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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명주 Oct 16. 2020

난 그래도 되는 줄 알았어

 더위 먹은 소는 달만 보아도 헐떡인다 했던가. 그를 보니 다시금 가슴이 벌렁거린다. 벌써 삼십 년이 지났고 겨우 그의 그림자만 스쳤을 뿐인데 아직도 양 볼이 얼얼한 듯하다. 여리기만 한 여학생이었고, 더구나 어설픈 사춘기였기에 그의 손은 오래도록 뺨 언저리에 빨갛게 자국을 남기고 있었다.


  까르르까르르. 이제 쉰을 코앞에 둔 나이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열여섯 중학생이 된 듯 웃음소리가 떠들썩하게 버스 안을 가득 채웠다. 중학교 졸업 30주년을 맞아 모교도 둘러보고, 담임을 맡았던 은사님을 찾아뵈러 나선 길. 새침데기였던 여학생들은 다들 딱 그맘때의 아이들을 둔 아줌마가 되었고, 변성기가 찾아와 걸걸해진 목소리로 사뭇 어른 흉내를 내기에 바빴던 남학생들도 이제 진짜 아저씨가 되어 있었지만, 가만 살펴보면 모두 어릴 적 모습 한 구석쯤은 얼굴에 남겨두고 있었다. 그래서 어제 보고 오늘 또 보는 것처럼 자연스레 이야기가 오갈 수 있었다.


  그중 화제는 단연 그. 친구들 중 열에 여덟은 그에게 따귀를 맞았고, 나머지 둘 중 하나는 그에게 마포 자루로 종아리가 터지도록 맞았다고 했다. 그래서 이야기는 점점 그를 성토하는 대회가 되어 갔다. 그가 우리를 만나면 이렇게 변한 모습에 얼마나 놀랄까. 같이 늙어져 가는 모습에 조금이나마 기가 죽긴 할까. 그리도 모질게 때린 것에 대한 반성은 할까. 이러저러 얘기 끝에 성민이와 경남이가 그때를 생생히 기억한다며 의기양양 이야기를 펼쳐 보였다. 너희들이 맞은 건 아무것도 아니라면서.


  “온다! 온다!”


  복도로 향한 창문을 폴짝거리며 내다보던 성민이가 선생님이 오고 있음을 알렸고 떠들썩했던 교실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그런데 앞문을 벌컥 열고 들어선 선생님이 교탁 위에 출석부를 던지며 손가락처럼 마디가 성성한 대나무 뿌리로 만든 매를 들고 성난 얼굴로 말했다.


  “아까 ‘온다 온다’ 했던 새끼 나와!” 


  반 아이들의 눈이 모두 성민이에게 향했고, 별수 없이 앞에 나간 성민이는 칠판을 짚고 엉덩이를 살짝 들어 올려 맞을 준비를 했다.


  “내가 니네 집에서 키우는 개새끼야? 어딜 감히 선생님한테 ‘온다’야, ‘온다’가.”


  퍽 퍼억. 그날 대나무 뿌리도 모자라 마포 자루까지 뽑아서 허벅지가 터지도록 맞은 아이가 바로 성민이었다. 전세 낸 버스는 그렇게 추억을, 그리고 아직까지도 한 자락 남아있는 미움을 싣고 고속도로를 내처 달렸다.


  세 시간 후쯤 모교에 도착했을 때 친구들은 아예 아이가 되어버린 듯했다. 군것질 좋아하던 옥연이는 누가 뺏어먹을세라 핫바를 입에 물기 전에 침부터 발라댔고, 경남이는 고무줄놀이를 할 때 끊고 도망가는 사내아이처럼 주머니에서 고무공을 꺼내 던지며 여자아이들에게 장난을 걸어왔다. 노랗게 금잔디로 뒤덮인 운동장을 웃음을 단 채로 쫓고 쫓기며 달렸다. 


  그러나 나는 깔깔거리며 웃는 와중에도 가슴 한구석이 묵직했다. 아직 그에 대한 미움이 걷히지 않아서였다. 다시는, 정말 다시는 그를 보고 싶지 않았는데. 


  우리는 노을이 벌겋게 하늘을 뒤덮을 무렵에야 시내에 위치한 식장에 도착했고, 속속들이 총동창회 선배들이며 은사님들이 도착했다. 그리고 선생님들 중 제일 마지막에 도착한 사람, 그다. 그가 후덕하게 살찐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포스는 여전했다. 다들 기가 눌려 저 멀리로 도망쳤고, 사태를 미처 파악하지 못한 나만 어버버 거리며 그 자리에 남게 되었다. 


  “어? 너… 너… 우리 반이었던…!”


  “저 기억하세요?”


  “그럼, 기억하지. 그래, 기억하고말고….”


  그리곤 그도 나도 말을 잇지 못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입을 굳게 다문 채 그가 멀리로 눈길을 돌렸다. 쿵쾅대는 가슴을 억지로 진정시키며 자리로 돌아오자 속도 모르는 친구들이 다른 애들은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데 왜 너만 알아보는 거냐고, 혹 네가 제일 많이 맞았던 건 아니냐며 키득댔다. 긴장으로 머릿속이 그득한 나는 그 말에 나누어줄 신경이 없었다. 멀리서 무대 쪽으로 고개를 고정시키고 있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나를 기억하고 있는 장면은 과연 무엇일까. 


  “송명주, 너 교무실로 따라와.”


  “선생님, 그게 아니라요…….”


  “감히 무단결석을 해? 네까짓 게 뭐라고 말도 없이 결석을?”


  “그게 아니고요. 엄마가 고추밭에 비닐 쳐 줄 사람이 없다고 그래ㅅ……”

  짜악 짜악. 비틀. 이유를 다 듣기도 전에 그가 따귀를 올려붙였다. 그것도 쌍 

따귀를. 맞은 양 볼이 얼얼했지만, 맞을 때 뇌가 멈추기라도 한 듯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아 끝내 변명을 대지 못했다. 그래서 눈물도 흘리지 못했다. 교무실 문을 열고 나와 복도에 섰을 때에야 눈물이 터지며 전화 한 통 해주지 않은 엄마를 원망했고, 아버지가 없는 나를 얕보는 것 같아 선생님이 밉다는 생각을 했다. 그게 중학교 이학년 때였는데 운도 없지, 졸업반이 되었을 때도 나는 그가 담임을 맡은 반이 되었다. 


  수학여행 체육대회 졸업앨범 사진들이 영상으로 그려진 후, 사회를 맡은 희문이가 선생님 한 분 한 분께 소감을 물었고 드디어 그의 차례가 되었다. 


  “나는 오늘 여기 오고 싶지 않았어요. 시쳇말로 쪽팔려서. 그런데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전화로 ‘주소만 불러주세요, 모시러 갈게요.’ 하는 친구들이 있어서. 그리고 언젠가 한 번쯤 많이 미안했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 어쩔 수 없어 그러는 척하며 나왔어요. 나는, 나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어요. 무슨 말을 해도 그저 변명이 되겠지만 많이 미안했고, 이렇게 잘 큰 모습을 보니 속없이 반갑기도 하네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사과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준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노래를 부탁하자 사양도 하지 않고 마이크를 든 그. 3반이었던 친구들 다 앞으로 나오세요, 하는 사회자의 부름에 열 명 남짓이 병풍처럼 그의 뒤로 섰다. 노래 제목은 가수 현미의 ‘보고 싶은 얼굴’. 


  눈을 감고 걸어도 눈을 뜨고 걸어도 보이는 것은 초라한 모습 보고 싶은 얼굴. 거리마다 물결이 거리마다 발길이 휩쓸고 간 지나간 허황한 거리에. 눈을 감고 걸어도 눈을 뜨고 걸어도 보이는 것은 초라한 모습 보고 싶은 얼굴. 일절이 끝나고 간주 중에 그가 문득 돌아섰다. 그리고는 줄지어 선 친구들 한 사람 한 사람 손을 맞잡아 토닥이며 눈을 맞추었다. 가운데쯤 선 나에게도 그가 다가와 손을 잡으며 말했다.


  “와주었구나. 고맙다. 그리고……, 미안했다.” 


  그토록 듣고 싶었던 그 말, 그가 건네는 그 말 몇 마디가 삼십 년이나 묵은 미움을 사르르 녹아내리게 했다. 뚱했던 나와 친구들의 얼굴이 하나씩 밝아지기 시작했다. 노래가 끝났을 때에야 내내 애먼 곳에 눈길을 돌리기만 했던 그도 양팔을 가득 벌려 나와 친구들을 안고 카메라 앞에 서서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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