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오셨어요?”
“커피나 한 잔 줘 봐.”
“어머님은 왜 나만 보면 커피를 달라 그래?”
“그럼 다 늙은 내가 타주랴. 야박한 년, 고깟 커피 한 잔 주면서 위세는….”
수봉할매는 토라진 척 나를 향해 눈을 한 번 흘겨주고서 건네받은 커피를 홀짝이며 바삐 오가는 사람들을 향해 시선을 돌린다. 친정엄마와 비슷한 연배여서 할머니나 아주머니가 아닌 어머님이라고는 부르긴 하지만 엄마를 대하듯 존댓말과 반말을 반반씩 섞어 말하는, 버릇없는 나를 딸처럼 귀여워하는 수봉할매. 가게에 오픈 첫 날부터 오며가며 들러 이것저것 참견하더니 한 달이 넘은 지금은 참견을 넘어서 동네에 떠도는 오만 일까지 들려주는 이른바 소식통 욕쟁이할매다.
“신세 좋은 년도 많고, 나처럼 신세 조진 년도 많고.”
“무슨 말이야, 어머님?”
“보이냐. 저어기 앞에 뾰족구두 신고 또각또각 소리 내며 걸어가는 년 말이야. 저년은 저 위쪽 아파트 근처에 칠십 평이 넘는 건물을 가졌지. 나이가 나랑 비슷해. 여든을 바라보는데 아직까지도 저 얼굴 팽팽한 거 봐라. 더구나 서방까지 멀쩡히 살아있어서 볼 때마다 배알이 꼴리는 년이야. 가진 게 많으면 자식이라도 속을 썩여야 이치에 맞는데 자식놈이 의사라던가. 나는 뒤로 넘어지면 코가 깨지는데 저년이 뒤로 넘어갈라 치면 아마도 그 말짱한 서방놈이 냉큼 와서 받쳐 줄 거다. 저년 얼굴에 곰보라도 하나 있으면 좋으련만. 에라이 써글놈의 세상.”
“어머님 샘나는구나?”
“흥, 그래도 내가 저년 보다는 낫다.”
“누구?”
“저기 저 허리가 바짝 굽어서 코가 땅에 닿게 생긴 년 말이야.”
“박스할매?”
“그래, 박스 줍는 년. 나보다 한참 어린년이 어찌 저리 허리가 굽었나 몰라. 저년은 저 시장입구에서 오른쪽 골목으로 쭈욱 들어가면 맨 끝집, 그 집 반지하 단칸방에서 혼자 살아. 서방도 자식도 없이.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는지 아무도 곁을 안 줘. 나랑 알고 지낸 지가 벌써 사십 년이 훌쩍 넘었는데도 속을 요만큼도 안 보인다. 하루 내내 저리 박스를 주우면 삼천 원을 번다던가, 사천 원을 번다던가. 아무튼 불쌍한 년이야. 그러니까 빈 박스 생기면 저년한테 몰아줘. 딴 년 주지 말고.”
“응. 그런데 오늘은 다른 할매가 다 주워갔고 내일부터는 그럴게. 그건 그렇고 어머님, 어머님은 애들 몇 두셨어?”
“딱 이뿌게 뒀지, 셋. 아들 둘에 딸 하나.”
“근데 왜 한 번도 안 와?”
“너는 자주 가냐? 못된 년. 내 새끼들은 먹고 사느라 바빠 못 온다, 이년아.”
“나는 저번 주에 김장하러 가서 엄마 보고 왔지. 어머님은 김장하러 애들 안 와?”
“굳이 애들이 올 필요도 없어. 나는 귀한 몸이라 나라에서 김장까지 담가주니까.”
“오오, 대단한 양반이네?”
“흥, 그 대단한 양반은 이제 시장에나 가봐야겠다.”
“만날 시장에 출근도장을 찍네, 찍어. 솔직히 말해 봐. 어머님, 거기에 괜찮은 할배 하나 점찍어 놨지?”
“지랄하네. 나는 눈이 눈썹 위에 달린 사람이야. 어디다가 할배를 대, 다 늙은 쭈그렁방탱이를. 내 서방이 그리 일찍 세상 떴어도 팔십 평생 한눈 한 번 안 판 사람이야. 이런 내가 아무한테나 눈길 한 번 나눠줄 거 같으냐?”
“그럼 뭐 하러 가는데?”
“시장을 쭈욱 가다 보면 정육점하고 닭집 사이에 잡다한 거 놓고 파는 노인네 하나 있지.”
“응, 깐 마늘이랑 쪽파 쬐끔씩 놓고 파는 데?”
“그래. 그 노인네가 아흔이 넘었어. 그런데도 마늘 까고 쪽파 다듬어서 매일같이 나온다. 괴팍한 노인네 같으니. 하루는 이러저러 얘기를 나누다가 돈 벌어서 어디다 쓰냐고 슬쩍 물으니 알아서 뭐할 거냐고 통박을 주더라니까. 내참 더러워서 안 가고 싶은데 내가 안 가면 그 노인네 혼자 얼마나 심심할 거야. 나라도 가서 말동무도 해주고 파도 같이 다듬어주면 좋잖아. 내 짐작인데 아마 그렇게 번 돈 한 푼도 그 노인네 입으로 들어가는 건 없을걸. 죄다 새끼들 입으로 들여보내지.”
“어머님이 어찌 알아. 그 할매 혼자 맛난 거 사 드실지.”
“또 지랄하네. 너도 돈 벌어 네 새끼 먹이고 입히고 할 거 아냐.”
“아닌데, 나는 맛난 거 사서 내가 다 먹을 건데?”
“퍽이나. 에미라는 건 다 그런 거야. 새끼들 입으로 들어가면 내 입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배부르고, 그렇게 살다보면 이렇게 껍데기만 남는 거야.”
“그럼 어머님도 껍데기야?”
“그렇지. 껍데기지. 더구나 나는 오래 전에 알맹이 세 개 중에 하나를 잃어버리는 바람에 껍데기 중에 상껍데기가 됐지.”
“알맹이 하나는 어쨌는데?”
“나한테도 너처럼 살가운 딸이 하나 있었어, 우리 맏딸. 셋 중에 내 끼니 챙기는 것도 그년이고, 내 입성 챙기는 것도 그년뿐이었지. 벌써 십 년이 다 되어가네. 난데없이 대전으로 시집간 그년 낯짝이 그리 보고 싶더라고. 내친김에 찾아가려고 옷까지 차려입고 전화를 했지. 그랬더니 이년이 오지 말라는 거야. 엄마 오면 밥 차려주기 귀찮다나. 그 뒤로 몇 달을 오는 전화까지 안 받으면서 삐쳐서 있었지. 그런데 하루는 한밤중에 벨이 울리는 거야. 느낌이 싸해서 받아봤더니만 그년이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그러더라. 지 몫까지 오래오래 살다 오라고, 건강하라고, 미안하다고. 그러고는……, 그러고는 가버렸다. 내가 얼마나 더 살아야 그년이 살아야 할 몫까지 다 살아낼지 모르겠다. 흐유.”
“괜한 얘기 꺼내서 미안해 어머님. 어머님이 만날 웃고 댕기셔서 그런 아픈 사연이 있는 줄 몰랐어.”
“미안할 거 없어. 우리 동네는 말이야, 나 말고도 속은 텅 비고 사연만 많은 껍데기들 천지야. 이년저년 할 것 없이 죄다 알맹이들 빼놓고 나니 쪼글쪼글해져서 바람 불면 허떡개비처럼 날아가게 생긴 껍데기들. 그런데 껍데기라고 다 똑같은 껍데기인 건 아니다. 제 잇속 일일이 챙겨가며 알맹이들 돌보고도 뾰족구두에 자동차 타며 대우받는 껍데기도 있고, 나처럼 남은 거 하나 없이 몽땅 퍼주기만 했어도 다 떨어진 털신만 신고 다니며 섞어 문드러진 속에서 냄새만 폴폴 풍기는 바람에 아무도 곁을 내주지 않는 껍데기도 있어. 너는 잘 살아내라. 그래야 내 꼴 안 난다.”
“어머님이 어때서?”
“냄새나는 껍데기를 누가 좋다고 그러냐. 불면 날아갈까 쥐면 깨질까, 애면글면 키운 내 알맹이들도 내가 싫다고 멀리하는 판에.”
“어머님한테서 냄새 안 나는데?”
“그 냄새는 내 알맹이들만 맡아지는 건가 보다. 얼마나 냄새가 나면 오만상을 하고 와서는 고작 몇 푼 쥐어주고, 앉기가 무섭게 가버리겠냐. 그것도 기껏해야 일 년에 한두 번 올까말까.”
“…….”
“에이, 나설 때부터 큰딸 생각이 그리 나더니만 괜한 사람 붙잡고 별소릴 다했네. 근데 그거 아냐? 네년이 있어서 내가 요즘엔 그나마 살맛이 난다. 이렇게 맛없는 커피 내일도 타줄 거지? 나는 이만 시장에나 갈란다. 에고고, 삭신이야.”
수봉할매는 커피가 비워진 종이컵에 한숨을 넘치도록 담아 꾸깃꾸깃 구겨 손안에 몰아 쥐며 힘겹게 일어선다. 그리고는 딸이 마지막으로 남겼다던 말, 오래오래 살라했던 그 날들을 더 살아내기 위해 어제와 똑같은 일상으로 다시금 걸음을 옮긴다. 말문이 막혀 멍하니 서있기만 하는 나를 남겨두고서 비척비척 저 멀리로 사라져간다. 그 뒤로 작은 회오리바람이 휘리릭 일며 바삭하게 말라버린 낙엽을 위로, 위로, 하늘 위로 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