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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명주 Oct 15. 2020

도둑놈 잡아라

                               

  남편과 나는 일곱 살 나이 차가 나는 부부다. 뭇사람들에게 얼핏 나이 얘기를 하면 다짜고짜 남편을 일컬어 도둑놈이라 칭해버린다. 나는 남편이 늘 옆에 있으니 잊어버리고 살지만 무릇 일곱 살이라 함은 엄청난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남편이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나는 갓 태어난 아기였으며, 남편이 스무 살 성년이 되었을 때 나는 겨우 초등학교 6학년인 것이다. 스무 살 청년과 아기 티도 벗지 못한 초등학생이 연애한다고 하면 그 누가 믿으려나. 그러니 남들 눈으로 보자면 도둑놈도 이런 도둑놈이 없다.


  지인의 소개로 저녁 한 끼 거하게 얻어먹고 헤어질 요량이었다. 그런데 먼저 나와서 레스토랑 구석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던 그는 저녁 한 끼에 버려질 인물이 아니었다. 그에게서 환한 후광을 발견해버린 후부터 내 눈에 씐 콩깍지는 점점 더 두꺼워졌다. 가슴은 콩닥콩닥, 머릿속은 빙글빙글, 손은 벌벌. 밥을 먹는 내내 그것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알 수도 없게 그에게 홀려있었다. 그는 눈처럼 뽀얀 얼굴로 살짝 미소 짓고는 가늘고 기다란 손을 들어 후식으로 나온 커피를 홀짝였다. 희대의 잘생긴 배우라는 제임스 딘도 이보다 멋지진 못하리라. 


  그렇게 몇 번의 만남이 지속되고 서로의 마음에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갈 무렵, 당장 결혼을 생각해야 할 나이인 그는 아직 어리다면 어리달 수 있는 나의 스물둘 나이가 버거웠는지 자꾸만 나를 멀리하려들었다. 아무리 사랑이란 국경과 나이를 초월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커다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미 콩깍지가 씌어버린 나에게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자꾸만 도망치려 드는 그를 잡아야 했다. 잡았다, 생각하면 저만치 멀어져 있는 그를 하루라도 빨리 내 손아귀에 움켜쥐고 싶었으나 딱히 좋은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고민 끝에 나는 그의 자유시간을 야금야금 도둑질하기로 결심했다. 가장 먼저 그의 하루 일과를 기억해두었다. 몇 시쯤에 일을 마치고 퇴근 후에는 어떤 친구들과 어디서 주로 시간을 보내는지 하나하나 정보를 입수하고 난 후, 내 일이 끝나자마자 그의 일상으로 달려들었다. 그래 봤자 대부분 회사 근처의 그가 자주 찾는 카페에 가서 죽치고 앉아있거나 그의 집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레이더망에 그가 걸리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전부였지만 효과는 만점이었다.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그를 만날 수 있었고, 그때마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뜨악해하는 그를 온갖 애교로 홀리며 나의 매력을 하나씩 하나씩 머릿속에 꼭꼭 입력시켰다.


  어쩌다 운 좋게 친구들과의 약속을 알아낼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얼굴에 헤벌쭉 미소를 담고서 누구 하나 환영하는 이 없어도 억지로 그 자리에 합석하기를 서슴지 않았다. 그러다가 뜬금없이 연락을 끊어 궁금해하며 안부를 묻는 그의 전화가 걸려오면 다시 만나기를 반복했다. 요즘 시쳇말로 ‘밀당’을 한 것이다. 그렇게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마침내 그의 친구들을 하나둘 씩 내편으로 만들 수 있었고, 친구들이 넘어오니 자연스럽게 그도 내 손아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결국 꼬박 두 해를 더 보내고서야 많은 하객들 앞에서 하얀 면사포를 쓴 모습으로 이 도둑놈이 내 것임을 증명해낼 수 있었다. 어설픈 도둑질로 도둑놈을 잡은 것이다.


  그의 마음을 훔치고 싶어 속을 태우던 나와 기어이 마음과 함께 인생까지 온통 나에게 털려버린 남편. 남은 것 없이 나에게 다 털려버렸는데도 그는 여전히 도둑놈으로 불린다. 그러나 이제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고 나니 이 도둑놈을 훔친 것은 바로 나요, 하고 해명하기보다는 그깟 누명쯤이야, 한다.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리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다만 내가 도둑 ‘년’이 되는 것보다 그가 도둑 ‘놈’이 되는 것이 차라리 낫지 않을까 하여 그냥 웃어넘기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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