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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니나 Aug 28. 2022

이탈리아인들과의 만남


이탈리아 남단 시칠리아섬의 미스터비안코(Misterbianco)에 머무르며 현지인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만 12세에서 14세 사이의 이탈리아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여름 캠프는 미스터비안코Misterbianco에 위치한 스테파니아의 집과 널찍한 정원에서 진행되며, 미술, 연극, 난타 등 몸을 활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프로그램들로 구성되었다. 캠프 주최자인 스테파니아와 아만뿐만 아니라 나를 포함한 외국인 스텝들이 캠프 전 과정을 함께하고,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 때에 맞춰 합류할 예정이었다. 나는 캠프가 시작되기 약 일주일 전에 도착했기에 도매 완구상으로 필요한 물품들을 사러 가거나 아이들이 입게 될 단체 티셔츠를 맞추러 가는 등 시시콜콜한 준비 과정을 함께 했다. 스테파니아는 내게 별채 전체를 편히 쓰도록 내어주고, 끼니마다 맛 좋은 이탈리아 음식들을 그득히 차려주었다.     



스테파니아의 집에 머무는 동안 지냈던 별채. 널찍한 데다 잘 꾸며져 있어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캠프가 시작되기 전 며칠 간은 고민의 연속이었다. 스테파니아는 내게 캠프 중 하루는 ‘코리안 데이(Korean Day)’, 즉 한국 문화의 날로 정해 한식으로 차린 저녁을 먹고 한국 놀이와 춤을 배우는 프로그램을 구성해 달라고 부탁했다. 코리안 데이뿐 아니라 아침마다 진행할 아이들의 기상 운동 역시 준비해야 했다. 고심 끝에 어릴 적 배웠던 태권도 수업을 준비해 보기로 했다. 기상 운동이니만큼 간단한 몸풀기로 시작한 후 태권도의 기본 동작 위주로 시범을 보이면 될 것이었다. 한국 음식은 채식 김밥으로 정했다. 마침 늘 가지고 다녔던 김밥 발도 있으니, 큰 어려움 없이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캠프 규정상 모든 식사는 채식으로 이루어져야 했기에 불고기와 같이 육류로 된 한식은 준비할 수 없었다.      



캠프 전체 일정, 내가 진행할 활동들을 구상한 메모



고민을 거듭할수록 프로그램의 얼개가 짜였다. 먼저 한국어로 된 인사 표현('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을 배운 뒤, 각자의 이탈리아 이름을 한글로 써보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할 한국 놀이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로 정했다. 아이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고전적인 놀이 방식이기에 복잡한 소통 없이도 손쉽게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놀이를 끝낸 뒤에는 원더걸스의 ‘like this’ 댄스를 배우는 시간을 계획했다. 동작이 시원시원하고 어렵지 않아 춤에 소질이 없는 사람이라도 재미있게 받아들일 수 있을 터였다. 평소 춤을 추는 데에는 재능이 없어 되는대로 음악에 몸을 맡기는 유형이지만, 한국 춤을 가르쳐야 하는 유일한 한국인으로 와있는 이상 다른 여지가 없었기에 가볍고 재미난 동작들로 구성된 노래를 선택했다.      


어느 정도 청사진을 그리고 난 뒤에는 본격적으로 준비에 돌입했다. 스테파니아의 뜰에는 내가 지내는 별채 이외에도 또 하나의 작은 부속 건물이 있었는데, 그 안에 사면이 거울로 된 큰 방이 있었다. 이곳에서 시간이 날 때마다 태권도며 춤을 연습했다.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해야 한다는 부담은 있었지만, 새로운 도전 과제를 완수하게 되리라는 기분 좋은 흥분이 몸을 감쌌다. 낯선 외국에서, 이탈리아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국 문화에 관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다니!      


스테파니아가 일터로 나간 오전 시간에는 리쉬와 미라를 깨워 간단히 아침을 차려 먹고 한데 모여 시간을 보냈다. 리쉬에게 피아노를 가르쳐 주거나 때로는 직접 연주하면서, 또 미라가 치는 서투르지만 아름다운 기타 선율을 듣고 있으면 금방 시간이 지나갔다. 호기심이 많고 늘 배우는데 열심인 리쉬와 미라는 내게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많이 해 주었다. 한번은 미라가 나폴리Napoli로 소풍 갔을 때 처음 알게 된 사실에 대해 말해 주기도 했다.     


“마가리타 피자 있죠, 왜 이름이 ‘마가리타’인지 알아요? 마가리타는 이탈리아 요리사들이 처음으로 피자를 만들어 바친 여왕의 이름이에요. 항상 비슷한 음식들에 질린 여왕이 새로운 스타일의 음식을 요구했고, 이에 고민하던 요리사들이 고안해낸 게 마가리타 피자래요. 나폴리에 갔다가 알게 되었어요.”



왼쪽부터 미라, 아우로라, 리쉬, 다비데 그리고 나



한편, 미라와 리쉬는 캠프가 시작되기 전 내게 카타니아Catania 시내를 구경시켜 준다며 친구들을 불러 모으기 시작했다. 아이들과 함께 나선 시가지의 중심에는 로마 시대에 지어졌다던 오래된 유적이 있었다. 완전한 형체를 파악하긴 어려웠지만, 라틴어로 보이는 알파벳들이 아직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 고대 유적에 정신이 팔린 사이, 미라와 리쉬의 친구들인 아우로라와 다비데가 유쾌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네 명의 아이들이 시내 가이드를 자청한 덕분에 지도 없이도 카타니아 곳곳을 활보할 수 있었다. 시칠리아섬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답게 볼거리가 많았으나, 나는 카타니아를 관광하는 것보다도 네 명의 아이들과 함께 다니는 것 자체가 즐거웠기에 어디를 가든 상관이 없었다. 귀여운 아이들은 내게 카타니아를 소개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학교에서 라틴어를 배운다는 아우로라는 옛 극장 유적에 적힌 문구를 해석할 수 있었고, 아이들이 ‘크레이지 보이’라고 부르는 다비데는 비록 영어는 잘하지 못했으나 다정하고 활발했다. 그는 틈만 나면 시칠리아 특산 말고기를 꼭 먹어봐야 한다며 채근해 왔다.     


“말고기 먹어 봤어요? 시칠리아에서는 말고기를 꼭 먹어봐야 해요!”     



아이들과 구석구석 걸어다니며 구경한 카타니아 시내



외출이 마무리될 즈음, 아우로라네에서 저녁을 함께 들자는 초대를 받았다. 아우로라의 어머니 파트리샤는 파스타와 각종 샐러드를 푸짐하게 차려주셨다. 평소 이탈리아 음식, 특히 파스타를 좋아해서인지 이탈리아에 있다는 사실이 즐겁기만 했다. 


한편 한쪽 구석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논의하고 있던 청년을 새로 알게 되었다. 콧수염을 길게 길러 멋을 냈으나, 앳되고 뽀얀 피부를 지닌 탓인지 나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 나른한 눈빛을 반짝이던 청년의 이름은 프란체스코로, 젊은 예술가로서 왕성하게 활동하던 중 아이들을 위한 여름 캠프에 합류하게 된 비범한 인물이었다. 자못 진지한 표정을 지어 보이던 그는 우리에게 본인의 작업실을 기꺼이 공개했다. 프란체스코의 침실은 마치 전시회장과 같은 인상을 풍겼는데, 방 전체를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탈바꿈해 놓은 느낌이었다. 프란체스코는 멍하니 서서 방의 풍경이며 벽에 걸린 그림들을 구경하고 있는 내게 ‘더 수월히 보라’며 핸드폰 조명을 밝혀주는 한편, 스테파니아와 함께 캠프에서 진행할 예술 프로그램을 논의했다. 캠프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젊은 화가 프란체스코의 비범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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