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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명주 Oct 13. 2020

다림질의 고수

                        

  방금 지나간 소나기가 어쭙잖게 푸새를 해놓은 것처럼 층쌘구름은 꼬리가 길게 늘어져 실밥 투성이다. 아직 비 기운이 남아 고장 난 세탁기 소리처럼 마른벼락이 덜그렁덜그렁 요란한 하늘은 한창 빨래 중인가보다. 말갛게 씻겼으니 빗물에 이리저리 치어 구멍 난 곳은 깁고 바짝 마른 해님 내어 놓으라며 바람이 재촉하는지 구름의 뜀박질하는 모양새가 전에 없이 바쁘다. 하지만 느긋하게 즐길 여유가 없다. 나풀나풀 커튼을 흔들며 들어오는 시원한 녹색의 내음도, 언뜻 맡아지는 비 비린내도 마음껏 들이키지도 못하고 이른 아침부터 종종걸음 칠 생각에 선뜻 돌아선다.


  어젯밤 남편은 굳이 미처 세탁해놓지 않은 셔츠를 고집했다. 아들아이도 어젯밤 후줄근하게 땀 냄새가 밴 교복셔츠를 빨래통에 벗어 던지며 내일 또 입을 거라고 했으니 밤새 꾸덕꾸덕 잘 마른 셔츠 두 장을 서둘러 다림질해야만 했다. 옷걸이에 걸린 채 시름이 가득한 얼굴로 주름이 자글자글한 셔츠 두 장을 하릴없이 바라본다. 내 이마에도 잔뜩 주름고랑이 파인다. 그리곤 공연히 구시렁대어본다. 그냥저냥 아무거나 입지.


  유난히도 땀이 많은 나는 집안일 중에 가장 힘든 일에 다림질을 꼽는다. 가뜩이나 더운 여름날에 다림질이라니, 그저 상상만으로도 콧등에 땀이 날 지경이다. 점심을 지어낼 참으로 움직이면 저녁 먹을 때가 될 정도로 동작마저 굼뜬 나는 고로한 여정이 남아있음에 도리 없이 무거운 한숨을 토해낼 뿐이다. 이십 년이 넘는 경력을 지녔으니 이젠 제법 능숙해질 법도 하련만 여전히 다림질은 피하고 싶은 일이다.


  그러나 경력이라는 것이 얕잡아 볼만큼 그리 녹록한 것이 아니다. 신문의 구인란에서도 ‘경력자 우대’라고 큼지막하게 써 있는 이유는 그만큼의 경험을 존중해 줌이다. 하여 다림판을 펴는 순간 나는 이십 년 해묵은 장인이 된다. 다리미를 든 대장장이가 되어보는 것이다.


  야공이 풀무로 화로에 불을 피워낸 후 집게로 시우쇠를 집어 모루에 얹듯 다리미의 열이 오르기를 기다리는 동안 셔츠의 모양을 잘 잡아 다림판에 곱게 편다. 그리곤 메질을 시작하여 호미나 낫의 날을 괴듯 다리미를 이리저리 눌러가며 깃이나 소매의 날을 세운다. 마지막으로 괸 날을 오그리고 다듬어 자루를 박아 호미나 낫이 완성되듯 다림질 된 옷을 옷걸이에 구김이 가지 않도록 잘 걸어두는 것으로 끝이 난다. 


  별일도 아닌 일에 이리도 진중할까 하겠지만 나에겐 백팔배를 할 때처럼 소중한 이에게 사랑과 정성을 담는 일이니 허투루 할 수 없는 것이다.


  지금이야 그나마 전기다리미로 쓱쓱 움직이면 그만인 일이지만 옛날의 다림질은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었다. 먼저 잘 바느질 된 말짱한 옷의 실밥을 다 뜯어야 한다. 이를 푸새라고 하는데 뜯은 옷감에 남아있는 실밥을 잘 걷어내고 풀을 먹인 후 말리는 일이다. 다음으로 다듬잇돌 위에 잘 마른 옷감을 올려놓고 반들거릴 때까지 홍두깨로 두드린다. 추운 겨울에는 푸새를 한 뒤 다듬이질을 할 때면 손등이 갈라져서 옷감에 피가 튀는 일도 많았다고 하니 그 고충을 여름날 흘리는 땀에 비할까. 내 어릴 적 시골은 내가 여남은 살이 되었을 때까지도 통그닥통그닥 이불호청 다듬이질 하는 소리가 제법 흐르곤 했는데 지금은 그 소리가 아련하게 기억에서만 귓등을 맴돌 뿐이다.


  이렇게 푸새로 시작하여 다듬이질을 마치고 나면 마지막으로 다림질을 하는 일이 남았다. 자루가 달린 사발에 숯을 담아서 옷을 다리는데 비록 숯으로 다림질을 하는 방법일지나 다리미의 모양은 제법 다양했다. 둥그런 사발 같은 것에 자루를 단 이름 그대로 숯불다리미, 뒤쪽에 ㄱ자로 휜 굴뚝이 앙증맞게 달린 굴뚝다리미, 그리고 닭다리미.


  다림질을 하다가 흰옷에 까만 숯가루가 떨어지기라도 하면 옷을 다시 빨아야 했다. 그러니 무엇보다 닭 모양 장식의 걸음쇠가 있어 숯가루가 날리지 않게 뚜껑을 덮을 수 있는 닭다리미의 출현은 혼인을 앞둔 여인들에게 가장 장만하고 싶은 혼수품 중에 하나였으리라.

  내가 다리미 이야기를 꺼냈을 때 엄마도 혼수로 닭다리미를 장만했었다며 추억하기도 하였다. 모양은 차치해두고, 다림질 중 여름철에 많이 입었던 모시를 다리는 일이 무엇보다 어려웠다고 하는데 역시나 여름날의 다림질은 그 때나 지금이나 혀부터 내밀게 한다.


  결혼을 하기 전부터 소원하는 나만의 신혼집 풍경이 있었다. 옷장 문을 열었을 때 잘 다려진 셔츠들이 색깔별로 구분되어 정갈하게 걸려있는 모습, 매일매일 깔끔하게 잘 다려진 와이셔츠를 입고 출근하는 남편을 배웅하는 나. 신혼 때까지만 해도 그 모든 것을 꽤나 잘 지켜냈었다. 하물며 속옷을 다리면 바람을 피운다는 말을 무시하고까지 그것들을 다림질해서 개켜놓곤 했으니 귀에 익숙한 단어는 아니었으나 주부라 불려도 전혀 부끄럽지 않았다. 


  그러나 차츰 살림살이가 늘어나면서 꾀도 같이 늘어버렸다. 눈에 보이고 해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미루고 미루다가 출근시간 몇 분 전에 후다닥 셔츠 한 장을 겨우 다려 내거나 아예 웬만한 것들은 들고 세탁소로 향했다. 내가 다림질한 것보다 훨씬 반듯하게 날이 선 셔츠를 남편에게 입히며 미안한 마음조차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들이는 시간과 전기에 비하면 그깟 몇 푼 들이지 않고 몇 배의 이득을 보는 것이라며 한 술 더 떠 알뜰주부 행세까지 하곤 했다. 하지만 무언가 빠진 것이 있다는 것을 한참이나 지난 후에 알았다. 세탁소 아저씨는 절대 담을 수 없는 그것, 정성 가득한 내 마음이 그간의 셔츠에는 담기지 않았다는 것을. 


  깃을 다림질할 때는 밖에서 누구에게도 기죽지 말고 목에 힘주고 다니라는 주문을 넣었으며, 등판을 다릴 때는 그리 넓지 않은 어깨에 가장으로써 지운 짐에 미안한 마음을 가졌다. 소매를 다림질하며 울끈불끈 힘줄 솟은 남편의 섹시한 팔뚝을 생각해내어 미소 지었으며, 앞판을 다릴 때는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열 오른 다리미처럼 가슴 가득 뜨겁게 늘 남아있기를 기원하며 꾸욱 눌러주곤 했는데 내 몸뚱이의 편안함만 쫓느라 그 사소하지만 소중한 것들을 내내 잊고 있었던 것이다.


  두 장의 셔츠가 번들거리며 각각 옷걸이에 걸리고 나자 남편이 부스럭거리며 일어난다. 목까지 흘러내린 땀을 보고 미안한 듯 머쓱해하며 칼날처럼 날이 선 셔츠를 걸쳐보고는 이젠 세탁소 차려도 되겠다며 선물이라도 되는 양 칭찬 한마디를 건넨다. 배시시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고 돌아서지만 그래도 아직은 고수의 경지에 들어서기엔 멀었다는 것을 또 한 번 깨닫는다. 


  다림질하는 내내 송골송골 맺히는 땀방울을 닦으며 생각했다. 옷걸이에 걸어 세워놓은 채로 쓱쓱 힘들이지 않고 움직이기만 해도 잔주름을 다 펴주고, 마음먹은 만큼 날까지 세워주는 핸드다리미의 유혹에 넘어가 볼까. 입에 침이 마르도록 광고하던, 작아서 한 손에 꼬옥 쥐어질 것만 같았던 그 녀석, 핸드스팀스마트다리미. 이름처럼 엄청나게 똑똑해서 내가 펴고자 하는 어떤 주름도 모세가 홍해에 길을 내듯 반듯하게 쓰윽 내 줄 것만 같았던 그것.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세탁소 사장보다 한 수 위에 설 것만 같은 유혹과 나의 싸움은 그리 길지 않은 삼십여 분 동안 머릿속에서 꽤나 치열했었다. 그러나 이내 생각을 고쳐먹는다. 


  무릇 다림질의 고수라면 자꾸만 흐트러지고 나태해지는 나 자신도 곧게 다림질 할 줄 아는 것이 아닐까. 하여 조금 전 얼굴에 함박웃음을 담은 채 남편이 건네준 칭찬에 힘입어 마음속에서는 어느 때보다 더 커다랗고 뜨거운 다리미가 분주하게 움직인다. 자꾸만 쉽고 편한 일에 얕은 수를 어찌 쓸까 고민하다가 주름이 한가득인 나를 반듯하게 다리고 또 다린다. 미소 지을 때마다 생기는 눈가의 잔주름만은 더욱 진하게 꾹꾹 눌러주어 누군가의 가슴 속에는 항상 웃는 얼굴로 남아 행복이 전해지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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