말을 전해왔다.


상담을 다녀온 나는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밤잠을 설쳐가며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불안이 가져다준 이득들조차 불안하게 느껴졌다. 어디선가 작은 나비 날갯짓만 한 바람이 불어오면 '이득'이라고 할만한 내가 쌓아 올린 모든 것들이 무너져 내릴까 봐 불안했기 때문이다. 존재를 인정받으려고,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불안이라는 감정을 앞세워 아등바등 살아왔다. 어느 누구도 나에게 열심히 살라고 강요한 적 없지만,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불안을 연료로 끊임없이 달렸다. 불안한 운전대를 잡고 달리는 내가 힘들다, 지친다는 말을 넘어 얼마나 비루하게 느껴지는지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웠다. 아슬아슬하게 느껴졌다. 그러자 열심히 살고 있는 날들에 대한 억울함이 물밀듯 몰려왔다. 그래서 선생님께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다. 혼란스럽다고. 삶을 전체성을 가지고 보기가 아직은 힘들다고. 억울하다고.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내 안에 올라오고 있는 불안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그리고 빌어본다. 뿌리 깊은 불안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완벽한 하루는 애초에 꿈꾸지 않으나, 불안으로부터 조금은 떨어져 나와 온전한 하루이고 싶다고. 불안이 가져다주는 악마의 얼굴만 볼 것이 아니라, 천사의 얼굴도 함께 보면서 그렇게 조금은 안온한 날이 되고 싶다고. 빌고 또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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