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후, 해가 기울기 시작하는 시간. 거실 창으로 들어오는 빛이 바닥 위에서 기다란 직사각형을 만들고 있었다. 그 빛의 색이 바뀌고 있었다. 흰색에서 노란색으로, 아주 느리게. 겨울 오후의 빛은 여름과 다르다. 각도가 낮아서 방 안 깊숙한 곳까지 들어오고, 색이 따뜻하다. 그 빛 안에 먼지가 떠다녔다. 보통은 보이지 않는 것들이, 빛의 각도가 맞으면 보인다. 먼지 하나하나가 빛을 받아 금빛으로 빛나면서 천천히 떠다니는 모습. 공기가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를 눈으로 보는 시간이었다.
이 조용한 오후에 어울리는 것이 뭘까 생각하다가 차를 우리기로 했다. 찻장을 열었다. 작은 나무 상자 안에 차가 종류별로 나뉘어 있었다. 홍차, 녹차, 보이차, 우롱차. 각각의 봉지에서 다른 냄새가 났다. 홍차는 달큰한 건조 과일 향, 녹차는 풀을 비벼서 나는 싱그러운 향, 보이차는 흙과 나무가 섞인 깊은 향. 오늘은 보이차를 골랐다. 오래 묵힌 숙보이. 차 덩어리의 표면은 검은 갈색이었고, 흙과 나무와 시간이 섞인 냄새가 났다. 손으로 만지면 단단하고 건조했다. 차칼로 한 조각 떼어냈을 때, 잎이 눌려서 압축된 단면이 보였다. 몇 년이 지난 찻잎이 이렇게 단단해진다는 것, 시간이 물질에 하는 일. 차칼이 잎 사이를 비집고 들어갈 때 바스스, 하는 작은 소리가 났다. 압축되었던 잎이 풀리면서 내는 소리.
다관을 데웠다. 주전자에서 물이 끓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솥 바닥에서 잔잔하게 시작하다가, 점점 거세지면서 주전자 전체가 울렸다. 뚜껑이 미세하게 달그락거렸다. 끓는 물을 다관에 부어 한 번 헹구고, 물을 버린다. 빈 다관에 열기가 남아 있었다. 손으로 감싸면 따뜻했다. 도자기가 열을 머금는 방식이 있다. 금속처럼 빠르지도 않고 나무처럼 느리지도 않은, 도자기만의 속도. 따뜻해진 다관 안에 찻잎을 넣었다. 마른 잎이 도자기 바닥에 떨어지면서 가벼운 소리를 냈다.
뜨거운 물이 마른 잎에 닿는 순간의 소리가 있다. 치직, 하는 것도 아니고 쏴, 하는 것도 아닌, 작고 밀도 있는 소리. 물이 마른 잎에 스며드는 소리. 잎이 물을 만나는 그 찰나에 향이 한 번 올라왔다가 뚜껑을 덮으면 갇힌다. 첫 번째 물은 바로 버린다. 세차라고 부르는 과정인데, 잎을 깨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래 잠들어 있던 잎에게 이제 시작이라고 알리는 것. 버리는 물의 색은 아주 연한 갈색이었다. 잎 표면의 먼지와 함께 첫 번째 맛이 빠져나간 물.
두 번째 물을 부었다. 이번에는 버리지 않고 기다린다. 뚜껑을 덮고, 시간을 잰다. 처음에는 삼십 초. 보이차는 우리는 시간에 따라 완전히 다른 차가 된다. 삼십 초의 차와 일 분의 차와 삼 분의 차는 같은 잎에서 나왔지만 다른 색, 다른 맛, 다른 향을 가진다. 그 차이를 만드는 건 오직 시간이다. 삼십 초를 세는 동안 창밖의 빛이 조금 더 기울었다. 시간을 재면서 시간이 지나가는 걸 본다. 차를 우리는 일은 결국 시간을 다루는 일이다.
찻잔에 따랐다. 다관 입구에서 나오는 차의 줄기가 가늘고 일정했다. 잔에 담기면서 작은 소리를 냈다. 액체의 색이 보였다. 첫 번째 우림은 적갈색이었다. 투명하면서도 깊은, 마호가니 가구의 표면 같은 색. 잔을 기울이면 빛이 통과하면서 색의 농도가 달라졌다. 가장자리는 연하고 중심은 진한, 하나의 잔 안에 그라데이션이 있었다. 잔을 들어 코 가까이 가져갔을 때, 향이 올라왔다. 흙 냄새가 아니라 습한 숲 바닥의 냄새, 낙엽이 쌓이고 분해되는 과정에서 나는 그 부드러운 냄새. 나무와 가죽 사이 어딘가의 향도 섞여 있었다. 차를 마시기 전에 향을 맡는 시간이 있다. 그 시간을 건너뛰면 맛의 절반을 놓치는 것 같았다.
한 모금 마셨다. 혀 위에서 부드럽게 퍼졌다. 떫음이 거의 없었다. 오래 숙성된 보이차는 떫음이 단맛으로 바뀐다. 정확히 단맛은 아닌데, 달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맛. 혀 뒤쪽에서 느껴지는, 삼키고 나서야 올라오는 감미. 입안을 한 바퀴 돌고 나간 차가 남긴 것. 목을 넘긴 뒤에 입안에 남는 것이 있었다. 회감이라고 부르는 것. 차를 마시고 난 뒤 입안으로 돌아오는 맛. 처음에는 잘 몰랐는데, 여러 번 마시다 보니 그 돌아오는 맛을 기다리게 되었다. 회감이 좋은 차일수록 입안이 오래 달다. 침이 고이면서 단맛이 계속되는, 그 여운.
세 번째, 네 번째 우림을 계속했다. 우릴 때마다 시간을 조금씩 늘렸다. 삼십 초, 사십오 초, 일 분, 일 분 삼십 초. 찻잎이 물을 만날 때마다 조금씩 다른 것을 내어놓았다. 세 번째 우림의 색은 더 짙어졌다. 적갈색이 흑갈색에 가까워졌고, 맛도 깊어졌다. 목 넘김이 더 무거워지고, 혀 위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다. 차의 밀도가 높아진 느낌. 같은 찻잎인데 세 번째에서 가장 진한 자기를 보여주는 것이 흥미로웠다. 네 번째는 다시 조금 연해졌다. 잎이 가진 것을 많이 내어준 뒤의, 부드러운 것. 거친 맛이 빠지고 순한 맛만 남은 차. 맛에도 곡선이 있다는 걸 여러 번 우려야 안다.
다관 뚜껑을 열어 찻잎을 보았다. 처음에 단단하게 뭉쳐 있던 잎이 완전히 펼쳐져 있었다. 물에 닿아 부풀고, 열에 의해 열리고, 시간이 지나며 본래의 형태를 되찾은 잎. 어둡고 단단했던 것이 넓고 부드럽게 변해 있었다. 잎맥이 보였다. 한때 나무에 붙어 있었던, 살아 있었던 잎이라는 흔적. 손으로 만지면 축축하고 부드러웠다. 처음의 단단함이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물과 열과 시간이 잎에 한 일이 거기 있었다.
창밖의 빛이 바뀌어 있었다. 차를 우리기 시작했을 때 노란색이었던 빛이, 이제 주황색에 가까워져 있었다. 바닥 위의 직사각형도 더 길어지고 더 붉어졌다. 차를 우리는 동안 해가 기울었다. 시간이 찻잎의 색을 바꾸는 동안, 시간이 빛의 색도 바꾸고 있었다. 찻잔 안의 액체에 창밖 빛이 비쳐서, 차의 색이 한 톤 더 붉게 보였다. 잔과 빛과 시간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다섯 번째 우림. 색이 많이 연해졌다. 적갈색이 아니라 황갈색에 가까웠다. 맛도 가벼워졌지만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혀 위에 무언가가 닿았고, 여전히 목 넘김 뒤에 돌아오는 맛이 있었다. 잎이 가진 것의 끝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여섯 번째를 우릴 수도 있었지만, 여기서 멈추기로 했다. 찻잎이 충분히 내어주었다. 더 우리면 나오는 것은 맛이 아니라 물에 가까운 것이 될 테니.
차를 마시는 동안 생각이 흘러갔다. 정해진 방향 없이, 물 위에 잎이 떠다니듯이. 일주일 동안 있었던 일들이 떠올랐다가 사라지고, 내일 해야 할 일이 떠올랐다가 역시 사라졌다. 차를 마시면서 하는 생각은 붙잡으려고 하지 않는 생각이다. 떠오르면 보고, 흘러가면 보낸다. 찻잔을 내려놓고 창밖을 보는 시간, 다시 찻잔을 드는 시간, 그 사이에 작은 여백이 있었다. 그 여백이 쌓여서 오후가 되었다.
다기를 정리했다. 찻잎을 버리고, 다관과 찻잔을 뜨거운 물로 헹구고, 건조대 위에 올려놓았다. 젖은 다관의 표면에 물방울이 맺혀 있었고, 조명이 그 물방울에 반사되어 작은 빛 점들을 만들었다. 다시 소파에 앉았다. 입안에 아직 차의 잔향이 남아 있었다. 몸 안이 따뜻했다. 차 한 잔이 아니라 다섯 잔을 마신 셈인데, 배가 부른 게 아니라 몸 전체가 데워진 느낌이었다. 손끝이 따뜻하고, 이마에 미세한 땀이 맺혀 있었다.
창밖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주황이 남색으로 넘어가는 그 짧은 시간. 차를 우리기 시작했을 때와 끝났을 때, 세상의 색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찻잔은 비어 있었고, 바닥의 직사각형은 사라졌다.