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명주 Oct 13. 2020

내 제사상에는

   

  시어머님의 제사를 모시게 된 지 벌써 네 해가 지났다. 며칠 전부터 시장에서 제수용품을 지나칠 때마다 아 며칠 남았구나, 하며 행여 깜빡 잊을까 되새기곤 했는데 눈 깜짝할 새 그 날이 되었다. 제사상은 가짓수 하나하나가 다 뜻이 있다고 하니 무엇 하나 빠뜨릴 수 없다. 간혹 조율이시니 동두서미니 하는 것들이 잘못된 유교 예법이라는 이도 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떠맡은 것이 아니라, 형님을 젖혀두고 내가 먼저 하겠다 나선 일이기에 더욱 허투루 하지 않는다. 


  제삿날 아침, 가장 먼저 준비하는 음식은 삼색나물이다. 뿌리를 먹기에 조상을 뜻한다는 도라지는 흙이 묻은 채로 사다가 껍질을 벗기고 가늘게 찢은 다음, 설탕으로 조물거려 쓴맛을 빼고 찬물에서 한참 우려낸 후 달달 볶아놓는다. 줄기를 먹기에 부모님을 뜻한다는 고사리도 푹 삶아서 물에 담가놓아 아린 맛을 우려내고, 볶을 때 들깨가루를 넣어주면 약간 끈적해지는 것이 든든한 맛이 난다. 잎을 먹기에 나를 뜻한다는 시금치를 살짝 데쳐내어 무치고 나면 나물은 끝이 난다. 겨우 세 가지 나물에 불과할진대 무릇 삼 대가 한 상에서 어우러지는 것과 같다. 


  다섯 가지 과일도 다 의미를 지닌다. 나무 한 그루에 열매가 많이 열리기 때문에 자손의 번창을 기원한다는 대추는 마른주름 사이사이 깨끗하게 솔로 씻어 물기를 빼놓는다. 나무의 모든 진액을 열매로만 보내버려서 힘없이 꺾이고 마는 나뭇가지가 자식을 낳고 기르는 부모님을 뜻한다는 감도 한여름이기에 하얗게 분이 핀 곶감으로 대신한다. 그대로 두면 돌배였을 배와 또 그대로 두면 능금이었을 사과는 접붙여야만 제대로 된 열매가 되니, 왜 부모의 교육이 필요한지 나타내는 것이라. 밤 또한 씨로 심었으나 썩지 않고 오래도록 뿌리와 같이 있어 조상과 자손의 연결을 뜻한다 했다. 그래서 과일은 아무리 비싸더라도 씨알 굵고 좋은 것으로만 준비한다.


  떡도 진작 사놓았으니 곱게 고명 올려 생선만 찌면 손 많이 가는 음식은 전만 남는다. 그래도 엄마 혼자서는 힘들다며 학교 수업이 없을 때면 꼭 아들이 도와주곤 하니 그리 걱정할 일도 아니다. 어차피 인심 짜게 겨우 한 접시나 될까 말까 하니 가짓수만 많을 뿐, 오래 걸리지도 않는다. 전을 다 부치고 나면 갈비를 할 참이다. 마늘은 예를 지키느라 빼고, 갈비와 참외는 어머님이 생전에 좋아하던 것이기에 예에는 어긋나지만 절대 빠뜨리지 않는다.


  점차 음식이 마무리되어 가고 서산 너머로 해가 숨고 나니 큰집 식구들이 왔다. 겨우 아홉 시가 지난 시간이지만 다시 돌아가야 할 사람들을 생각해서 일찍 시작한다. 단정한 자세로 절을 올리고 술도 한 잔씩 올린다. 그중 형님은 절만 서둘러하고 나와서 웬 음식을 이리 많이 했냐며 여느 때처럼 미안함을 타박으로 대신하지만, 나는 뒤이어 들여야 할 숭늉을 준비하느라 바쁘다는 핑계로 굳이 대답을 찾지 않는다. 


  늦은 시간, 제상을 그대로 두고 어머님이 드셨을 테지만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은 음식으로 온 가족이 모여 두런두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저녁식사를 마쳤다. 손 빠른 형님이 설거지까지 맡아 끝내니 금세 제사는 끝이 났다. 제사를 지내는 의미가 이러한 것이지. 이렇게 가족들 모여 잊고 지내던 어머님 생각하며 웃음 짓는 하루 만드는 것이지. 왔던 사람들이 다 가고 갈무리까지 하느라 쉬지 못했던 발바닥을 주물렀다. 그러면서 훗날 나의 제사상을 상상해 본다.


  언젠가 늦은 밤 헛헛한 속을 달래느라 살찔 것을 빤히 알면서도 아들과 편의점에서 군것질거리를 사들고 오는 길이었다. 까만 비닐봉지 안에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파인애플 맛 환타가 큰 병으로 들어있었기에, 아들에게 우스갯소리로 나중에 엄마 죽으면 제사상에 이 환타는 잊어버리지 말고 꼭 올려 달라고 했다. 그리고 좋아하지도 않는 나물이며 생선 올리느라 애쓰지 말고 잘 익은 수박 한 덩이, 맛집으로 이름난 집의 특대 사이즈 뼈다귀 감자탕, 짭조름하게 맛 잘 든 간장게장, 그리고 얼음 동동 띄운 파인애플 맛 환타는 빼먹지 말고 꼭 올리라 당부했다.

  내 나이 마흔아홉. 젊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아들 입장에서 보면 한참 늙은 나이다. 지금껏 잘 버티며 살아냈지만 아무도 내가 떠나는 날은 알 수 없다. 몇 년 후가 될지 아니면 몇십 년 후가 될지, 그도 아니면 당장 내일이 될지 모를 일이다. 그러니 진지하게 그 날을 준비해야만 한다. 형님네를 제치고 내가 나섰던 것처럼 어찌할 겨를도 없이 아들이 짐을 떠안아서는 안 될 일이다.


  제사는 종교도 미신도 아니다. 그저 정성과 마음인 것을 모르고 우쭐거렸던 나 자신을 돌아보며, 아들에게 장난처럼 말했던 내 제사상은 사실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아니라 정정한다. 아무리 아들이 도와줄 거라지만 그것도 확실치 않고, 아직 얼굴도 알지 못하는 며느리 혼자 하는 수고는 더더욱 달갑잖다. 딱 하나, 마음이면 족하다. 그도 싫다면 경치 좋은 곳에 나를 뿌려 두고 일 년에 한 번 그 날을 맞았을 때 소풍처럼 나를 만나러 오는 것도 좋을 듯하다. 조금은 아쉬울 수 있으니 이왕이면 가방에 얼음처럼 차디찬 파인애플 맛 환타 한 병 넣고서.

작가의 이전글 다림질의 고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