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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니나 Aug 11. 2022

시칠리아에서 온 메시지


독일 뮌헨München에서 이탈리아 시칠리아섬의 카타니아Catania로 이동하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여느 때처럼 내게 버거워 보이는 크기―내 몸의 절반도 훌쩍 넘어 보이는―의 배낭을 짊어진  공항 출구로 나가니 환한 인상의 스테파니아가  이름이 적힌 종이를   손을 흔들고 있었다. 까만 곱슬머리에 반짝이는 눈빛을 가진 그녀는 마치 진작부터 알았던 사람을 맞이하는 듯한 표정으로 인사를 건네왔다. 맑은 미소를 짓고 있는 스테파니아를 보자마자 전날 밤을 지새우며 공항에서 했던 걱정들이 사그라들었다.   

   

스테파니아와의 인연은 워크어웨이Workaway 웹사이트에서 시작되었다. 호스트에게 일정량의 노동을 제공하는 대신 무료로 숙식의 혜택을 누리는 워크어웨이식 여행은, 적은 돈으로 여행할 작정이었던 내게 최적의 방식으로 여겨졌다. 나의 관심 분야와 전공, 경력, 여행 예정 국가들이 담긴 소개 글을 올린 뒤 얼마 되지 않아, 한 통의 이메일을 받게 되었다.      





《 안녕하세요, 사이트에 올리신 소개 글을 읽었는데, 당신이 7월에 열리는 우리의 청소년 캠프와 함께하기에 완벽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에 대한 글을 읽어보시고, 이 프로젝트에 관심이 있다면 메시지를 보내주세요! 》     


이탈리아 남단 시칠리아Sicilia 섬에서 온 메시지였다. 그들이 준비하고 있는 청소년 캠프는 무척 흥미로웠다. ‘Garden & Love’라는 비영리단체를 운영하는 스테파니아와 아만 부부는 섬이라는 특성상 배움을 위한 인프라가 결핍된 이 지역의 청소년들을 위해 여름 캠프를 기획했고,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자란 두세 명의 외국인 청년을 스텝으로 초청하고자 했다. 애초 시칠리아섬에 가는 건 전혀 계획하지 않고 있었으나, 왠지 모르게 캠프에 합류하고 싶다는 열망이 강하게 불타올랐다. 바로 승낙의 메시지를 보내고선 스카이프를 통해 화상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이후 캠프 시작일과 나의 여행 일정, 항공권 등을 조율해 시칠리아에 도착할 날과 시간을 정했고, 예정된 날에 실제 만남이 성사되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산은 에트나Etna에요.”     


운전에 몰두하던 스테파니아가 힐끗 창밖을 내다보며 말을 건넸다. 그녀는 이 산이 유럽에서 가장 높은 화산이자 세계에서 가장 활발한 활화산 중 하나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과연 산꼭대기에서 뿌연 김이 일고 있는 것이, 활화산의 위용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듯했다.



에트나 산. 나중에 스테파니아 가족과 함께 방문하게 된다.



스테파니아의 집에 도착하니 그녀의 남편이자 인도 사람인 아만이 반갑게 맞이해 주며 인도식 차와 시칠리아의 특산 과자를 내어주었다. 생강 향이 강하게 나는 인도식 짜이티는 그 맛이 무척 생소했으나, 몸의 긴장을 푸는 데는 도움이 되었다. 스테파니아와 아만의 자녀인 리쉬, 미라와도 인사를 나누었다. 이들은 스테파니아 부부가 개최하는 여름 캠프에 참여하는 청소년의 일원이기도 했다.     


차를 다 마신 뒤 뻘쭘하게 앉아있던 것도 잠시, 용기를 내 리쉬 근처로 갔다. 아무렇게나 뻗친 숱 많은 곱슬머리며 짙은 눈썹이 돋보이는 소년의 얼굴에는 주근깨가 잔뜩 박혀 있었다. 스테파니아의 집에 머무는 동안 자주 마주치게 될 친구였기에 얼른 친해지고 싶었다. 그러나 이탈리아 발음이 익숙지 않은 내겐 리쉬의 이름을 제대로 부르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이름을 발음하는 방법부터 시작해 나이며 취미 등 기본적인 정보들을 나누고 있는데, 스테파니아가 말을 걸었다.     


“막 바다로 놀러 갈 참이었는데, 같이 갈래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간밤에 공항 바닥에서 아무렇게나 잠을 자서인지 피로가 채 풀리지 않은 상태였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바다를 오가는 자동차 속에서 미라로부터 이탈리아어로 숫자를 말하는 법을 배우고, 그 대신 프랑스어로 숫자를 말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리쉬와 미라 둘 다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데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아치 트레차Aci Trezza의 바다였는데, 물속에 있는 바위들이 모조리 비쳐 보일 정도로 맑았다. 바다 곳곳에는 주먹도끼 모양을 한 돌들이 솟아있었다. 리쉬가 바다에 얽힌 전설을 말해 주었다.  

   

“키클롭스 알죠? 외눈박이 괴물. 신화에 따르면, 오디세우스가 키클롭스에게 술을 먹여 눈을 찔렀을 때 고통에 몸부림치던 괴물이 돌을 던졌고, 그 돌들이 이곳 아치 트레차의 바다에 박혔다고 해요.”     


이탈리아는 그리스와 함께 고대 그리스·로마 신화의 주된 배경이 되는 곳으로, 스테파니아의 집으로 가는 도중에 창문 너머로 보았던 에트나산 역시 그리스 신화에서 대장장이 신의 작업 공간으로 묘사된다. 섬 곳곳에 신화가 펼쳐져 있었다.



스테파니아 가족과 함께 갔던 아치 트레차(Aci Trezza)의 바다. 맑고 시원한 물에서 수영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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