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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니나 Mar 25. 2022

책상을 박차고 일어난 아이

2022.3.25.


안 그런 교사가 어디 있겠냐마는, 나는 나의 아이들을 정말 많이 사랑한다. 돌발적이고 거친 행동들이 많이 목격되는 남중에서는 아이들을 무섭게 잡아야 한다는 통념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의 아이들이 지시와 통제에 길들여지지 않길 바랐다. 그래서 다함께 수업 규칙을 만들고, 규칙을 지키지 않을 경우 어떻게 할지까지 구체적으로 정해놓았다. 수업 분위기를 흐리거나 다른 친구들한테 방해가 되는 친구가 있으면 감정적으로 화를 내기보다는 규칙에 의거해 조치를 취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한 달 동안 수업을 해보니 수업 규칙이 없었을 때보다 훨씬 나았다. 아이들이 스스로를 절제하는 게 느껴졌다.


어느 반이든 마찬가지지만, 각 반에는 유달리 튀는 아이들이 있다. 오늘 들어간 학급에는 <욕하지 않기>라는 규칙이 있었는데, 지난 시간에 학생 A가 수업 시간에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장난을 쳤었다. 해당 학생이 규칙을 어겼다는 지적이 들어왔고, 나는 이 문제를 다같이 얘기해 보고자 말을 꺼냈다. 그런데 A가 끝끝내 규칙을 어기지 않았다며 반발을 했다. 욕을 하려는 의도 없이 손가락을 들어올렸다고 항변했지만 전후 맥락상 그렇게 보이지는 않았다.


상황을 정리하고 수업을 시작했다.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자신의 의견을 발표하는 시간에 A가 크게 웃으며 장난치는 소리가 들렸다. A를 지적하자, 그는 또 다시 억울하다고 항변했다. 발표하는 학생에게 장난친 것도 아닌데 왜 자기만 지적하냐는 것이다. 거칠고 반항적인 어조로 대꾸하는 학생의 태도에 화가 났지만, 감정을 절제하고 학생이 한 행동이 잘못되었음을 단호히 일렀다. "너는 수업 분위기를 방해했다는 점에서 규칙을 어겼어. 다른 친구들에게 피해를 준 거고." 예기치 않게 실랑이를 벌이던 중, 돌연 A가 가지고 있던 학습지를 거칠게 구겨 땅바닥에 던지더니 가방을 메고 집에 가겠다고 나섰다. "왜 자꾸 저만 갈구냐고요. 씨X.." 학생이 감정적으로 격앙돼 있는 상태에서는 지도의 효력이 미치지 않으므로, 나는 그를 진정시키고 자리에 앉게 했다. "네 감정을 가라앉히고 잠시 뒤에 이야기하자." 그리고는 맥없이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수업을 지체시킨 점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장난치고 있는 걸 무시하고 수업을 계속 이어갈 수도 있었지만, 혹여나 이로 인해 피해를 입는 학생들이 생길까 우려스러워 지적하였습니다."


학년에서 무섭기로 소문난 담임선생님께 알리자고 말하는 아이가 있었지만 나는 다만 이렇게 말했다. "일단은 말씀드리지 않고 지켜보겠습니다. 선생님 마음대로 할 생각이었으면 애초에 수업 규칙 자체를 만들지 않았겠죠? 우리 수업에서 일어나는 일은 우리 수업 속에서 해결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규칙을 만든 것입니다."


아이가 창문을 바라보며 감정을 삭히도록 내버려두고 다른 아이들과 평소 하던 것처럼 웃으며 수업을 이어갔다. 나 역시 감정이 상했던 터라 밝은 모습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다른 아이들을 위해 그렇게 했다. 수업을 5분 정도 일찍 마치고 A에게 대화를 청했고, 그는 순순히 응했다. 우리는 복도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선생님이 아까 큰소리로 지적하고 너만 '갈군다'고 생각해서 기분 나빴지? 억울한 점이 있었다면 미안해." A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다른 아이들도 장난을 쳤는데 선생님이 저한테만 뭐라고 하셨어요." "선생님은 한 명이고 너희는 여러 명이잖아? 선생님 눈에는 아무래도 크게 웃고 장난치는 학생이 눈에 띌 수밖에 없어. 아까도 선생님이 돌아보는데 딱 네가 장난치는 게 눈에 띄어서 지적한 거야. 네가 싫어서 너한테만 뭐라 했던 게 아냐. 다른 친구들은 혼내지 않고 너만 지적한 건 미안해. 하지만 샘은 네가 수업 시간에 하는 행동들에 대해 돌아봤으면 좋겠고, 다른 친구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새 유순한 상태를 되찾은 아이는 순순히 내 말에 동의했고 앞으로 조용히 있겠다고 했다. "선생님은 네가 조용히 있길 원하는 게 아니야. 하고싶은 말이 있으면 표현해도 돼. 하지만 그 표현이 다른 친구들에게 피해만 안 됐으면 좋겠다는 거지."


눈물을 글썽이는 아이의 어깨를 두들기며 교실로 들여보냈다. 이제부터 아이에게 더 잘해줄 것이다. 보통 아이들은, 자신이 큰 잘못을 한 이후거나 크게 혼나는 일을 겪고 나면 선생님이 자기를 싫어할 거라는 부정적인 기대를 품게 되는데, 자신의 예상을 깨고 선생님이 따뜻하게 대해주면 놀라는 경우가 많다. 너가 어떤 모습이든, 설령 잘못된 모습을 보일지라도 선생님은 늘 너에 대한 기대를 놓지 않을 것이다, 너를 아끼고 사랑할 것이다, 라는 마음을 전해받고 나면 문제 행동을 절제하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


아이와의 갈등을 겪고 심란한 마음이 들었지만, 분명 이 사건으로 인해 배우게 된 점이 있을 것이다. 규칙을 만들어 평화로운 수업 분위기를 형성하자고 했으면서, 내가 되레 고압적인 분위기를 형성해 아이의 반발을 부추겼는지도 모른다. 마지막 교시라 피곤하기도 했고, 금요일 마지막 시간이라는 해방감에 아이들이 평소보다 더 들떠 있었기 때문에 통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괴상한 비명소리가 난무하고 교실과 복도를 운동장처럼 뛰어다녔다.) 어느 정도 압력을 가해야 한다는 생각에 평소보다 더 고압적으로 나온 건 사실이었다.


친절하지만 단호한 교사가 되기 위해선 겪어야 할 경험, 일궈야 할 배움이 많겠지. 마음에 걸리는 일이 생겨도 훌훌 털어버리자. 무언가를 내게 가르치기 위해 세상이 제공한 에피소드일지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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